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이 고액ㆍ상습체납자 명단을 공개하면서 밝힌 체납자들의 돈 빼돌리기 꼼수가 가관이다. 양도소득세 9억원을 체납한 대구의 서모씨는 부동산 경매로 배당 받은 돈을 가죽가방에 넣어 전원주택의 재래식 부뚜막 아궁이에 넣어뒀다가 발각됐다. 이 가방에서는 한화 5억원, 외화 1억원 어치의 지폐뭉치가 쏟아져 나왔다. 소득세 등 수백억원을 체납한 부동산 중개업체 대표 이모씨는 미국에 세운 페이퍼컴퍼니를 이용, 회사에서 빼돌린 돈으로 서울 성북동에 80억원짜리 저택을 사들였다. 이 저택에서는 고급 와인 1,200여병, 명품 가방 30개, 그림 2점, 거북선 모양 금장식 등이 발견됐다. 역시 고액 체납자인 한 골프장 업주는 현금으로 받은 수억원의 골프장 이용료를 캐디 사물함과 책상 서랍 등에 감춰놓았다가 적발됐다.
국세청이 새롭게 공개한 고액ㆍ상습체납자는 2,226명(법인 700개 포함)이다. 총 체납액은 3조7,832억원으로 1인당 평균 17억원에 이른다. 이들은 5억원 이상의 세금을 1년 넘게 체납했다. 고액ㆍ상습체납자 명단공개제도는 체납발생을 억제하기 위해 2004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국세청도 현장정보수집과 체납자의 생활실태 파악 등을 통해 은닉재산을 지속해서 추적하고 있으나, 은닉행위가 워낙 은밀하고 지능적이어서 악성 체납을 뿌리 뽑지 못하고 있다.
조세정의를 무시하고 공정과세 실현을 방해하는 체납자들은 걸러내지 못하면 성실한 납세자들의 박탈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세수가 부족한 데다 증세 논란이 일고 있는 상황에서 체납자 추적은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납세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엄중한 처벌과 함께 그 이상의 경제적 손실을 당한다는 것을 각인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고의 탈세가 발각되면 다시는 그 사회에 발을 붙일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제재가 가해진다는 점을 참고, 일각에서 제기하는 상습ㆍ고의 체납자에 대한 한시적 감치제도 도입 등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국세청 내부에 대한 단속도 철저해야 한다. 어제 세무조사 편의를 제공하는 대가로 수천만원을 챙긴 대구지방국세청 국장과 유사한 혐의로 뇌물을 받은 국세청 4급 공무원이 구속됐다. 말이 세무조사 편의지 세금을 깎아주는 대신 뇌물을 챙기는 방식이다. 동국제강 장세주 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정보를 유출한 국세청 5급과 7급 직원은 징계성 사표를 제출했다. 징세를 맡은 기관의 고위직들이 이래서야 국민이 곳간을 편히 맡길 수 있겠는가. 국세청 직원의 비리는 조세정의를 파괴하는 중대한 범죄이므로 엄중 다스려야 마땅하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