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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시스, 배철현의 비극 읽기]신탁 대신 투표, 공개재판이 새로운 정의를 실현하다

입력
2017.10.14 04:4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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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의 원형 극장. 음향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무대 그 자체에 적합하게 설계됐다. 아테네 시민들은 여기에 모여 오레스테이아 3부작을 보면서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를 고민했다.
아테네의 원형 극장. 음향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무대 그 자체에 적합하게 설계됐다. 아테네 시민들은 여기에 모여 오레스테이아 3부작을 보면서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를 고민했다.

아테네 시민들은 무대 위 제단에 놓인 항아리인 ‘피쏘스(pithos)’를 응시한다. ‘피쏘스’는 그들에게 매일매일 일어나는 어려운 문제들을 성급하게 해결하지 말고, 깊은 숙고를 거쳐 최선의 안을 도출하라는 경고다. 그들이 자신들의 개인적인 이익을 넘어 아테네라는 도시공동체를 구축하고, 그 안에서 그들 모두 인정할 수 있는 최선의 이익을 찾아 가기 위해 ‘아테네 법정’을 창설하였다.

이 법정에서 일어날 숙고의 과정은 이 항아리에 들어갈 투표로 드러날 것이다. 투표는 아테네 공동체를 위해 서로의 사사로운 이익을 넘어 서로를 위한 최선의 이익을 찾아가는 설득의 결과다. 설득은 오랜 수련을 거쳐 도달할 수 있는 예술이다. 만일 어떤 이가 자신의 의견을 심하게 주장하거나, 혹은 소극적으로 주장하면, 그는 상대방을 설득하는데 실패할 것이다. 설득은 모두가 승복하는, 숨어있는 중심을 찾아가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승복할 중심을 찾아라

아테나는 이 법정의 판사다. 분노의 여신들과 아폴로의 열띤 논쟁들을 들은 후에 말한다. “우리가 이제 충분히 듣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내가 이 배심원들에게 정의가 실현되는 곳에 자신들의 표를 던지라고 할까요?”(674-75행) 투표란 ‘자신이 지닌 표(찬반 표시가 된 조그만 돌)를 항아리에 던지는 행위’다. ‘투표하다’의 영어표현 ‘to cast one’s vote’나 한자 ‘투표(投票)’ 모두 기원전 5세기 바로 아테네 법정에서 일어난 투표행위에서 생겼다. 이 순간을 아폴로는 다음과 같이 관조적으로 표현한다. “우리의 화살통은 비었다. 우리의 모든 화살은 날라 갔다. 나는 이 재판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기다리면서 지켜보겠다.”(676-77행)

아테네 원형극장에 앉은 시민들은 어리둥절하지만, 무대 위의 재판과정, 정의를 실현하는 새로운 방식인 재판과정을 관찰한다. 그들은 지금까지 ‘정의(正義)’를 전통적인 기득권 세력인 귀족의 사사로운 이익이라고 여겼다. 정의는 힘 있는 자들이 자신들의 부와 권력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그러나 새로운 정의가 등장한다. 그들 앞 무대에서 펼쳐지는 법정은 자신들의 주장을 거침없이 논리 있게 말하고, 그 논거를 경청하는 숙고와 배려의 잔치였다. 시민들의 대표가 배심원으로 선출되어 직접 재판에 참석했을 뿐만 아니라, 시민들이 이 광경을 눈앞에서 생생하게 보기 위해 무대 위로 올라가 그 과정을 지켜보았다. 아테나가 다시 시민들에게, 이 역사적인 순간의 중요성을 설명한다. “아테네 사람들이여. 이제 내 법규를 들으십시오. 당신들은 유혈사태를 처음으로 재판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배심원 회의는 아테네인들을 위해 지금이나 미래에 언제나 존속할 것입니다.”(681-684행)

캐스팅보트를 쥔 아테나

아테나는 시민들에게 독재나 무정부를 추종하지 말며 ‘두려움’도 추방하지 말라고 촉구한다. 두려움 없는 사람은 정의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아테네 도시의 근간과 구원은 무엇인가? 아테네의 높다란 성벽과 군사력인가? 무엇이 아테네를 다른 국가로부터 보호하고 아테네 시민들을 구원할 것인가? 그것은 바로 이 법정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심이다. 보이지 않는 정의라는 원칙을 자발적으로 지키려는 마음과 그것을 어겼을 때, 형벌을 면치 못한다는 공포다. 그 뿐 아니라 정의를 자신들 삶의 원칙으로 수용하고 그것을 무엇보다도 소중하게 여기는 경외심이다.

아테나는 자신이 창설하는 배심회의를 정의한다. “이 배심회의는 뇌물이나 사사로운 욕심으로부터 영향 받지 않고, 그것 자체가 존경할 만한 가치가 있으며, 불의한 일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분노하고, 잠을 자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항상 깨어있으면서 나라를 지키는 수호자가 되어야 한다.” (704-706행)

배심원들이 한 명씩 제단으로 다가가 항아리에 투표석을 던진다. 오레스테이아가 자신의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델피 신전 안으로 들어가 ‘옴팔로스’를 부여잡고 신탁을 받으려고 몸부림친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아무도 모르는 음침한 곳에서 신탁을 받은 여사제로부터 판결을 받는 비공개적이며 비민주적인 절차와는 다르다. ‘옴팔로스’가 이제 투표석을 담는 항아리로 대치되었다. 이제 재판은 아테네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모든 아테네 시민들이 보는 가운데, 그들이 정당하게 선출한 배심원들이 공개적이며 민주적으로 판결을 내릴 것이다.

