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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톺아보기] 내지(乃至)

입력
2017.06.15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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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비가 30 내지 50mm가 내린다고 한다.”는 ‘내일은 비가 30에서 50mm까지 내린다’는 뜻이다. 이처럼 수량을 나타내는 말 사이에서 ‘내지’는 ‘얼마에서 얼마까지’의 뜻으로 쓰인다. “내일은 비 내지 눈이 내린다고 한다”는 ‘내일은 비 또는 눈이 내린다’는 뜻이다. 이처럼 사물을 나타내는 말 사이에서 ‘내지’는 ‘또는’의 뜻으로 쓰인다. 여기까지 보면 ‘내지’는 뜻에 따라 용법이 분명히 구분되는 낱말로 보인다.

그런데 함께 오는 말이 ‘번호’나 ‘직급’일 경우 ‘내지’의 뜻을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제12조 내지 제14조를 준용한다”와 “국가정보원의 1급 내지 4급 직원”의 예에서 ‘내지’는 어떤 뜻일까. ‘번호’나 ‘직급’을 수량의 뜻과 관련 지은 사람은 이 예에서의 ‘내지’를 “제12조에서 제14조까지”나 “1급에서 4급 직원까지”로 이해할 것이다. 반면 ‘번호’나 ‘직급’을 수량의 뜻과 무관하게 본 사람은 이를 “제12조 또는 제14조”나 “1급 또는 4급”으로 이해할 것이다.

그런데 법 조항이 이처럼 두 가지로 해석되면 큰 문제다. 이 때문에 ‘알기 쉬운 법령 정비 기준’(법제처)에서는 이를 “제12조부터 제14조까지의 규정을 준용한다”와 “국가정보원의 1급부터 4급까지의 직원”으로 바꿔 제시했다. 어떤 낱말의 해석 때문에 오해가 생길 수 있다면 그 낱말을 다른 표현으로 대체하란 뜻이다. 그런데 이런 혼선을 낱말의 문제로만 보고 엄연히 사전에 실린 ‘내지’를 없애야 할 낱말로 여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언어의 속성상 낱말의 뜻과 용법을 가르는 기준이 항상 명확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낱말을 잘 부려 써 뜻이 명확한 문장을 만들려는 노력이다.

최경봉 원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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