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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딜런에 이르러 록에 언어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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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딜런에 이르러 록에 언어가 생겼다

입력
2016.10.13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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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딜런의 1965년 영국 투어에 관한 다큐멘터리 '돌아보지 마라'(1967)의 한 장면. 한국일보 자료사진
밥 딜런의 1965년 영국 투어에 관한 다큐멘터리 '돌아보지 마라'(1967)의 한 장면. 한국일보 자료사진

밥 딜런(75)은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싱어송라이터, 시인, 화가다. 한국에서 딜런은 1970, 80년대 유행했던 포크송 ‘블로잉 인 더 윈드(Blowin’In The Wind)’와 ‘노킹 온 헤븐스 도어(Knockin’ On Heaven’s Door)’로 기억된다. 그 때문에 과거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될 때도, 이번 수상 소식이 전해졌을 때도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나는 먼저 시인이며 그 다음에 음악가”라고 말해왔다.

딜런의 팬을 자처하는 강정 시인은 “딜런의 음악 자체가 시적인 에너지를 동력으로 하는 음악”이라며 “1960, 70년대 반전 히피 운동 때 미국 젊은이들의 폭발하는 에너지를 적절하고 탁월하게 언어와 문학으로 표현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는 70년대 통기타 시절 딜런의 음악이 알려지면서 외국의 유명 가수로만 인식 됐지만 외국에서는 이미 오래 전에 문학성을 인정 받은 인물”이라며 “이 기회에 딜런의 문학적 면모가 한국에도 많이 알려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딜런은 1941년 미국 미네소타주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로버트 앨런 지머맨. 그가 이름을 바꾼 것은 아일랜드 시인 딜런 토마스의 영향 때문이다. 10대 때부터 시를 쓴 그는 엘비스 프레슬리, 제리 리 루이스의 음악에 심취했다. 1959년 미네소타대에 입학했으나 3년 만에 중퇴하고 자신의 우상인 포크가수 우디 거스리를 만나기 위해 뉴욕으로 향한다. 그리니치 빌리지 인근의 클럽을 전전하며 연주하던 그는 루이 암스트롱, 빌리 홀리데이 등을 발굴한 유명 음반 제작자 존 하몬드의 눈에 띄어 1962년 1집 앨법 ‘Bob Dylan’으로 데뷔했다.

1963년에 나온 두 번째 앨범 ‘The Freewheelin' Bob Dylan’은 팝 음악 역사상 가장 혁명적인 앨범의 하나로 평가되며 대중적으로도 성공을 거뒀다. 당시 활발했던 청년운동 분위기 속에서 딜런의 음악은 저항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여기 수록된 명곡 ‘블로잉 인더 윈드’는 지금까지도 방황하는 청춘들의 주제가다.

잭 케루악, 앨런 긴즈버그 등 비트닉 작가들의 영향을 받은 그의 시적인 가사는 대중음악의 수준을 한층 끌어 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록의 전설로 자주 거론되는 엘비스 프레슬리, 비틀스, 롤링스톤스와 딜런을 차별화하는 것도 바로 가사다. 딜런 이전의 로큰롤에서는 가사보다 사운드와 형식이 핵심이었으며 이는 비틀스가 등장한 1960년대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딜런에 이르러 록에 언어가 생겼다.

세 번째 앨범 ‘더 타임스 데이 알 어 체인지인(The times They are A-Changin)’도 성공을 거두면서 딜런은 60년대의 가장 도발적이고 전위적인 지성으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한다. 그러나 천성적으로 반항아인 딜런은 대중이 자신을 소비하는 방식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고, 언론 혹은 대중과 자주 마찰을 일으켰다. 1965년 여름 뉴포트 포크페스티벌에 딜런은 일렉트릭 기타를 들고 등장했고, 이에 배신감을 느낀 포크 순수주의자들은 무대에 쓰레기를 던지며 야유를 보냈다. 딜런은 이에 지지 않고 “나를 가만히 내버려두라”고 고함치며 응수했다. 이듬해 영국 런던의 로열 알버트홀에서 열린 콘서트에서는 딜런의 기존 음악을 지지하는 팬들과 새로운 음악을 좋아하는 팬들 간의 충돌도 있었다.

자신을 둘러싼 찬반 논란 속에서도 딜런은 묵묵히 음악적 진화를 계속해 포크 록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창조하고 발전시켰다. 이 시기에 낸 음반으로는 ‘Bringing It All Back Home’(1965), ‘Highway 61 Revisited’(1965), ‘Blonde On Blonde’(1966)가 있다. 1967년 즈음 컨트리로 전향, 음반 ‘John Wesley Harding’(1967), ‘Nashville Skyline’(1969)을 발매하며 컨트리록 유행을 선도하기도 했다.

70년대 ‘천국의 문을 두드리며’를 내놨지만 더 이상 60년대의 뜨거운 열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딜런은 기독교에 심취했고, 이후 앨범에선 가스펠을 노래하는 그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1982년 작곡가 명예의 전당에, 1988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으며 2000년에 폴라음악상을 수상하였다. 1999년 시사주간지 타임은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밥 딜런을 선정했다. 2000년에 영화 ‘원더 보이스’에 실린 그의 노래 ‘Things Have Changed’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했고, 2008년에는 “팝 음악과 미국 문화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는 이유로 퓰리처상 특별상도 받았다.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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