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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거슬러 오르면 성수대교ㆍ삼풍 참사와 맞닿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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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거슬러 오르면 성수대교ㆍ삼풍 참사와 맞닿아”

입력
2016.11.2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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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능한 정부ㆍ이윤만 좇는 기업

망각이 주는 교훈은 비극의 재발

아내 임신하자 가습기부터 구입

피해자들 노력 덕에 가족은 무사

영화 제작에 롯데그룹이 나서

상영 늘리고 수익금 환원했으면

더불어민주당 윤리심판원 위원이기도 한 소재원 작가는 24일 “국회는 권력이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주어졌음을 기억하고, 중단된 가습기 살균제 문제 해결 노력을 재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인기 기자 hongik@hankookilbo.com
더불어민주당 윤리심판원 위원이기도 한 소재원 작가는 24일 “국회는 권력이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주어졌음을 기억하고, 중단된 가습기 살균제 문제 해결 노력을 재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인기 기자 hongik@hankookilbo.com

가습기 살균제 참사 이야기가 스크린에 담길 예정이다. 빼앗긴 숨들의 절규가 가장 대중적인 문화매체로 기록되면, 우리는 생활화학제품의 위험성과 정부의 허술한 법 체계, 기업의 탐욕을 다시 한 번 곱씹을 수 있게 된다. 그 중심에는 올해 5월 영화의 원작이 될 소설 ‘균’을 출간한 소재원(33) 작가가 있다. 소 작가는 8월 개봉한 영화 ‘터널’을 비롯해 ‘소원(2013)’ ‘비스티 보이즈(2008)’ 등의 원작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24일 오후 서울 구로동에서 그를 만났다.

“창작이 아닌 기록과도 같은 책을 쓰고 싶었어요.” 소 작가는 지난해 6월부터 가습기 피해자와 환경단체 활동가를 만나고, 자료를 수집하는 등 취재에 공을 들였다. 작가라기보다 취재기자에 가까운 모습이다. 소설은 가습기 살균제로 생후 90일된 딸 민지와 아내를 잃은 주인공이 진상규명을 위해 거리로 나선다는 내용이다. 현실 사례와 구분이 어려울 정도다. 소 작가는 “사실에 가까운 허구(페이크다큐)를 통해 내가 살아온 대한민국의 진실을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폭로했다”고 설명했다.

“흥행을 포기한 탓에 1,000부도 안 팔린 소설”을 굳이 집필한 이유는 올해 2월 태어난 그의 아들 ‘소명’ 때문이다. 소 작가는 “지난해 5월 아내가 임신하자 가장 먼저 구입한 육아용품이 가습기였다. 이후 자연스레 가습기 살균제 문제를 접했고, 피해자들의 희생과 재발방지 노력 덕분에 내 아들과 아내는 비극을 피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소 작가는 아들 100일 잔치를 여는 대신, 비용으로 썼을 100만원을 피해자들에게 기부했다. 책 인세도 거부했다. 소 작가에게 돌아갈 판매 수익은 모두 피해 구제에 쓰인다.

아들 이름처럼 그의 소명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소 작가는 소설의 영화화 작업에 매진 중이다. 현재 각색된 시나리오가 완성됐고, 제작사 및 메가폰을 잡을 감독도 정해졌다. 이르면 내년 봄 촬영에 들어갈 계획이다. 제작비용으로 30억~40억원이 예상되는데, 투자ㆍ배급사를 찾고 있다. 소 작가는 “영화 제작에 롯데그룹이 나서주면 좋겠다”고 요청했다. 2006년부터 와이즐렉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해 22명의 사망자를 낸 롯데쇼핑은 주요 가해기업 중 하나다. 소 작가는 “롯데가 진심으로 반성한다면 소유하고 있는 상영관을 통해 영화를 널리 알리고, 수익금을 피해자들에게 환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화 개봉시점도 고민이 깊다. 정부와 기업을 비판하는 영화가 얼마나 외압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지 걱정된다는 것이다. 지난해 4월 세월호 참사를 다룬 영화 ‘다이빙 벨’이 외압 논란 속에 상영관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고 막 내린 경험을 한국 사회는 기억하고 있다. 소 작가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볼 수 있도록 제작진은 정권 교체가 이뤄진 내후년에 개봉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했다.

소설의 부제는 ‘가습기 살균제와 말해지지 않는 것’이다. “지구상 유례 없는 참사”라 불리는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실은 처음이 아니라는 뜻이다. 소 작가는 “정부의 무능, 기업의 이윤 추구로 발생한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1994년 성수대교와 이듬해 삼풍백화점 붕괴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금도 최순실 게이트 등 다른 현안에 가습기 살균제 문제는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망각이 주는 교훈은 같은 비극의 재발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소설은 거리에서 전단을 나눠 주는 주인공의 다짐으로 끝난다. “달라지는 건 없는데 나는 매일 같이 이곳에 나와요. (중략) 내가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우리 민지랑 민지 엄마는 잊혀요. 그래서 해요. 변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해야만 해요.”

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가습기 살균제 문제를 다룬 소설 ‘균’
가습기 살균제 문제를 다룬 소설 ‘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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