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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품위 있는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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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품위 있는 죽음

입력
2015.11.3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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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 지난 6월 “세계에 도움이 안되고 짐만 된다고 느끼면 조력자살을 고려하겠다”고 해 논란이 됐다. 그는 자신의 바람과는 반대로 연명하는 것은 “완전한 모욕”이라고 했다. 외국에서 환자가 죽음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지난해에는 시한부 판정을 받은 말기 환자가 의사의 도움으로 생명을 끊는 과정을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했다. 미국에서는 동식물의 죽음을 통해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교육이 정착돼 있다.

▦ 잘 산다는 것은 결국 잘 죽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잘 죽는 것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대비는 너무 후진적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죽음을 거부하고 공포에 괴로워하다 비참하게 삶을 마감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죽음을 준비하지 않고 있다가 갑작스럽게 맞닥뜨린 결과다. 대학병원급에서 호스피스 완화병동을 운영하는 곳도 가톨릭대 하나뿐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0년 넘게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는 것은 죽음에 대한 인식과 사회적 뒷받침의 미비 때문이다.

▦ 웰다잉(well-dying)은 무의미한 연명의료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건강할 때 미리 죽음을 준비하는 적극적인 과정이다. 유서를 써놓는다든지, 죽기 전에 해야 할 버킷리스트를 작성하는 것도 그런 일환이다. 뉴질랜드에서는 노인들이 자신의 관을 생전에 직접 만드는 게 유행이라고 한다. 조력자살, 안락사, 존엄사 등 죽음을 선택하는 많은 개념이 생기고 논란도 적지 않지만, 죽음의 순간에 기계적 호흡 등을 거부함으로써 원치 않는 삶을 포기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세계적 추세다.

▦ 국회에 계류된 연명의료 중단 법안 처리가 또 무산될 처지다. 24일 보건복지 소위에서 아예 논의조차 되지 않아 다음달 초 정기국회 폐회까지 처리가 어려워졌다. 여론은 연명의료를 원치 않는다는 게 압도적이다. 얼마 전 발표된 ‘세계 죽음의 질 지수’에서 한국은 80개 국 중 18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완화의료 비율은 33위에 불과했다. 법령 미비 탓이다. 더 이상 환자는 환자대로, 가족은 가족대로 무의미한 생명연장 때문에 정신적, 물질적으로 피폐해지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한다. 품위 있는 죽음을 막는 것은 삶을 파괴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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