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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과 교수

등록 : 2016.11.22 13:29
수정 : 2016.11.22 14:54

[김월회 칼럼] 무엇을 위한 퇴진이어야 하는가

등록 : 2016.11.22 13:29
수정 : 2016.11.22 14:54

대통령으로서 무자격과 무능력이 백일하에 드러난 지 한 달 가까이 됐다. 법의 준엄한 심판을 받아야 함에도 안 내려오고 버틴 시간도 그만큼 흘러갔다.

그러나 절대 다수의 시민이 수차례 심판했고, 검찰도 대통령을 최순실 등과 공동정범으로 명시했으니 퇴진은 피해갈 수 없는 형국이다.

물론 낙관은 금물이다. 일상에서, 광장에서 대통령 퇴진 활동이 지속돼야 하는 까닭이다. 이때 미루지 말고 함께해야 하는 바가 있다. 퇴진 이후에 대한 헤아림이 그것이다. 퇴진하라는 외침은 단지 ‘박근혜’란 개인을 대통령직에서 축출하기 위함만은 아니다. 차기 대선 주자 중 어느 누군가를 대통령에 당선시키기 위함은 더더구나 아니다. 오로지 이명박 정부 때부터 짓밟혀온 민주주의의 복구, 그 하나다.

그래서 반드시 함께 짚어가야 하는 것이 있다. 무엇을 하기 위한 민주주의의 복원인가라는 물음이다. 이에 대한 성찰 없이는 자칫 1987년 6월 대항쟁 이후처럼 시민의 항쟁이 미완으로 끝날 수 있기에 그렇다. 당시 민주주의 실현이란 시민의 염원은 대통령직선제 실시라는 표어로 집약되었고, 시민 대항쟁을 통해 이를 쟁취하였다. 그런데 결과는 12ㆍ12 쿠데타를 주도하고 5ㆍ18 광주민주화운동을 피로 진압한 군부의 주축, 노태우의 대통령 당선이었다.

무엇을 하기 위한 민주주의 실현인지에 대한 시민의 총의가 집결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거악 ‘군부독재’의 종식이라는 버거운 목표 달성에 치중하느라 민주주의의 실현으로 무엇을 이룩해갈지, 충분히 숙고하지 못했던 결과였다. 역사가 비슷하게 반복된다고 하여 그때의 우마저 다시 반복해선 안 될 터, 민주주의 복구를 통해 달성해갈 바를 함께 숙의해가야 하는 이유다.

이와 관련하여 적어도 다음 두 가지는 목표가 돼야 할 듯싶다. 하나는 ‘동아시아 평화체제’의 구축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인문사회’의 구현이다. 먼저 동아시아 평화체제 구축에 대해 살펴보자. 이 화두는 제기된 지 꽤 됐음에도 갈수록 뒷전으로 밀리는 모양새다. 북핵문제 해결이란 화두가 다른 관련 논의들을 블랙홀마냥 잡아먹었기 때문이다.

북핵문제 해결이 동아시아 평화 실현과 밀접하게 연동되어 있음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그 둘이 등치인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북핵문제의 해결 자체로 동아시아 평화체제가 구축되는 것은 아니란 뜻이다. 사드 배치나 북한 핵 시설 선제 타격론,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등, 근자에 취해진 조치가 그 뚜렷한 증좌들이다. 설사 그런 조치로 북핵문제가 어찌됐든 해결된다고 하여 과연 한반도에 평화가 도래되는 걸까. 그 정도로 미국과 중국 일본 북한 등이 아니 우리 스스로가 평화 지향적일까.

따라서 북핵문제 해결이란 과업은 동아시아 평화 실현을 위한 여러 의제 가운데 하나로 다뤄져야 한다. 북핵문제 해결이란 말로는 군국주의 일본의 부활, 중국의 패권주의적 행보, 북한의 핵무장, 미국의 중국 견제 전략 등이 상시적으로 부딪히는 동아시아의 복잡다단한 정세를 효과적으로 환기할 수 없기에 그렇다.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논의를 북핵문제 해결로만 몰아가지 말고, 동아시아의 평화 공존이란 상위의 목표 아래서 접근하자는 것이다. 그랬을 때, 이를테면 미국 중국 북한 일본 등 동아시아 지역의 주요 당사국들이 한국을 축심으로 움직이게 할 수도 있게 된다. 이와 관련한 구체 내용은 지면 관계상 다른 기회를 보기로 한다.

다음은 ‘인문사회’의 구현이다. 인문사회라 함은 인문학이 우선되는 사회를 말함이 절대 아니다. 인문은 인문학과 많은 부분 겹치지만 그것과 결코 동일하지는 않다. 인문은 ‘사람다움의 무늬’라는 뜻이다. 달리 말해 인간답게 삶이 곧 인문이다. 필자가 말하는 인문사회란 인간다운 삶의 구현이 삶과 사회의 기본이자 그 무엇에도 앞서는 제일 가치로서, 이것이 ‘제도적ㆍ정책적ㆍ이념적ㆍ문화적’으로 실현되는 사회다.

이러한 사회를 구현해야 하는 까닭은, 첫째 그랬을 때 비로소 예측 가능한 삶의 영위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는 특히 사회적 약자들에게 더욱 절실하다. 자라나는 세대에게는 더욱 더 그러하다. 현실이, 또 미래가 예측 가능할 때 그들이 기울인 노력이 비로소 가치를 발할 수 있기에 그렇다. 이것이 기성세대가 광장에 모인 청소년에게 민주주의의 복구를 통해 취해야 할 최소한의 예의다. 둘째는 인문사회가 구현됐을 때 비로소 양식과 상식이 표밭이 되는 사회가 가능해진다는 점이다. 그래야 적어도 ‘부자되세요’ 식의 포퓰리즘이나 지역ㆍ이념ㆍ인종ㆍ성별 등에 근거한 혐오에서 표가 나오는 사회가 더는 되지 않을 것이다.

물론 당장 시급한 것은 자격을 상실한 대통령을 한시라도 빨리 퇴진시키는 일이다. 그렇다고 축출을 통해 무엇을 이뤄갈지에 대한 헤아림을 미뤄 두지는 말자. 입으로는 퇴진을 외치면서 마음과 머리에선 평화로운 세계의 구축을, 인간다운 삶이 당연하게 보장되는 삶터의 구현을 되뇌고 또 되뇌자는 것이다.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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