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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가 일깨운 국가 한계

입력
2014.05.2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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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의 생산기술과 후진적 안전기술의 불균형

감성에 기대려는 성향이 정책결정에도 그대로

세월호 참사는 진행형이다. 아직 시신이 수습되지 않은 희생자가 16명이고,유족들의 고통과 생존자들의 심리적 외상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이어지게 마련이다. 이번 참사를 지켜본 국민적 충격과 낙담 또한 마찬가지다.

국민의 낙담은 저마다 내용이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어린 학생들을 내던져둔 채 살겠다고 탈출한 선장과 선원의 행태는 보편적 비난과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인간에 대한 회의까지 불렀다. 또 배가 기울고 뒤집혀 가라앉는데도 적절한 구조 방법을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던 해경 등 구조대의 초기 대응이 상징적으로 드러낸 정부의 무능도 보편적 비난의 표적이 됐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런 보편적 정서에 공감한다. 다만 사고 직후 실감한 국가 능력의 한계가 개인적 낙담의 핵심이었다. 이미 선진국 문턱을 넘어섰다는 나라가 총력을 기울이고도 눈 앞에서 아이들을 수장시킨 현실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너무 참담했다. 그 낙담과 충격은 20년 전 첫 유럽여행 길 내내 ‘이들이 이러는 사이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했던가’하고 가슴을 친 역사 자괴감과 닮았다. 학교와 사회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한국사’는 단숨에 변방의 자위(自慰)로 전락했다. 특히 르네상스 이후 근세 유럽의 발전은 같은 시기 조선의 역사ㆍ문화 발전을 초라하게 만들었다. 모든 충격이 그렇듯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은 한국사의 고유 가치도 나름대로 인정하게 됐지만, 당시 산산이 부서진 ‘민족 자긍심’은 회복의 계기를 찾지 못했다.

세월호 참사가 일깨운 국가능력의 한계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일종의 ‘불균형 발전’ 현상이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미국과 유럽 주요국, 일본 등 앞선 나라를 열심히 뒤따라간 결과 시장제품을 만드는 생산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일부 첨단분야에서는 이미 어느 다른 나라도 부럽지 않을 수준에 이르렀다. 반면 오랜 시간의 축적을 거쳐 조금씩 나아지는 전통기술, 사람의 손으로 하는 기술은 1970년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시쳇말로 돈 안 되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동네 야구’의 발전 없이도 박찬호 유현진 같은 뛰어난 야구선수는 나올 수 있지만, 꾸준히 이런 선수를 배출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저변기술의 발전을 결여한 특화된 기술성장은 반드시 한계를 드러낸다. 이번에 목도했듯, 해상 구난은 결국 사람 손에 달렸다. 장비가 좀 나았을지는 몰라도 민간 잠수사 또한 국제수준에 이르렀다고 보기 힘들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조선대국의 위상과 선박안전, 해난 구조 기술 수준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두 번째는 기술능력과도 관련이 있지만 급박한 위기일수록 이성보다는 감성에 기대는 성향이다. 아이가 넘어져 머리에서 피가 난다면 우선 안고 병원으로 내달려야 한다. 얼굴이 파랗게 질려 벌벌 떨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아이와의 더욱 친밀한 정서적 공감의 결과일지는 몰라도 문제 해결에는 도움이 안 된다. 그런데 초기 구조 작업은 가장 감성적 진폭이 큰 현장의 여론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기술적 한계와 침몰 해역의 환경특성상 잠수사의 선내 조기 진입이 어려웠다면 즉각 다른 기술적 선택을 해야 했다. 조선대국의 해양플랜트 기술이나 선박건조 기술 가운데 짧은 시간에 최소한 세월호의 완전 침몰을 막는 데 돌려서 써먹을 기술이 없었을까.

이런 성향은 재난대응 체계의 미비나 비전문성이 아니더라도 합리적 정책결정을 가로막는다. 이 점에서는 사고 이튿날 박근혜 대통령의 현장 방문 도 감성적 의미에 그쳤다고 볼 수 있다. 최근 대국민 담화에서 밝힌 해경 해체 등 정부조직 개편 방안 또한 합리적 이성의 결과일 가능성이 희박하다. 박 대통령이 밝힌 ‘국가개조’의 핵심은 정부조직 개편과 관료조직의 의식 대전환이다. 그러나 안전기술과 그 수준에 의존하게 마련인 정책결정의 합리성을 끌어올리지 못한다면, 제도만의 개혁으로는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둘 다 사회문화적 문제여서 장기적 대응책이 중요하지만, 지금부터 각성해 발전적 변화 노력을 하지 않으면 해결은 더욱 멀어진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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