각각 배심원들이 오레스테스에게 어떤 판결을 내릴지 아무도 모른다. 이들은 분노의 여신들과 아폴로의 논거를 마음속에 떠올리며,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를 기준으로 오레스테스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테나가 투표석을 던지며 말한다. “마지막으로 판결을 내리는 것은 내 소임이다. 나는 오레스테스를 위해 이 투표석을 던진다. 만일 투표가 가부 동수가 나왔을 경우, 오레스테스가 이긴 것이다.”

투표가 끝나, 배심원 두 명이 앞으로 나와 항아리에서 투표석을 쏟아 개표를 시작한다. 아테네 시민들이 숨 죽이고 그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아테나가 판결을 내린다. “여기 서있는 오레스테스는 살인죄를 벗었다. 투표석이 가부 동수가 나왔다.” 오레스테스는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아폴로와 함께 무대에서 나간다.

충격받은 분노의 여신들을 설득하라

충격 받은 자들은 분노의 여신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정의가 아테네를 굳건하게 뒷받침하는 원칙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가족과 친족, 그리고 부족을 이루며 살았을 때 삶의 원칙이었던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정의가 무너지는 순간을 보고 경악한다. 사실 자신들의 구태의연한 과거 세계관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울부짖은 것이다. “너희 젊은 신들아! 너희들이 오래된 법을 짓밟고 내 손에서 빼앗아 가는구나! 명예가 실추되어 불행하고 분노에 찬 나는 이 땅에 내 심장에서 분출하는 독을 뿌릴 것이다.” 분노의 여신들이 두려워한 것은 아테네 시민들에게 받은 모욕이었다.

아테나는 오래된 정의, 즉 잘못을 하면 그에 상응하는 벌을 치러야 하는 오래된 정의 또한 새로 건설된 민주도시 아테네에 절실하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아테나는 이제 분노의 여신들을 달래며, 새로운 민주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려고 설득한다.

“자, 내가 당신들을 설득할 테니, 견디면서, 그렇게 낙담하지 마십시오. 그대들은 진 것이 아닙니다. 가부동수였기 때문에 당신들에게 치욕이 아닙니다.” 투표결과가 절묘하게 동수가 나와 사실 오레스테스가, 또 아폴로가 이긴 것도 아니다. 아테나는 분노의 여신들에게 제안한다. “내가 그대들에게 가장 거룩하게 약속하겠습니다. 그대들은 의로운 땅에서 지하 성소를 얻어, 당신들 제단에 있는 빛나는 왕좌에 앉을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곳에서 나의 시민들로부터 존경을 받게 될 것이오.” (804-807행)

이 제안에 분노의 여신들은 분노한다. 그들은 나는 그런 제안을 받을 수 없다고 항의한다. 자신들처럼 연로한 자들은 지하에 살수 없다고 항변한다. 그러자 아테나는 다시 그들을 설득한다. “나는 싫증 내지 않고 그대에게 유익한 것을 권하겠습니다... 만약 당신이 내 혀의 달콤함과 매력인 ‘설득’을 거룩하게 존경한다면, 당신은 머물 것입니다... 당신은 이 땅에서 영원히 정당한 명예를 누릴 것입니다.”

자비의 여신으로 변신하는 분노의 여신

분노의 여신들은 아테나의 지속적인 설득에 마음이 움직인다. 설득이라는 그리스 단어 ‘페이쏘스(peithos)’는 설득하려는 사람이 상대의 입장에 서서 진실한 연민을 가질 때, 이루어진다는 의미다. 설득하려는 사람은 인내를 가지고 진정성을 가지고 반복하여 상대방을 설득해야 한다.

분노의 여신들은 아테나에게 말한다. “여왕 아테나여! 그대가 어떤 처소를 주시겠다는 겁니까?” 아테나는 말한다. “온갖 고통에서 자유로운 곳입니다. 그것을 받으십시오.” 아테나는 섬세하고 다정하게, 그리고 인내를 가지고 분노의 여신들을 설득한다. 그들은 마침내 아테나의 제안을 수용하여 외친다. “나는 아테나와의 동거를 수용하겠습니다. 결코 이 도시를 모욕하지 않겠습니다... 이 도시를 위해 기도하며 나는 호의에서 예언하겠습니다.”

설득은 아테네 법정의 문법이며, 아테네 민주주의의 근간이다. 아테나는 외친다. “이 모든 것을 여신들의 호의로 이 나라에 베풀다니. 나는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설득’의 눈길이 그토록 거칠게 거절하던 여신들을 향하여, 내 혀와 입을 인도해 주어 나는 행복하다.” 분노의 여신들이 이제 자비로운 여신들이 되었다. 아테네 시민들은 모두 자주색 옷으로 차려입고 횃불을 들고 이들과 아테네 도시를 행진한다.

오레스테이아 3부작은 중용의 승리다. ‘범죄’-‘정죄’-‘화해’의 3단계로 전개된 유일한 삼부작이다. 분쟁과 불화가 민주주의의 승리인 조화로 승화되었다. ‘자비로운 여신들’은 희망적이다. 오레스테이아는 고대 그리스의 ‘신곡’이다. ‘아가멤논’은 지옥,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은 연옥이라면, ‘자비로운 여신들’은 천국이다. 아이스킬로스는 오레스테이아 3부작이라는 ‘통과의례’를 통해 아테네 시민들을 민주시민으로 인도하였다. 오레스테이아는 아테네에 아직도 굳건하게 서있는 파르테논 신전보다도 더 위대한 아테네 민주주의와 문명의 향기로운 유산이다.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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