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은 우리가 괴로움의 끝에서 붙드는 마지막 희망이잖아요. 그런데 이 마지막 희망이 나를 밀쳐낸다면, 정말 갈 곳이 없어지는 셈이죠. 동성애자 중 기독교 신자들의 고통과 아픔에 대해서 한번쯤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어요.”
동성결혼 합법화 소송을 진행 중인 김조광수 감독은 28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ㆍ이하 교회협)가 서울 종로구 연지동 한국기독교회관에서 마련한 대담 행사에 참석해 이렇게 말했다.
김조 감독은 이날 개신교 목회자와 단체활동가 등으로 구성된 청중과 마주 앉아 개신교회, 천주교 성당, 성공회 성당 등을 거치며 겪어온 신자로서의 고뇌를 허심탄회하게 풀어냈다. 그는 “어릴 때부터 ‘호모는 더러운 병’이며 전염된다는 어머니, 선생님, 상담사 등의 말에 어떻게 하면 이 병을 고칠 수 있을까 고민하다 10대 때 찾은 것이 교회와 주님이었다”며 “울면서 매달리고 기도했지만 바뀌지 않아 ‘주님이 나를 버리신 건지 시련을 주시는 것인지’ 고민하며 너무 큰 상처를 받았다”고 말했다.
“주님 다른 사람들 말처럼 이게 병이면 빨리 고쳐달라고 빌었지만, 야속하게도 주님께선 고치시긴커녕 성가대 형을 좋아하게 만드셨죠.(웃음) 정말 매달릴 곳은 신앙밖에 없는데 그런 상황이 반복되니 저 스스로 벌을 줬어요. ‘난 죄인이야 기도문 1,000번 외워야 해’ 하고요. 그러다 보니 무서워지고 지치고 종교와 점점 멀어질 수 밖에 없었어요.”
그는 무엇보다 자기 스스로를 인정하고 긍정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 점을 안타까워했다. 김조 감독은 “제가 동지라고 생각했던 운동권에서조차 동성애는 ‘미제의 썩은 문화가 잘못 유입된 산물’이라고 하던 시절이었다”며 “저 스스로를 인정, 긍정하는데 15년이나 걸렸는데 제 이후의 후배들은 이렇게 까지 긴 시간 고통 받진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런 그에게 마지막까지도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기기 어려웠던 공간은 교회였다. 김조 감독은 “교회는 내게 너무 중요한 공간인데 여기서까지 내가 배척 당해야 하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며 “모든 동성애자들은 스스로 정체성을 모른 채 태어나 한 번쯤은 분위기에 휩쓸려 스스로도 동성애자를 혐오했던 경험들이 있는데 이런 상처를 여러분만큼은 돌아봤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이날 행사장 안팎에서는 일부 교회 단체들이 주최측인 교회협의 해체까지 요구하고 나서며 강력 반발했다. 오직예수사랑선교회 등 반대 단체 측은 행사 1시간여 전부터 주최 측을 “동성결혼 옹호 마귀집단”등으로 규정하며 항의했다. 행사는 결국 충돌을 피하기 위해 장소를 바꿔 조촐하게 열렸다. 하지만 도중에 대담장으로 몰려온 수십 명의 반대 측 교인들이 “정신차리라”며 김조 감독의 말을 끊고 집단 기도를 시작하면서 아수라장이 됐다. 난장판이 된 행사장을 빠져 나온 김조 감독은 “아쉽지만 변화를 위한 첫 발을 뗀데 의의를 두고 싶다”며 발걸음을 옮겼다.
교회협은 지난해 국내 개신교계에서 처음으로 동성애 문제를 공론화하는 등 그간 교회 내의 동성애 혐오 정서를 반성해왔다. 당초 지난해 9~10월 LGBT 관련 신학토론회를 개최할 계획이었으나, 교회 일각의 동성애 혐오를 공개 비판할 교계 패널을 구하지 못해 행사를 연기했다. 12월에는 소책자 ‘우리들의 차이를 직면하다: 교회 그리고 게이, 레즈비언 교인들’을 발간했다. 성소수자 문제에 열린 태도를 촉구한 뉴질랜드 장로교회 소속 목사의 저서를 번역한 책이다.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대담장을 점거해 통성기도로 항의하는 교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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