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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대우조선해양과 제너럴모터스(GM)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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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대우조선해양과 제너럴모터스(GM)의 차이

입력
2016.06.1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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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상 감사원 산업금융 감사국장이 지난 15일 대우조선해양 등 대형 조선사 부실관리 의혹을 받고 있는 국책은행에 대한 감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희상 감사원 산업금융 감사국장이 지난 15일 대우조선해양 등 대형 조선사 부실관리 의혹을 받고 있는 국책은행에 대한 감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오래 전부터 관가에선 산업은행 회장이 금융위원장보다 국회의원들에겐 더 끗발이 세단 소문이 공공연했다. 청ㆍ장년층 가릴 것 없는 취업난에 산은이 거느린 수많은 자회사에 인사청탁이라도 할 일이 언제 생길 지 모른다는 거였다.

실제 작년 말 현재 산은이 출자전환이나 직접투자 등을 통해 지분 15% 이상을 보유해 실질적인 ‘자회사’로 분류하는 기업은 119개에 달한다. 같은 시점 삼성(62개), 현대차(50개), SK(87개) 등 거대그룹의 계열사보다 훨씬 많은 자회사를 거느린 ‘총수’가 바로 산은 회장이었던 셈이다.

소문으로 떠돌던 산은 회장의 파워가 요즘 속속 확인되고 있다. 15년 넘게 산은이 대주주로 있는 대우조선해양엔 그간 30명의 사외이사 중 18명이 전직 청와대 대변인, 산은 총재, 여당 의원 등 ‘낙하산’ 인사였다. 산은 부총재 출신, 국정원 출신 등 70여명은 자문역, 고문역 등의 직함으로 많게는 억대의 급여와 전용차, 자녀 학자금 등을 챙겨갔다. 최근 홍기택 전 회장이 언론에 고백한 “산은 자회사 인사의 3분의 2는 청와대와 금융당국이 가져갔다”는 푸념은 이전보다 줄어든 파워에 대한 억울함에 가깝게 들린다.

15일 감사원 발표에서도 산은의 어이없는 행태는 또 확인됐다. 대부분 산은 퇴직자 출신인 대우조선해양 재무책임자(CFO)들은 회사가 망가지는 과정에 이사회에 부의된 온갖 무리한 안건에 모두 찬성표를 던졌다. 산은이 자회사를 돕겠다며 파견한 경영관리단 직원들은 자회사 돈으로 호화사택, 차량 등을 제공받고 골프장, 유흥업소까지 드나들었다. 모두 내 돈이, 우리 회사가 아니라 여겨 가능했던 일인데, 오너가 눈을 부릅뜬 민간 기업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일들이다.

예금보험공사를 통해 정부가 소유한 우리은행도 외환위기 이후 벌써 20년 가까이 정부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요즘도 유독 우리은행에 정치인, 전직 관료 낙하산들이 북적이는 건 무엇보다 정부 소유여서다.

올 들어 실적이 좋아지자 우리은행 직원들은 행장부터 나서 해외 기관들에 “제발 우리 주식을 좀 사달라”며 열심히 세일즈 중이다. 어떻게든 정부의 굴레에서 벗어나 보자는 몸부림인데, 정작 우리은행 직원들이 가장 걱정하는 건 산다는 이가 나서도 정부가 지분 매각승인을 안 해줄까이다.

나라마다 위기를 겪으면 정부가 부실기업의 지분을 사들여 더 큰 화를 막게 마련이다. 미국도 그랬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미국 정부는 막대한 재정을 쏟아 부어 도산 직전의 제너럴모터스(GM), AIG 등 거대 기업의 대주주가 됐다. 하지만 미국 재무부는 이들 기업의 지분을 6년도 안 돼 모두 시장에 내다 팔았다. 때마침 경기가 괜찮아 당초 들인 돈보다 조금 더 남기긴 했지만 모든 기업에서 남는 장사를 한 건 아니다. GM 주식을 처분하면서 미국 정부는 100억달러(약 12조원) 넘는 손해를 봤다. 당장 헐값매각 비판이 쏟아졌지만 제이컵 루 재무장관은 “공적자금은 이익을 내는 게 목적이 아니다. 덕분에 수십만명이 일자리를 지켰고 미국의 자동차산업도 살아났다”고 맞받아쳤다.

미국 정부가 매각을 서두른 건 무엇보다 민간기업을 정부가 오래 소유할 경우 경영상 비효율이 커질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미국은 ‘(정부에) 고인 물(민간기업)은 썩는다’는 걸 역사적 필연으로 인식하고 있던 셈이다.

정부가 불가피하게 소유할 부실기업은 앞으로도 또 생길 것이다. 문제는 이를 언제, 어떻게 다시 놓아주느냐다. 감사원은 “부실기업 경영이 일단 정상화되면 신속히 보유주식을 매각해야 하는데도 산은은 2001년 이후 72개 출자전환 기업 가운데 20개를 정상화 후에도 적극 매각하지 않아 대우조선해양 같은 재부실을 불렀다”고 지적했다. 이미 벌어진 일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애써 진행 중인 기업 구조조정은 미래에도 악몽으로 돌아올 게 뻔하다.

김용식 경제부 차장 jawoh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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