宋 “김만복 당시 국정원장이 北에 직접 의견 확인 제안”
金 전 원장 “그런 사실 없다” 반박
백종천 전 안보실장이 전했다는 ‘北 반응’ 쪽지도 실체 엇갈려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를 두고 노무현 정부 인사들 사이에서 진실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노무현정부가 2007년 유엔의 북한 인권결의안 표결에 기권 입장을 정하는 과정에서 북한의 의견을 물어봤다는 송 전 장관의 주장에 대해, 당시 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측은 이미 기권 입장으로 정리한 상황이어서 북측에 물어볼 이유가 없었다고 반박했다. 북한에 기권 입장을 통보해주고 그 반응을 취합한 것을 북한 의견을 물어봐서 결정한 것처럼 왜곡했다는 게 문 전 대표 측 주장이다. 당시 회의 참석자들도 송 전 장관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며 가세했다. 하지만 송 전 장관은 “회고록에 쓴 대로”라며 문제가 된 내용을 수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양측의 주장을 종합하면, 2007년 11월 20일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표결을 앞두고 우리 정부의 입장을 정하기 위한 회의가 11월 15일, 16일, 18일 세 차례 열렸다. 회고록에서 북한의 의견을 물어보기로 한 것은 18일 열린 3차 회의 때였다. 하지만 문 전 대표 측 김경수 더민주 의원은 “대통령 주재로 열린 16일 회의에서 기권 입장으로 최종 결정됐다”며 “기권하기로 결정한 마당에 (18일 회의에서) 북에 다시 물어보고 결정하자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고 반박했다. 송 전 장관도 회고록에서 18일 회의에 참석하니 “이구동성으로 왜 이미 결정된 사항을 자꾸 문제 삼느냐고 불만을 터뜨렸다”고 적었다. 다른 참석자들은 ‘기권 입장’으로 결정된 것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송 장관 스스로 시인하고 있는 셈이다. 18일 3차 회의가 열린 것은 송 전 장관이 2차 회의 뒤 ‘마지막 호소문’을 올리기로 결심하고 A4 용지 4장의 서한을 대통령에 전달했기 때문이었다.
첨예하게 엇갈리는 것은 18일 3차 회의의 성격과 결정 내용, 문 전 대표의 역할이다. 이 회의에서 찬성 입장을 재차 주장하며 북한의 반발을 너무 우려하지 말라는 송 전 장관의 얘기에 국정원장이 “그러면 남북 채널을 통해서 북한의 의견을 직접 확인해보자고 제안했다”는 게 회의록 내용이다. 하지만 회의 참석자인 이재정 전 장관은 본보 통화에서 “북한의 답이 뻔한 상황에서 북한에 물어보고 하자는 이야기는 말이 안 된다”고 반박했다. 문제의 제안을 한 당사자로 지목된 김 전 원장도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인하면서 오히려 “송 전 장관의 회고록이 국가기밀누설죄에 해당된다”고 역공을 펴기도 했다. 김경수 의원은 ‘18일 회의’에 대해 “(기권 입장을) 외교부가 반발하니, 송 장관을 설득하는 과정이었다”고 설명했다.
북한과의 접촉에 대한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는 것도 ‘18일 회의’에 대한 시각 차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송 전 장관은 아직 결정되지 않은 사안을 두고 북한에 사전 의사 타진하는 것으로 본 반면, 이미 결정된 기권 입장을 북한에 통보한 것이란 게 김 의원 주장이다. 김 의원은 “당시 남북 대화가 이뤄지는 시점에서 이런 이슈를 알려주기도 하는, 통상적 과정이었다”고 설명했다. 문 전 대표의 역할에 대해서도 송 전 장관은 회의 주재자로서 북한의 의견을 확인하자는 결론을 낸 인물로 묘사했으나, 김 의원은 “당시 회의 주재자는 백종천 안보실장이었다”고 반박했다. 이 전 장관은 “문 전 대표는 15일 1차 회의 때는 북한 인권 결의에 찬성을 했다가 다수가 기권 입장을 내자 그 결론을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3차 회의 이틀 뒤인 같은 해 11월 20일 싱가포르의 대통령 숙소에서 백종천 안보실장이 북한 측 반응이라며 건넸다는 쪽지에 대해서도 주장이 엇갈린다. ‘인권결의안에 찬성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남측의 태도를 주시할 것’이라는 내용의 북한 반응이 담겨 있었다는 송 전 장관의 주장에 대해 김 의원은 “안보실장이 그런 사실이 없다고 한다”며 “안보실에서 전체 취합된 정보를 정리해서 보고하지, (쪽지) 한 장 들고 와서 보고했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 북한 반응과 각국 동향을 함께 정리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송 전 장관이 회고록에서, 당시 노 대통령이 “북한에 물어볼 것도 없이 찬성 투표하고, 송 장관한테는 바로 사표를 받을까 하는 생각도 얼핏 들었는데…”라고 언급한 것에 대해서도 김 의원은 “송 장관을 배려하고 체면을 구기지 않도록 하기 위한 대통령의 스타일이 아니었나 싶다”고 말했다.
송용창기자 herme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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