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오리나, 낙태·약물중독 문제 직설적으로 제기해 큰 박수
루비오 의원 이란 핵협상 등 현안 꿰뚫는 답변으로 눈길
젭 부시, 후반에 존재감 드러내
트럼프, 패배자로 분류되지는 않아
‘2부 리그’에서 어렵게 올라온 ‘홍일점 후보’와 지한파(知韓派) 상원의원을 위한 밤이었다.
16일(현지시간) 저녁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근교 시미밸리의 로널드 레이건 기념도서관에서 진행된 미국 공화당 대선주자 2차 TV토론회는 당초 예상대로 다른 10명 후보가 선두주자 도널드 트럼프에 총공세를 가하는 형국으로 진행됐다. 그러나 트럼프를 궁지에 몰아붙여 우세를 보였다고 평가 받은 후보는 칼리 피오리나 전 휴렛팩커드(HP) 최고경영자(CEO)와 마르코 루비오(플로리다) 상원의원 정도였다.
미국 정치인의 인기도를 주가로 환산한 방식으로 측정하는 ‘프레딕트잇’에 따르면 이날 토론 직후 ‘2차 토론의 최대 승자가 누구인가’를 주제로 이뤄진 거래에서 피오리나의 주가(70센트)는 전날 보다 16센트나 상승했다. 루비오 의원의 몸값(23센트)도 11센트 올랐다. 토론에 나선 11명 후보 가운데 주가가 전날 대비 오른 정치인은 이 두 명 밖에 없었다.
워싱턴포스트도 피오리나와 루비오 의원을 토론회 승자로 평가했다. 폭스뉴스가 진행한 지난 달 토론회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해 ‘1부 리그’로 올라온 피오리나는 이날도 낙태와 약물 중독 등의 문제를 감성적이면서도 직설적으로 제기해 큰 박수를 받았다.
루비오 의원 역시 발언 시간이 상대적으로 짧았는데도, 이란 핵 협상과 이민문제 등 당면 현안 전반에 걸쳐 핵심을 꿰뚫는 답변을 내놓았다. 공화당 잠룡 중 유일하게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에게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진솔한 사과를 요구했던 루비오 의원은 이날도 한국을 중시하는 발언을 내놓았다. 대통령이 된다면 전용기로 방문할 곳이 어디냐는 질문에 “이스라엘과 한국, 일본 등 동맹국을 찾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른 미국 정치인들이 동맹국 호칭에서 일본을 앞세우는 것과 달리, 주저 없이 한국을 먼저 거명했다.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는 전반에는 지루한 모습을 보였으나 후반에는 존재감을 드러낸 것으로 평가됐다. 트럼프는 수세적 모습이었으나 ‘패배자’로는 분류되지 않았다.
3시간 가량 이어진 토론회 내내 각 후보 공격을 트럼프가 방어하는 모습이 반복됐다. 젭 부시 전 지사는 “트럼프가 플로리다주에서 카지노 사업권을 염두에 두고 정치자금을 기부하려 했으나, 내가 거절했다”고 공격했다.
피오리나는 트럼프가 자신의 외모를 언급한 데 대해 “이 나라 여성들이 트럼프 후보가 한 이야기를 분명히 들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청중들의 박수와 환호를 이끌어냈다. 트럼프는 “피오리나가 아름다운 얼굴을 가졌다고 생각한다”고 꼬리를 내렸다. 두 사람은 경영 능력을 놓고도 말씨름을 벌였다. 트럼프가 ‘HP를 망친 경영자’라고 공격하자, 피오리나는 ‘카지노 사업으로 엄청난 빚을 진 사람이 트럼프’라고 반박했다.
앞서 진행된 ‘2부 리그’토론에서는 릭 샌토럼 전 펜실베이니아 주지사, 조지 파타키 전 뉴욕 주지사, 바비 진달 루이지애나 주지사, 린지 그레이엄(사우스 캐롤라이나) 상원의원이 논쟁을 벌였다. 그레이엄 의원이 두각을 나타낸 이 토론에서도 현장에 없던 트럼프에 대한 공격이 주요 의제로 떠올랐다.
미국 언론은 트럼프가 10대1로 싸운 이번 토론회를 계기로 공화당 주류의 트럼프 찍어내기가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로 토론회를 주최한 CNN방송 중간에는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생전 미국인의 화합을 당부한 것과 트럼프가 ‘장벽을 쌓으라’고 외치는 장면을 대비시킨 정치 광고가 잇따라 방영됐다. 워싱턴포스트도 “지난달 1차 토론에서 호되게 당한 다른 후보들이 트럼프의 독주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모습을 보였다”며 “트럼프 진영의 앞날에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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