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식
주필

등록 : 2017.03.10 04:40
수정 : 2017.03.10 04:40

[황영식의 세상만사]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등록 : 2017.03.10 04:40
수정 : 2017.03.10 04:40

탄핵심판은 헌법을 지키기 위한 제도

주권자라도 기본약속 깨뜨릴 수 없어

촛불집회 태극기집회 모두 그만둬야

팍타 순트 세르반다(Pacta Sunt Servanda).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는 라틴어 법언(法諺)이 오늘 유난히 새롭다.

오전 11시면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을 선고한다.

어떤 경우든 길게는 나라가 혼란을 이겨내고 활로를 찾을 것으로 믿는다. 험난한 현대사를 헤쳐온 국민 저력에 비춰 그렇다. 다만 이런 믿음도 단기적 혼란에 대한 우려를 막지는 못한다. 잠깐의 혼란이더라도 깊은 상처를 남긴다면, 지난 10여년 사이 점점 뚜렷해진 국민 인식의 정파성(政派性)을 굳혀 나라의 앞길을 가로막을 것이기 때문이다.

헌재가 탄핵을 인용하든 기각하든 반발이 만만찮을 전망이다. 국민 저마다의 다른 생각은 그 자체로서 정당해서, 설사 헌재의 결정에라도 얼마든지 찬반을 표할 수 있다. 그것이 민주주의다. 그러나 단순한 의사 표시에 그치지 않고, 분풀이하듯 물리력을 행사한다면 얘기가 다르다.

불행히도 그런 조짐이 보인다. 헌재의 탄핵심판 변론 종결 이후 SNS를 통해 ‘이상한’ 주장을 퍼 보내는 친구들이 늘었다. “언론인이니 꼭 읽어 봐야 한다”는 주문까지 달렸다.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에 절차상 하자가 있어 원천무효라느니, 헌재의 ‘8인 재판관 체제’가 위헌ㆍ위법이라느니 등이다. 미리 슬쩍 물어보기라도 했다면, 충분히 대답해 줄 만했다. 국회 의결의 절차상 하자 여부는 헌재가 이미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심판 당시에 문제가 안 된다고 밝힌 내용이고, ‘8인 체제’ 문제는 헌법재판소법이 ‘재판관 7인 이상’(22조 ①)이란 명문 규정을 들어 설명할 수 있었다. 처음 뒤늦게 그런 얘기를 보내다가 이내 포기했다. “너도 나라 망쳐 먹으려는 놈들과 한편”이란 말에 더는 안 되겠다 싶어서다.

하기야 그 정도는 빠삭하게 꿰고 있을 박 대통령측 소송대리인단이 헌재 변론에서 그런 얘기를 잔뜩 쏟아냈으니, 보통사람들이야 오죽하랴. 재판관의 짜증만 북돋울 엉뚱한 변론에 대한 의문이 오히려 친구들의 SNS로 풀렸다. 의외로 그들의 낚시에 걸려든 사람이 적지 않았던 셈이다. 그래도 괜찮다. 생각이 다르다고 멀어질 친구 사이도 아니었다.

문제는 우연히 이런 생각에 빠진 사람들이 태극기집회처럼 뭉칠 때 나타날 현상이다. 개인은 약해서 좀처럼 생각대로 행동하지 못하지만, 모이면 저절로 힘이 솟는다. 더욱이 나라를 ‘불온 세력’ 으로부터 구한다는 나름대로의 도덕적 확신까지 더해지면 폭발력을 갖는다. 그런 군중이 헌재 결정에 조직적으로 반발하려는 움직임은 그래서 불안하다. 태극기집회만이 아니다. 헌재 결정의 향방에 따라 촛불집회 또한 마찬가지 불안 요인이 될 수 있다.

최근 한국일보 여론조사에서 보듯, 탄핵 반대 응답자 중 탄핵 인용 결정에 ‘승복하겠다’와 ‘승복하지 않겠다’는 48.9%와 44.2%, 탄핵 찬성 응답자 중 탄핵 기각 결정에 ‘승복하겠다’와 ‘승복하지 않겠다’는 35.8%와 ’59.9%’로 나타났다. 특히 헌재의 결정이 자신의 생각과 다를 경우 항의 집회 등에 나설 것이라는 응답자가 탄핵 찬성 응답자는 59%, 반대 응답자는 31.4%에 이르렀다.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를 같이 비교해선 안 된다는 사람들이 많다. 80% 가까운 국민이 탄핵을 바란다는 점에서는 맞다. 그러나 양측이 모두 ‘헌정질서 수호’를 명분으로 내걸고 있고, 헌재의 탄핵심판이 헌법이 명시한 핵심적 헌법수호 절차여서, 그 결정에 승복해야 한다는 데 양측이 다를 수 없다.

이유는 분명하다. 헌법은 주권자인 국민의 기본약속이다. 따지고 보면 탄핵정국도 그 약속이 예정한 절차에 따른 것이다. 국민이 약속을 달리 해석해 서로 다른 태도를 보였더라도 헌재가 어느 쪽 해석이 맞는가를 최종 판단한 뒤에도 그에 대해 반발하는 것은 그동안 외쳐온 헌법과 헌정질서 수호 명분과는 모순된다. 헌재 결정 이후 촛불ㆍ태극기 집회를 함께 끝내야 할 이유다. 도저히 안 되겠다면, ‘헌법 수호’ 대신 ‘헌법 파괴’를 외치고 나서든가. 팍타 순트 세르반다!

주필 yshw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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