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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굴레 대학생에 "대출 쉽게" 빚 권하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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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굴레 대학생에 "대출 쉽게" 빚 권하는 정부

입력
2015.10.1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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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고 → 대출 → 취업난 → 대출

악순환 허덕여도 단편적 처방만

20대들 개인워크아웃 눈덩이

고금리 대출도 7만여명 달해

정부, 저리조건만 강조하며 뒷짐

실태 파악도 못해 관리 사각 방치

자취생인 대학생 최진영(24ㆍ가명)씨는 올해 진 빚만 900만원이다. 600만원은 저축은행에서, 300만원은 정부의 대학생ㆍ청년 햇살론 생활자금대출을 받았다. 부모님께 받는 월세와 학비 외에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생활비 때문이었다. 휴대폰 요금, 공과금, 식비, 교통비 등만도 최소 월 40만~50만원이지만 이자로만 매달 20만원이 빠져 나간다.

처음엔 웬만하면 고금리 저축은행 대출은 받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올 초 공부에 전념코자 아르바이트를 그만두면서 문제가 생겼다. 소득이 없는 대학생에겐 신용카드도 나오지 않는다. 결국 저축은행에 전화를 걸었다. 돈은 쉽게 빌려줬지만 갚는 건 어려웠다. 다시 주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최씨는 “결국 취업을 해서 갚아야 하지만, 정작 빚 때문에 취업 준비도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부채의 악순환에 빠지는 대학생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 비싼 등록금과 치솟는 주거비 등을 감당하다 보면 돈을 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고, 여기에 취업난까지 겹치면서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생활고→대출→취업난→더 큰 빚’의 악순환이다.

청년층의 열악한 사정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지만 정작 그 핵심계층인 대학생 부채 문제에 대한 사회와 정부의 관심은 미약하기만 하다. 정부는 ‘저리 조건’을 강조하며 대학생에게 더 쉽게 돈을 빌려주는 방안만 강구할 뿐, 실태 파악을 위한 마땅한 통계조차 갖추지 못하고 있다. 요란한 우리 사회 가계부채 대책에서 대학생들이 사각지대에 방치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학생 부채 악순환의 단면들은 뿔뿔이 흩어져 있는 통계에서 조각조각 확인된다. 15일 신용회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20대 개인워크아웃(연체 기간 90일 이상 금융 채무 불이행자에게 원리금을 감면해 주는 제도) 신청자 수는 6,671명으로, 전년도 대비 9.4% 상승했다. 전 연령대 중 유일하게 증가했다.

올 초 금융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그간 정부의 저리 전환 정책에도 불구, 여전히 저축은행(작년 9월 기준 대출잔액 2,261억원)ㆍ대부업체(작년말 기준 51억원)의 고금리 대출을 받고 있는 대학생은 7만여명에 이른다.

졸업 후 취직이 늦어지면서 2%대 낮은 금리의 학자금 대출 연체율도 늘고 있다. 올 6월말 기준 한국장학재단 학자금 대출 연체율(1.6%)은 은행 가계대출 연체율(0.42%)의 3.8배에 달한다. 2013년 자료를 토대로 한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조사에 따르면 학자금 대출 경험이 있는 대졸자의 1인당 평균 채무액은 1,465만원이나 됐고 이 중 30% 이상은 상환 과정에서 원리금을 제때 납부하지 못했다.

"대학생들 빚은 금융 아닌 교육·복지 영역으로 접근해야"

하지만 정부의 대책은 여전히 ‘더 싸고 손 쉬운 대출’을 주선해 주는 데 머물고 있다. 신용회복위원회가 올해 4월부터 시작한 청년ㆍ대학생 햇살론의 생활자금 대출은 기존 고금리에서 저금리로의 전환대출 외에도 연간 300만원 한도로 최대 800만원까지 생활비를 빌려준다. 4~5%대 금리로 최대 4년의 거치기간을 거쳐 균등 분할상환하는 방식으로 현재까지 240억원의 대출이 이뤄질 정도로 반응이 좋다. 그간 대학생들이 저금리 대출에 목말라 있었다는 얘기이지만, 결국 빚으로 빚을 메우고 심지어 빚을 더 확대하는 결과로 이어질 뿐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대학생들의 부채 악순환 실상을 파악할 명확한 통계조차 아직 없다는 것이다. 현재 정부는 물론, 금융공기업, 민간 신용평가기관에 이르기까지 대학생들의 전체 금융권 대출 규모나 신용도를 알 수 있는 집계 수치는 없는 상태다. 이는 주로 연령대별로 차주를 분류하는 금융권 관행 때문인데, 효율적인 대책 마련을 위해선 ‘자영업자’처럼 ‘대학생’ 역시 주요한 경제 주체로 다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지난주 국정감사에서 대학생들의 부채 문제를 지적하는 국회의원들의 질타가 잇따르자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전체적인 부채규모를 포함해 대학생들의 신용문제 전반을 종합적으로 살펴보겠다”고 관리 부실을 시인했을 정도다. 강홍구 금융정의연대 사무국장은 “효과적 정책을 만들기 위해선 양적 통계뿐만 아니라 심도 있는 인터뷰 등 대단위 규모의 질적 통계 역시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대학진학률이 80%에 육박하는 근본 문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대학생들의 빚은 금융이 아닌 교육ㆍ복지의 영역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이규복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대학생들이 돈을 빌리기 어렵다고 쉬운 대출 창구를 만드는 건 최선의 방법이 아닌 궁여지책”이라며 “장학금 제도 개선 등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남주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고려대처럼 학교의 성적장학금을 없애고 모든 장학금을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소득 베이스로 가는 것도 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송옥진기자 cli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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