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언어 인플레’를 어떻게든 경계하려는 편이다. 뭐랄까. 읽는 사람의 관심을 끌게 하려면 아무래도 (그것이 동사든 명사든) ‘최상급에 해당하는 찬사나 비판’에 유혹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도대체 무슨 이유로 걸작이라는 거야?”, 역으로는 “도대체 왜 졸작(요즘엔 망작)이라는 거야?”같은 궁금증을 증폭시키는 것이다. 이런 유혹에 어떻게든 저항하려고 했을 때, 조금 더 괜찮은 글이 나온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끝끝내 이성의 끈을 붙잡고 최상급과 싸워야 하는, 조금 거창하게 말하자면, 평론가의 운명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런 가수 앞에서는 나도 어쩔 수가 없다. 먼저 사후(事後) 정당화라는 의혹을 거두기 위해 이 가수가 거둔 성적부터 좀 살펴본다. 단 2장의 음반으로 판매고는 4000만장 이상을 일궈냈고, 2011년과 2012년 연속으로 빌보드가 선정한 ‘올해의 아티스트’로 뽑혔다. 어디 이 뿐인가. 저 유명한 그래미에서도 이 가수의 성취는 가히 광채를 발한다. 앞서도 강조했지만 단 2장의 앨범으로 그래미 트로피 9개를 가져갔다. 헐. 이건 뭐, (그래미가 작품성을 우선하는 시상식이라고 가정한다면) 흔히들 말하는 상업성과 작품성을 최정상에서 모두 획득한 케이스인 셈이다.
아직 안 끝났다. 먼저 성별부터 밝히고 자료를 살펴볼 생각인데, 이 (여)가수는 3개의 리드 싱글을 통해 ‘연속으로’ 빌보드 싱글 10위권 안에 진입한 역사상 최초의 여성이고,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는 5위 안에 두 장의 음반을 ‘동시에’ 올려놓아 역시나 여성 최초라는 영예를 수확했다. 둘 모두 기네스 레코드로부터 공식적으로 인증을 받은 기록들이다. 또한 이 가수는 두 번째 음반으로 총 23주간 영국 앨범 차트 1위에 올랐는데, 당연히 여성으로서는 최고에 해당된다. 또한 미국에서 거둔 24주는 여성 최초는 물론 1985년 이후로는 남녀 통틀어 최장 기간 넘버원이라고 한다. 2011년 1월에 2집이 나왔으니 무려 26년 만에 기록을 갈아치운 것이다.
그래서 팬들은 그(녀)를 ‘갓델’이라고 부른다. 사실 나는 누가 좀 떴다하면 이름에 ‘갓(god)’을 붙이는 게 영 불편한 쪽이다. 이거 역시 언어 인플레 중에 하나라고 여겨지는 까닭이다. 그러나 위의 기록들을 쭉 한번 살펴보라. 아델이 ‘갓델’로 칭송 받을 근거, 명확하지 않은가 말이다. 이렇게 지난 1집 [19](2008)과 2집 [21]로 아델이 거둔 레알 거대한 성취는 팝 역사를 통틀어서도 분명 드문 수준의 것이었다. 오해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적어두는데, ‘레알 거대한’ 같은 최상급의 최상급 같은 수식은 SNS에서나 남발하지, 이런 글에서는 진짜 오랜만에 써보는 거다. 나 그렇게 쉬운 남자 아니다.
나는 아델의 성공 요인이 전통과 현대의 결합에 있다고 판단하는 쪽이다. 그러니까, 아델의 음악은 소울(과 때로는 발라드에 기반한 곡)이라는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결코 그것이 올드하게 들리지는 않는다. 예를 들면 아델은 ‘Rolling in the Deep’에서처럼 그것에 탄력 있는 리듬을 부여한다든가, 그도 아니면 'Someone Like You'에서처럼 발라드 감성으로 곡을 쭉 밀어붙이면서 설득력을 확보해나간다. ‘Set Fire to the Rain'이나 ‘Chasing Pavements'는 또 어떤가. 듣는 이들은 이 곡들에서 차근차근 스케일을 쌓아 올리며 결국에는 폭발하는 아델의 절창을 만끽할 수 있는데, 여기에서 주된 역할을 수행하는 또 다른 요소는 은근하면서도 힘이 살아있는, 속칭 말하는 ‘떡칠’을 자제한 현악 편곡이다.
즉, 아델은 악기 편곡에 있어서도 현명함을 지니고 있는 싱어 송라이터다. 위에 언급한 두 곡 외에도 ‘Don't You Remember'가 이를 대표하는 경우다. 이 곡에서 아델은 블루스적인 터치를 기반으로 밴조(banjo), 아코디언(accordion) 같은 악기를 사용했는데, 이 때문에 곡은 블루스와 컨트리가 묘하게 공존하는 형태로 완성되어 인기를 모았다. 이렇듯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장르, 악기, 작곡, 포맷 등을 원천으로 삼고 있지만, 이걸 세련되게 들리게 하는 재능. 아델 음악의 핵심이 바로 여기에 위치한다.
새 앨범의 타이틀은 ‘25’가 될 예정이라고 전해진다. ‘19’에 이어 ‘21’, 그리고 ‘25’라니, 갈수록 과작(寡作) 아티스트가 되는 것 같아 섭섭하지만, ‘갓델’이니만큼 시간과 작품성이 비례할 것이라고 믿는 수밖에는 없을 것 같다. 따라서 이 글의 나머지는 ‘25’가 올해 안에 발표되면 쓸 예정이다. 그 때까지 이 코너, 계속될 수 있겠지? 11월이라고 하니까, 앞으로 2개월 정도 남았다.
음악평론가,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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