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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악수

입력
2017.02.21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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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논쟁적인 악수 장면이 많다. 1973년 파리 평화협정 체결 뒤 월맹의 레둑토와 미국 헨리 키신저, 베를린 올림픽에서의 아돌프 히틀러와 금메달 리스트들의 악수 등이다. 협정 체결 불과 2년 뒤 월남은 월맹의 대공습으로 지도에서 사라졌다. 평화의 악수는 전쟁을 가장한 위선이었던 셈이다. 히틀러도 육상 4관왕에 오르면서 미국의 흑인 영웅으로 떠오른 제시 오웬스와는 악수하지 않아 구설에 올랐다. 이유를 놓고 여러 설이 오갔지만, 정작 오웬스는 백인 표를 의식해 백악관에서 자신과의 만남을 거부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을 더 비난했다.

▦ 가장 비극적인 악수는 1938년 네빌 체임벌린 영국 총리와 히틀러의 뮌헨에서의 악수일 것이다. 체코 일부를 독일에 넘기는 조건으로 뮌헨협정을 체결한 뒤 체임벌린은 의기양양하게 귀국해 ‘평화’를 자축했다. 그러나 전쟁의 이빨을 감춘 히틀러의 악수는 2차대전으로 귀결됐고, 체임벌린은 가장 유약하고 순진한 지도자로 전락했다. 정치인의 악수는 위선적이다. 표를 얻기 위해 마음에 없는 악수를 하고는 뒤에서 세정제로 닦아내기 바쁜 행태는 오래된 논란거리다.

▦ 도널드 트럼프의 악수는 폭력적이다. 손등을 툭툭 치다가 상대방 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맞잡은 손을 자기 쪽으로 홱홱 잡아당기는 그의 ‘줄다리기 악수법’은 상대방에게는 당혹 그 자체다. 대선 후보였던 미트 롬니,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닐 고서치 연방대법관 지명자 등이 희생양이 됐다. 이를 간파한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자기 손이 끌려가지 않도록 힘을 줘 중간에서 성공적으로 악수를 끝내자 SNS에서는 ‘트럼프의 기이한 악수에 트뤼도가 강하게 저항한 것은 캐나다의 우월함을 보여준 것’이라는 말이 나돌았다.

▦ 트럼프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19초 동안이나 악수해 화제가 됐다. 그러나 더 쓴웃음을 자아낸 것은 아베의 표정이다. 몇 번의 줄다리기에서 완패한 뒤 트럼프의 손에서 해방된 아베가 입을 크게 벌리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모습은 한 편의 코미디다. 사실 트럼프는 악수를 혐오하기로 유명하다. 2000년 대선 출마를 고려했다가 악수하는 것이 싫어 포기했다는 말도 있다. 세균을 옮기는 야만적인 인사법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뒤에서 열심히 닦아내는지 모르나 트럼프다운 악수법이다.

황유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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