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어내고, 부수고, 밀어내고. 1일 오후 서울대 관악캠퍼스에서 벌어진 학생 교직원 간 물리적 충돌 상황은 중세시대 ‘공성전(攻城戰)’을 방불케 했다. 오후 3시30분쯤 본관 건물에 대기하던 교직원 100여명이 일시에 돌진, 1층 로비에서 연좌농성 중이던 학생 17명을 강제로 끌어낸 게 이날 충돌의 시작이었다. 반발한 학생 200여명은 오후 8시 사다리와 망치를 동원해 본관 2층 창문을 부수고 들어가 다시 농성에 돌입했다. 출입구를 확보하기 위해 교직원들을 몰아내는 과정에서 또다시 몸싸움이 발생했다.
지난 3월 11일 학교 측이 시흥캠퍼스 실시협약 철회를 주장하며 본관 점거농성 중이던 학생들을 물대포와 사다리차를 동원해 끌어낸 지 불과 51일만이다. 성낙인 서울대 총장은 2일 담화문을 통해 강력한 징계 방침을 발표하고, 불법행위를 저지른 학생 10여명을 형사고발하기로 했다. 양측의 대립이 극단으로 치닫는 모양새다.
시흥캠퍼스를 둘러싼 갈등의 일차적 책임은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대학에 있다. 지난달 4일 시흥캠퍼스와 관련해 두 번째로 열린 학생총회에서 참석 학생 2,082명 중 2,001명이 ‘성 총장 퇴진’을 요구한 것은 학교가 학생들의 신뢰를 전혀 얻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그러나 1일 사태를 기점으로 학생들 내부에서조차 ‘대화 없는 강경투쟁’에 대한 비판이 비등하다. 본관 재점거 소식이 전해지자 학생들은 “학교 측의 물대포 사용을 비판하며 희생자임을 자처해놓고 망치로 유리창을 깨부수냐”고 싸늘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학생들의 주요 관심사인 서울대 폐지 이슈는 침묵하면서 시흥캠퍼스 문제에만 매달리는 이유가 뭐냐”며 ‘소탐대실’이라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학교와 학생 간 중재자 역할을 자처했던 일부 교수도 “학생들이 왜 그렇게 폭력적이고 비상식적인 일을 저질렀을까”라며 황당하다는 분위기다.
지금의 조기 대선정국을 만든 ‘촛불’의 교훈은 소수의 과격함보다 다수의 민주적이고 평화로운 주장이 더 큰 힘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반면 일부 서울대 학생의 과격 투쟁은 자신들의 정당성을 스스로 침식해 버리고 말았다. 원래의 주장이 진정으로 옳다고 믿는다면, 재점거에 나선 학생들은 더 늦기 전에 대학 내 구성원들을 설득하기 위한 노력에 나서야 할 것이다.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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