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딥 포커스] 넷플릭스가 던진 개봉일 받아 말아... 극장은 ‘부글부글’

입력
2017.06.05 15:21
0 0
제70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영화 ‘옥자’는 글로벌 기업에 의해 납치된 슈퍼돼지 옥자를 구하려는 산골 소녀 미자의 모험을 그린다. 주연배우 틸다 스윈튼(왼쪽)과 안서현. 넷플릭스 제공
제70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영화 ‘옥자’는 글로벌 기업에 의해 납치된 슈퍼돼지 옥자를 구하려는 산골 소녀 미자의 모험을 그린다. 주연배우 틸다 스윈튼(왼쪽)과 안서현. 넷플릭스 제공

봉준호 감독의 신작 ‘옥자’를 극장에서 볼 수 있을까. ‘옥자’의 개봉 방식에 대해 대형 멀티플렉스 체인이 크게 반발하면서 극장과 온라인 동시 공개라는 넷플릭스의 영업 전략이 영화계 전체의 논쟁으로 번지고 있다.

‘옥자’는 세계 최대 동영상 스트리밍업체 넷플릭스가 제작비 5,000만달러(약 560억원)를 투자해 만든 영화다. 봉준호 감독이 연출하고 틸다 스윈튼, 제이크 질렌할, 폴 다노, 릴리 콜린스 등 미국과 영국의 배우들이 출연해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다. 오는 29일 넷플릭스를 통해 190개국에서 공개되고, 한국에선 온라인뿐 아니라 극장에서도 같은 날 동시 개봉한다.

멀티플렉스 극장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극장에서 일정 기간 상영한 뒤 IPTV와 온라인 등 다른 플랫폼에서 서비스하는 기존의 영화 유통 방식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국내 멀티플렉스 체인 1위 CJ CGV(CGV)와 2위 롯데시네마는 보이콧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국내 335개 멀티플렉스 극장 가운에 139개를 거느린 CGV의 태도가 특히 완강하다. 끝내 접점을 찾지 못한다면, 서울극장과 대한극장 등 대기업 체인에 속하지 않은 극장들을 찾아가야만 ‘옥자’를 스크린에서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봉준호 감독은 ‘옥자’에 대해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동물의 피로와 고통을 보여주는 영화”라고 설명했다. 넷플릭스 제공
봉준호 감독은 ‘옥자’에 대해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동물의 피로와 고통을 보여주는 영화”라고 설명했다. 넷플릭스 제공

29일 온라인, 극장 동시 공개에

CGV, 롯데시네마 보이콧 움직임

“극장과 협의 안해… 갑질 못 참아”

극장 유통 독과점 뒤집힐까 촉각

“자본, 유통망이 하나 더 생겨”

제작자 창작자들은 다른 시각

넷플릭스의 갑질 vs 독과점이 더 문제

멀티플렉스의 한 관계자는 “넷플릭스가 극장들과 아무런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29일 개봉을 발표했다”며 “넷플릭스가 요구하면 극장들이 무조건 스크린을 열어 줘야 하는 것이냐”고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이 관계자는 “넷플릭스의 갑질”이라고까지 표현했다.

극장들은 생존의 문제를 호소한다. 온라인 스트리밍이 일반화되면 극장산업이 위축될 것이라는 위기감 때문이다. ‘절찬 상영 중’보다 ‘절찬 스트리밍 중’이 친숙해지는 날이 언젠가 올 수도 있다. 극장들이 눈에 뻔히 보이는 ‘옥자’의 상업적 가치를 포기하면서까지 넷플릭스에 진입 장벽을 치는 이유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제작부터 투자, 배급, 상영까지 수직계열화해 영화시장을 독점한 대기업들이 시장 질서 운운하는 것부터가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작은 영화는 개봉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투자사들의 입맛에 맞는 영화만 쏟아지는 상황에서 대기업 극장들의 ‘옥자’ 보이콧은 ‘제 밥그릇 챙기기’를 위한 ‘실력행사’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스크린 독과점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극장들이 구실로 내세우던 ‘관객의 볼 권리’도 이번 논쟁에선 배제돼 있다.

중견 영화 제작사 A의 대표는 “프랑스처럼 홀드백(극장 상영 영화가 다른 플랫폼으로 이동하는 기간)을 엄격하게 준수하는 환경이면 모르겠으나, 그간 대기업의 독과점과 갑질 등 부정적 영향이 컸던 만큼 그들의 주장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는 “대기업들이 개별 작품을 시장에서 배제하는 방식으로 이번 논란을 근시안적으로 다루고 있다”며 “온라인 플랫폼의 성장이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인 만큼 기존 극장산업과 온라인 플랫폼의 공존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고 짚었다. 그는 “넷플릭스가 영화 ‘판도라’와 ‘루시드 드림’을 세계 시장에 배급했듯 넷플릭스를 통해 국내 영화산업의 해외 진출을 도모하는 것도 한 가지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봉준호 감독이 지난달 15일 서울 세종로의 한 호텔에서 열린 ‘옥자’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봉준호 감독이 지난달 15일 서울 세종로의 한 호텔에서 열린 ‘옥자’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콘텐츠 다양성에 기여 vs 영향력 확대 미지수

넷플릭스는 극장에 위협적인 존재이지만 제작자나 창작자에겐 또 다른 기회다. 자본과 유통망이 하나 더 생긴 셈이기 때문이다. 제작자들 사이에서 환영까지는 아니어도 대체적으로 우호적인 분위기가 읽힌다. A 제작사 대표는 “창작물을 보여 줄 수 있는 새로운 매체가 늘었다는 점에서 넷플릭스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B 제작사 대표도 “넷플릭스 같은 온라인 플랫폼을 새로운 영화 소비 방식으로 볼 필요가 있다”며 “영화 산업의 활로를 개척한다는 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봉 감독도 넷플릭스와의 작업에 만족감을 표했다. 봉 감독은 “제작비가 결코 적지 않은데도 100% 창작의 자유가 주어졌다”며 “캐스팅부터 촬영과 편집까지 전 과정에 간섭이 없었다”고 밝혔다.

넷플릭스와 손잡은 창작자들은 더 많아지고 있다. 영화 ‘터널’의 김성훈 감독과 tvN 드라마 ‘시그널’의 김은희 작가는 8부작 드라마 ‘킹덤’을 선보인다. 미국에서도 데이비드 핀처 감독이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에 이어 드라마 ‘마인드 헌터’를 올 하반기에 선보일 예정이고, 거장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은 갱스터 영화 ‘아이리시맨’을 만든다.

넷플릭스의 국내 영향력이 제한적일 거라 전망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올해 1분기 기준 넷플릭스의 전 세계 가입자는 9,875만명이고, 미국 가입자가 5,085만명으로 절반을 차지한다. 한국 가입자는 5만~8만명으로 추정된다.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미국드라마 중심이라 한국 관객의 구미를 당길 만한 콘텐츠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넷플릭스가 ‘옥자’를 통해 얼마나 한국 가입자를 늘릴 수 있을지도 현재로선 미지수다.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는 “이번 논란으로 넷플릭스는 ‘옥자’ 제작비 이상의 홍보 효과를 거뒀다”면서도 “넷플릭스의 관심이 한국 시장에 있는지, 혹은 봉 감독에 있는지, 아니면 그 둘 다인지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B 제작사 대표도 “영화를 문화체험으로 즐기는 한국 관객에게 넷플릭스의 상영 방식이 얼마나 지속성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며 “넷플릭스가 영화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꾸지는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