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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제왕적 대통령제가 현행 헌법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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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제왕적 대통령제가 현행 헌법 때문인가

입력
2016.12.02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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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시국은 ‘흐림’과 ‘폭우’의 연속이다. ‘맑음’이라는 예보가 나올 것 같지 않다. 이제 개헌이라는 새 태풍이 몰려올 기세다. 착한 태풍이 될지 아니면 국토를 갈기갈기 찢어버릴 갈등의 태풍일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이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요즘 개헌을 주장하는 세력은 한결같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가 현행 헌법에 원인이 있다는 논지를 편다. 헌법이 사람이라면 억울해 죽을 지경일 것이다. 필자의 전문영역인 지방분권 및 헌법과 관련해 살펴보자면 한국 같은 단일국가와 미국, 캐나다 등 연방국가는 분리해서 보는 게 옳다.

연방국가는 연방과 주(州) 사이의 수직적 권력분립과 연방 또는 주 각각의 수평적 권력분립이 이뤄진다. 연방국가의 지방자치제도 또한 중앙정부와 자치단체 사이의 수직적 권력분립과 중앙정부 또는 자치단체 각각에서 수평적 권력분립이 이뤄진다. 우리나라는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수평적 권력분립에 관심을 갖고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특히 현행 헌법은 지방자치를 강조함으로써 그 이전보다 지방분권 측면에 있어 괄목할만한 성과를 이뤄냈다.

다만, 우리에겐 북한 변수가 있어 연방국가와는 달리 대통령의 군사 및 외교권을 강화한 것이다. 대 의회 관계를 보면 대통령에게 의회해산권도 없는 게 현실이다. 오히려 전 세계에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헌법재판소라는 상왕 제도, 검찰의 기소독점권 등 사법권에 대한 문민통제가 안 되는 게 문제다. 현행 헌법에 국민 발의 및 소환권이 있었다면 매주 반복되는 촛불집회 없이도 이번과 같은 국정농단 사태를 보다 원활하게 수습했을 것이다.

현행 헌법에서 제왕적 대통령제 조항을 찾기는 쉽지 않다. 문제는 우리 정치권이 수직적ㆍ권위주의적 문화에 익숙한 데 있다. 수직적 권력분립이란 권력 집중을 막기 위해 구조적(중앙과 지방), 시간적(임기와 정년), 권한상(직급과 직책 분할)으로 권력을 나누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대통령과 국무총리(또는 내각)와 같이 동일 권력에 속한 권력 간의 분립을 뜻한다.

이 역시 현대사회에선 헌법상 규정보다 각 기관이 실질적 통제와 협업을 통해 각자의 기능을 다 함으로써 이뤄진다. 법률 사항이지 헌법 사항은 아닌 것이다. 개헌론의 또 다른 요지는 현행 헌법으론 분권형 국가를 추구하기 어려워 지방정부의 자율성에 한계가 있으며, 지방정부가 자율적인 입법 및 재정권을 확보하려면 개헌을 통해 조세법률주의 등이 개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도 토론회 등에서 실질적 지방분권을 위한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인정한 적이 있지만, 헌법 개정 없이 법률 제ㆍ개정과 자치단체의 권한 조정 등을 통해 얼마든지 지방분권을 강화할 수 있다. 문제는 국회와 중앙정부가 자신들의 권한과 기능을 지방정부에 이양하기를 꺼리는 데 있다. 이명박 정부는 제왕적 대통령의 상징인 인사권을 제한하기 위해 국민의 정부에서 만든 중앙인사위원회를 없애 버렸다. 박근혜 정부는 각 부처 장관에게 주어진 인사권을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일원화시켰다. 이 같은 제도 개악이 제왕적 대통령에 대한 우려를 낳은 것이지, 현행 헌법 어디에도 대통령에게 인사권 전횡을 허용하는 조항은 없다.

권력은 운용하는 자의 몫이다. 지금의 정국 혼란은 대통령이 국가권력을 사유화한 데서 온 것이지, 대통령 단임제 헌법 때문이 아니다. 현행 헌법에서 호가호위해 온 정치인들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또다시 옷 바꿔 입고 개헌을 요구하는 점은 경계해야 마땅하다. 이들의 개헌 주장은 국민 기본권을 신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의회와 대통령 권한을 나눠 먹자는 식으로 들리는 게 솔직한 느낌이다. 제대로 된 개헌 논의는 당연히 필요하다. 그러나 그 논의가 지금의 시대정신과 맞바꿔 먹는 식으로 진행돼서는 안 된다.

임승빈 명지대 행정학과 교수ㆍ한국지방자치학회 차기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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