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에서 홍보와 대관 업무만 맡아온 A부장은 3년 전 미국 지사에 파견 나갔던 때를 떠올리며 “간이 푹 쉬었던 시간”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에서 1년 남짓 비슷한 업무를 맡았지만 저녁에 상대방을 만나 술을 마신 기억은 한 번도 없다”고 덧붙였다. 반면 한국에서 그의 식사 시간은 ‘술의 연속’이자 ‘업무의 연장’이었다. 그는 매일 간장약을 먹고 버텨야만 했다.
‘김영란법’을 두고 일각에서 ‘식사비 3만원, 선물 5만원 상한선은 너무 심한 것 아니냐’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미 외국에선 이 보다 더 엄격하게 부정한 청탁을 금지하고 있다. 미국은 1962년 ‘뇌물, 부당이득 및 이해충돌방지법’을 제정, 공직자들이 받을 수 있는 선물을 1회 20달러(약 2만2,000원), 연간 50달러(약 5만5,000원)까지만 허용하고 있다. 공직자와 공무수행 민간인 등이 이를 위반하면 최대 15년 징역형, 25만달러(약 2억7,700만원)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캐나다도 2006년부터 공직자와 그 가족은 직무와 연관된 일체의 혜택을 모두 거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영국 런던의 공직자는 25파운드(3만7,000원) 이상의 선물이나 접대를 받을 경우 내용과 가격, 제공자를 신고해야 할 뿐 아니라 관리자의 승인까지 필요하다. 싱가포르는 부패행위조사국(CPIB)이라는 별도의 기관이 부정청탁 혐의자를 조사, 체포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일본 공직자의 접대비 역시 10년 전 1인당 5,000엔(5만4,400원) 이하로 정해졌다. 나라마다 법 적용 대상이나 금액 한도 등에서 다소 차이는 있지만 해외에선 부정청탁이 엄격히 금지된 지 오래다.
일본의 한 정보기술(IT) 기업 홍보실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B팀장도 “식당에 1인당 지불 금액을 자동으로 계산해 주는 기기가 설치돼 있을 정도로 어느 한쪽이 모두 식사비를 지불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서로 대화를 나누는 게 접대의 주요 목적이지 한쪽이 우위를 차지하거나 일방적으로 대접을 받는 건 윤리에 어긋난다는 인식이 강하다”고 말했다. 싱가포르 식음료회사에서 근무했던 C부장도 “한국처럼 따로 선물을 사 주거나 술자리를 갖는 일은 거의 없고 가볍게 차 한 잔 정도 하면서 서로의 얼굴을 익히는 게 접대의 전부”라고 설명했다. 미국에서 2년 전 한국으로 돌아온 D부장은 “만약 업무적으로 의원실 등을 찾아가야 한다면 무조건 상대 업무시간 중에 가고 선물을 준다고 해도 감사카드 정도”라며 “기본적으로 식사 시간은 개인적으로 즐기는 시간이지 한국처럼 비싼 술과 음식을 곁들이며 누군가를 대접하는 시간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맹하경 기자 hkm07@hankool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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