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차 집회서 1000만 돌파
“아침을 여는 닭의 기운이 진실과 정의를 깨우는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2016년 마지막 날, 두 달 넘게 토요일마다 서울 광화문 일대를 환히 밝힌 촛불이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를 새로 썼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며 지난해 10월 29일 3만명으로 시작한 촛불집회 참여자가 이날 기어이 연인원 1,000만명을 찍었다.
지난달 31일 강추위와 들뜬 세밑 분위기에도 아랑곳 없이 가족과 친구 손을 붙잡고 광화문광장에 나온 시민들은 저마다 손에 쥔 촛불에 정유년(丁酉年) 닭의 해를 맞는 희망을 담았다. 광장 해치마당은 노란색 종이배에 새해 소원 3가지를 적어 넣기 위해 모여 든 시민들로 북적거렸고, 주한미국대사관 앞 경찰 차벽에 붙은 30m 길이 대형 천에는 ‘소외된 이가 없는 나라’ ‘아이들이 제대로 설 수 있는 새해’ 등 시민들이 직접 쓴 새해맞이 문구가 가득했다. 초등학생 딸과 10차 촛불집회에 참석한 박병훈(49)씨는 “나라 안팎으로 우울함이 가득했던 2016년을 보내는 기분이 즐겁지만은 않다”면서도 “새해에는 상식과 진실이 통하는 사회가 자리잡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이날 촛불집회를 주관하는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이 추산한 참여 인원은 광화문 100만명을 포함해 전국 110만명. 지난 주까지 892만명의 누적 인원을 합쳐 1,000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매주 거리에 나와 준엄한 촛불의 힘을 아로새겼다
10차 집회는 박근혜 시대를 마감하고 새해를 맞는다는 의미의 ‘송박영신(送朴迎新)’ 주제에 맞춰 다양한 행사와 공연이 어우러졌다. 록밴드 시나위의 기타리스트 신대철과 가수 전인권은 참가자들과 함께 호흡하며 무대를 달궜다. 공연 도중 “촛불집회 누적 참가자 1,000만명 돌파” 소식이 전해지자 시민들은 주최 측이 앞서 나눠 준 폭죽을 터트리며 자축하기도 했다.
청와대와 헌법재판소, 삼청동 총리공관을 향한 발걸음도 3주째 이어졌다. 시민들은 ‘박근혜를 구속하라’ ‘황교안도 퇴진하라’ 등 국정을 농락한 위정자들의 죄목을 낱낱이 열거하며 성난 함성을 내질렀다. 직장인 김선근(53)씨는 “새해에는 비리의 몸통인 박 대통령뿐 아니라 국민의 눈을 멀게 한 부역자들도 상응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후 11시 종로구 보신각 제야의 타종 역시 퇴진 구호로 정유년의 시작을 알렸다. 퇴진행동 관계자는 “1,000만 촛불은 그릇된 현실을 부수고 참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힘의 원천”이라며 “박 대통령 탄핵과 정의로운 나라가 실현될 수 있도록 새해에도 촛불을 꺼뜨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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