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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소득 불균형이 불황의 원인이라면

입력
2016.08.1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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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신용등급 올라도 경제는 온통 잿빛

익숙한 처방은 듣지 않는 막다른 골목

복지도 성장의 한 축이란 인식 있어야

‘가난 구제는 나라님도 못한다’는 속담이 새삼스럽다. 대통령이 경제를 살려보겠다고 이리저리 뛰어도 부질없다. 이번 정권 들어서도 경제는 전진은커녕 후진하지 않은 게 다행이다. 국가신용등급이 올랐다지만 경제는 온통 잿빛이다. 민심은 사실상 ‘폭풍전야’다.

요즘은 서울역 지하역사에 노숙자들이 별로 없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노숙자들이 아침부터 여럿 모여 막걸리를 나눠 먹거나, 구석에서 방뇨를 하는 경우도 흔하게 목격됐다. 불황으로 노숙자가 분명 늘어나야 하는데 이상했다. 해답은 지하역사 벽면에 있었다. 서울역장 명의의 플래카드다.‘역 구내에서는 음주, 흡연, 노숙행위를 할 수 없습니다-철도안전법 제48조 및 국민건강증진법 제34조에 의함’. 외국인 관광객이 늘면서 당국이 단속을 강화한 모양이다. 실제로 통계를 보니 단속 건수가 대폭 늘어났다. 지난해 지하철 직원ㆍ보안관 등이 적발한 노숙 건수가 거의 2만 건으로 2014년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었다. 올해도 5월까지 노숙 단속 건수가 1만 건에 육박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7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제조업 취업자수는 지난해 7월보다 6만5,000명이나 줄어들었다. 수출이 부진한 데다 조선업을 중심으로 구조조정이 본격화한 때문이다. 특히 울산과 경남 등 조선업체가 밀집한 지역의 실업률 상승폭이 큰 것으로 조사됐다. 거리로 쫓겨난 사람이 많아졌다는 얘기다. 거제지역의 한 조선소에 근무하는 임원에게 최근 들은 이야기는 섬뜩하다. “이대로 가면 거제지역에서만 실직자가 수만 명에 이를 것이다. 거제는 섬이라 갈 곳도 마땅치 않다. 그러면 이들이 거제 도심으로 나오지 않겠는가. 그렇게 되면 거리가 무서워질 것이다. 그들을 위해 취로사업이라도 준비해야 한다.” 불황의 그늘은 예상외로 파괴적이다. 미국의 디트로이트가 그랬다. 더 큰 문제는 거제지역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불황의 원인에 대해 경제학자들 간에 의견이 다양하다. 그중 소득 불균형을 불황의 결과가 아닌 원인으로 보는 견해는 파격적이다. 아나톨 칼레츠키의 저서 ‘자본주의 4.0’에 따르면 국가의 소득이 높아지더라도 소득 불균형이 심해지면 이 소득이 점점 자본가에게 집중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자본가는 소득보다 지출이 적은 반면 임금 노동자는 점점 저축을 줄이고 생활유지를 위해 부채에 의존한다. 이런 상황에서 성장을 유지하기 위해 정부가 적자재정을 통해 수요를 진작시키고, 은행은 돈을 풀어 서민들에게 신용을 확대한다. 하지만 소득분배가 계속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진행되면 이들이 더 이상 빚을 감당할 수 없다. 이들이 채무불이행 상태가 되면 금융위기와 불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바로 이러한 상황에 근접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경제학의 기본이론조차 현실에서 들어맞지 않는 상황에서 칼레츠키의 논리에 100% 동의하기는 어렵다. 이미 유럽과 일본이 마이너스 금리정책을 쓰고 있지만, 소비를 촉진하는 게 아니라 저축만 늘리는 역효과를 내고 있다. 그럼에도 칼레츠키의 주장에 새삼 관심이 가는 것은 우리 경제가 익숙한 처방으로는 더 이상 해결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처한 게 아닌가 싶어서다. 이미 고도성장을 하지 않는 이상 경제에 낙수효과가 없다는 것이 증명됐다. 부는 계속 한쪽으로 쏠리고 있다. 돈이 실핏줄로 흘러야 하는데 큰 혈관으로만 흐르니 아래쪽으로 스며들지 않는다. 결과는 분배와 복지가 부실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권의 세제개편 논의에 기대를 걸어본다.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대기업과 최상위고소득자의 증세를 골자로 하는 세법개정안을 내놓았다. 일부 보완할 부분이 지적되고 있지만, 일단 논의의 장에 올려 볼 만한 내용이다. 새누리당과 국민의당도 조만간 개정안을 낼 것이라고 한다.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복지확대가 불가피하다는 전제라면 세제개편은 필수적이다. 정부는 계속 증세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지만 더 이상 피해 갈 수는 없는 상황이다. 복지지출도 소득재분배뿐 아니라 경기부양 효과를 갖는다. 복지도 성장의 한 축이라는 것을 유념하기 바란다.

조재우 논설위원 josus6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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