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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독일 정당해산의 교훈

입력
2014.12.21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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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공산당
독일공산당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으로 비슷한 전례를 가진 독일의 신나치당과 공산당 해산이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실제로 정부는 지난해 통진당 해산 심판을 청구할 때 독일 사례를 제시했다. 해산을 결정하면 표현, 결사의 자유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무너뜨렸다는 비판이 쏟아질 걸 정부도, 헌재도 모를 리 없었을 것이다. 독일이 벌써 60년 전에 했던 일이라며 심리적인 위안을 삼았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독일의 사례는 그 배경이나 이후 역사를 살펴본다면, 모델로 제출한 정부 의도와는 반대로 통진당 해산 선고를 할 필요가 없었다는 교훈을 준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선 ‘민주주의를 위협한다’는 이유로 헌법으로 정당을 해산할 수 있도록 하고 실제로 그것을 실행에 옮긴 나라는, 법치가 보장되고 기본권을 헌법의 핵심 가치로 여기는 선진국 가운데 독일이 거의 유일하다. 1949년 서독 출범과 함께 시행된 독일연방기본법(헌법)은 제21조에 ‘정당의 내부 질서는 민주제의 제원칙에 합치되지 않으면 안 된다. 자유주의나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연방공화국의 파괴를 목적으로 하는 정당은 위헌이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독일의 정치철학자이자 헌법학자인 칼 뢰벤슈타인이 정립한 ‘전투적 민주주의’라는 이 개념을 다른 나라들은 왜 헌법에 도입하지 않았을까. 민주주의라는 개념 자체가 모호한 구석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부정하고 파괴한다는 판단도 때로 자의적인 것이 될 수 있어서였다. 정치 권력이나 사회 분위기, 이를 판단하는 재판관의 성향에 따라 오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럴 위험을 모르지 않았을 텐데 그렇다면 독일은 왜 이 조문을 굳이 헌법에 넣었을까. 독일이 이를 채택한 가장 큰 이유는 나치즘에 대한 반성이었다.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은 집권 후 행정부가 입법권까지 갖도록 하는 전권위임법을 제정했다. 이후 수백만 명의 유대인 학살로 이어진 인종차별과, 공산당이면 무조건 탄압할 수 있는 전체주의 국가로 가는 길을 열어 젖혔다. 헌법 제18조에서 자유ㆍ민주 질서를 공격하기 위해 표현, 집회, 결사 등 기본권을 남용하는 자는 이 권리를 상실한다고 한 것도, 정당 해산을 별도 조문으로 넣은 것도 이 때문이다.

어쨌든 ‘전투적 민주주의’의 정신에 따라 독일 헌재는 1952년 신나치당으로 불리는 독일사회주의제국당을, 1956년에는 독일공산당을 해산했다. 독일공산당의 경우 해산 판단에 5년이라는 기간이 걸렸고 논란이 많았지만 눈 여겨 볼 것은 그 이후다. 독일공산당은 해산되고 12년만인 1968년에 이름 순서만 바꿔 보란 듯이 재창당 했다. 통독 후에는 독일공산당의 본령인 동독 사회주의통일당이 스탈린주의 노선을 포기하고 몇 차례 이합집산을 거쳐 좌파당이 돼 연방 의회에도 진출했고 일부 주에서는 집권까지 했다. 신나치당 역시 해산 10여년만에 독일민족민주당(NPD)으로 부활했다.

독일 통일을 전후해 전 세계를 얽어 맸던 냉전의 먹구름이 걷혔고, 이름을 바꾼 옛 공산당은 지금 독일에서 어엿한 기성 정당이 됐다. 물론 ‘전투적 민주주의’가 겨냥했던 신나치당은 여전히 경계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2002년에 다시 해산 심판의 도마에 올랐지만 이 정당의 주요 강령을 독일 정부의 비밀기관원이 만들었다는 웃지 못할 사실이 드러남에 따라 심의가 중단됐다. 독일 상원은 2012년 말 다시 헌재에 NPD 해산을 청구했다.

그런데 10년 전 해산 청구에 동참했던 독일 정부는 이번에는 청구하지 않기로 했다. 독일 내무장관은 이유의 하나로 강제해산 추진이 의회세력으로는 미미한 신나치당에 대한 불필요한 관심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을 들었다. 청구에 반대했던 연립여당 자민당 대표는 이런 말도 했다. “어리석은 것을 무슨 수로 막겠는가.”

통진당 해산 선고의 논리적, 법리적 타당성 시비를 차치하고라도 이번 헌재의 선고는 독일의 이런 역사에서 배우지 못한 어리석은 결정이다.

김범수 국제부장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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