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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6.08 04:40

[차범근 특별기고] ‘붉은 함성’은 다시 타오른다, 첫 경기에 불을 지펴라

[창간특집] 러시아월드컵 D-6

등록 : 2018.06.08 04:40

내 나이 예순다섯.

많지도 적지도 않은 나이 같은데도 흐르는 물 따라 살다가 문득 되돌아 보면 엄청나게 다른 세상 속에서 살고 있는 나를 본다.내심 이번 월드컵부터는 ‘말하지 않고 글 쓰지 않으며 오직 즐겨야지’ 하는 생각에 월드컵 관련 의견을 묻는 기자들에게는 “젊은 친구들한테 물어보라”며 사양하곤 했었다. 하지만 한국일보의 간곡한 요청만큼은 거절할 수 없었다. 한국일보와 나의 특별한 인연 때문이다.

내가 축구선수로서 받은 첫 번째 큰 상이 ‘한국일보 신인상’이었고 삼 십여 년 전 독일생활을 마치고 귀국해서 가장 먼저 글을 썼던 지면이 한국일보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나이에 무슨 축구인생을 얘기할 게 있겠냐 싶지만, ‘차범근의 축구인생’이라는 제목으로 무려 24회나 썼다. 시작은 한 두 회 혹은 3회 정도로 계획했다가 재미있다는 칭찬에 거의 한 달을 미친 듯이 썼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는 몇 달 후 ‘90월드컵 차범근 코너’라는 당시에는 없던 축구전문 칼럼을 썼다. 짧게 들어오는 해외통신이 월드컵 정보창구의 전부였던 시절에 축구의 중앙 무대에서 곧바로 돌아온 감각과 정보, 그리고 세계최고의 축구전문지 ‘키커’의 편집실과 직통으로 연결할 수 있었던 덕분에 그들이 취재한 얘깃거리들을 쓸 수 있었다.

연재를 마치고 월드컵이 열리는 이탈리아에 도착하니 당시 기자들은 한국일보를 오려서 넣고 다니며 교과서처럼 들여다 보곤 했었다.

한국일보에 연재된 차범근의 분데스리가 인생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당시 한국일보에 연재된 ‘90월드컵 차범근 코너’

이 정도면 나와 한국일보의 인연은 대단하다고 할 만하다. 물론 당시 한국일보가 가장 독자가 많은 그런 신문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내가 한국일보를 고집했던 것은 스포츠에 관한 가장 많은 관심과 노력을 집중했던, 한마디로 스포츠 절대강자 신문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오늘 또 다시 아무것도 하지 않으리라는 나의 결심을 깨고 창간기념이라는 말에 새벽 일찍 자판기를 두드리고 있다.

월드컵이다.

‘아! 월드컵이구나!’ 하며 과장되게 새삼스러워 하고, ‘이제는 월드컵이다!’하며 관심 없는 팬들의 손을 잡아 끌고 억지로 일으켜 세워야 할 만큼 지금 대한민국에는 엄청난 뉴스들이 넘쳐나고 있다. 솔직히 나 역시도 인터넷을 켜고 가장 먼저 찾는 것은 월드컵 뉴스가 아니고 ‘트럼프 마음이 바뀌지 않았는지’ 확인하는 일이다. 또 선거도 있다. 월드컵이 끼어들 틈이 도무지 나질 않는다.

그 탓인지 지난 3일 대표팀이 출국하는데도 공항의 분위기는 무겁고 냉랭했다. 신태용 감독의 손을 붙잡고 “역사는 우리 스스로 써야 해!”라며 분위기에 개의치 말라고 했지만 돌아오는 내내 걱정으로 마음이 무거웠다.

그래도 나는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라고 있다. 첫 경기에 최소한 비기기라도 해서 월드컵의 불씨를 당겨야 한다고.

2018 러시아월드컵에 출전하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손흥민이 21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축구대표팀 월드컵 출정식 행사에서 차범근 전 대표팀 감독과 참석하고 있다. 류효진기자

전력분석차 스웨덴에 간 아들 두리(대표팀 코치)가 그 쪽도 분위기가 나쁘긴 마찬가지라고 했다. 이탈리아를 탈락시킨 스웨덴 팬들의 한껏 높아진 눈높이로 기대가 야유로 되돌아오고 있는 모양이다.

지난 월드컵 우승국 독일은 팬들도 팀도 언론도 너무 자신만만하다. 평가전 성적이 시원치 않아도 긴장감보다는 ‘우리는 참 좋은 팀이야!’하는 자신감이 훨씬 더 팽배하다.

맞다. 자연스럽고 이상적으로 세대교체를 해낸 독일은 분명 좋은 팀이다. 그러나 좋은 팀이 꼭 좋은 경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축구는 왜 정신력만 얘기하냐고 하는 팬들이 많지만 경기에 임하는 정신자세나 분위기는 그 팀의 능력과 거의 같은 비중으로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 나는 이런 독일이 걱정스럽다. 팬들도 언론도 너무 너그럽다. 남의 걱정을 할 때는 아닌 것 같지만.

우리가 첫 경기에서 기대의 불씨를 꺼트리지 않는다면 아무도 보지 않을 것 같았던 평창동계올림픽에 전국민의 관심이 쏟아졌듯이 나는 우리 대표팀에게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기대를 꼭 쥐고 있다.

시청 앞 거리 응원을 준비하는 비용이 절대 부족하다고 울상이다. 방송국은 광고가 팔리지 않아서 중계권료를 감당하기가 어려워서 적자라고 한다. 팬들은 “기대하지 않는다”며 본심과 다른 말들을 하고 있다.

그래도 막상 월드컵이 시작되면 우리 팀의 경기를 보기 위해 TV 앞에 모여들 것이다. 그들에게 기대감을 심어주고 그래서 또 다시 우리의 특기인 ‘경우의 수’를 계산하며 한 경기 한 경기를 기다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 글을 쓰게 된 것도 나 역시 뭐라도 해야 할 것만 같은 부담감이 한몫 했다.

우리 선수들은 풀이 죽어서 떠났다. 이렇게 최악의 분위기 속에 월드컵을 떠난 적은 없었다. 야속한 마음까지 든다.

이제 트럼프가 마음을 바꾸지는 않을 테니 북미회담 걱정은 그만하시고 월드컵에 관심을 가져주시면 안될까요? 우리 팀에는 차범근보다 골을 더 잘 넣는 손흥민이 있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귀염둥이 이승우가 있습니다.

관심 있게 봐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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