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DJ) 전 대통령에 이어 김영삼 전 대통령까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면서 민주화를 그린 현대사의 한 페이지도 넘어가게 됐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를 포함한 ‘3김 정치’도 사실상 역사의 장식물로 남게 됐다. 양김이 타도의 대상으로 삼았던 권위주의 정권의 전두환ㆍ노태우 전 대통령이 여전히 생존해 있기는 하지만 양김이 사라진 마당에 독재와 민주의 대결은 이제 과거의 정치 유산이 돼 버렸다. 엄혹한 시절, 양김이 생명을 걸고 우리에게 민주화를 선물한 역사의 기록은 그만큼 무겁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양김이 끝내 해결하지 못한, 오히려 증폭시킨 영ㆍ호남 지역갈등의 문제는 여전히 역사의 과제로 남아있다.
독재종식의 칼날로 문민정부 열어젖힌 YS
김 전 대통령은 ‘민주화 투사'와 함께 YS라는 이름으로 더 친근한 정치인이다. YS는 DJ와 더불어 유신의 질곡에서 민주화의 여정을 멈추지 않았다. 양김의 투쟁은 전두환ㆍ노태우 정부로도 이어졌다. 양김을 향한 폭압은 때로 생명을 위협할 정도였지만 YS나 DJ 누구 한 사람 눈도 꿈쩍하지 않았다. 도리어 YS는 23일간의 단식을 끝낸 뒤 “나도 단식을 해 봤지만 굶으면 확실히 죽는다”는 말로 웃어 넘길 정도로 대담한 정치인이었다.
YS가 3당 통합으로 DJ와 다른 길을 선택하긴 했지만 집권 이후, 그는 민주화 세력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독재청산을 향한 그의 진군은 도리어 거침이 없었다. 특히 현대사에 어둡게 드리워졌던 ‘하나회’라는 군부의 그림자를 쳐내는 데는 전광석화와도 같았다. 하나회 척결로 군사쿠데타의 우려를 불식한 뒤 그는 “깜짝 놀랐제”라며 지인들을 웃길 줄도 아는 명실상부한 ‘정치9단’이었다. 정치권에서는 “DJ였다면 과연 하나회를 척결할 수 있었을까”라는 후일담이 돌 정도로 YS는 과감했고 저돌적이었다.
YS의 문민정부는 경제 민주화에도 박차를 가했다. ‘장영자ㆍ이철희 사건’을 비롯해 권위주의 정부 시절 끊이지 않던 금융 비리를 ‘실명제’로 단칼에 잘랐다.
YS가 독재청산을 통해 문민정부의 문을 열어젖혔다면 DJ는 평화적 정권교체와 남북화해의 물꼬로 민주화를 안정적 반석에 올려놓았다. 격동의 현대사의 한복판에 섰던 YS와 DJ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민주정부의 말뚝을 박은 셈이다. YS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던 이원종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YS는 DJ에 경쟁심도 있었지만 늘 한 구석에 애틋한 마음을 갖고 계셨다”며 “두 분 모두 민주화라는 특별한 가치를 공유했기 때문”이라고 회고했다.
DJ가 YS에 이어 평화적으로 정권을 이어받으면서 우리 현대사는 과거로 회귀하지 않고 또다시 전진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특히 YS는 97년 대선 당시 DJ의 비자금 의혹 사건에 대해 수사유보를 결정하는 등 정치적 중립을 지키면서 평화적 정권교체에 힘을 실어줬다. 이원종 전 수석은 “YS의 문민정부가 의회 민주주의를 닦아 놓았기 때문에 DJ가 당선이 돼 평화적 정권교체도 정착될 수 있었던 것”이라며 “돌이켜보면 우리 민주주의 발전의 순서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두 거목의 공(功) , 민주주의 성숙으로 이어야
직선제 개헌으로 절차적 민주주의를 완성하고 정당정치의 근간을 세운 건 두 거목이 일생의 투쟁으로 이룬 가장 큰 공이 아닐 수 없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개혁을 외치는 지금 정치인 중에 목숨을 걸고 싸워본 적이 있는 이들이 있느냐”며 “오로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후배 국회의원들이 뼈아프게 반성해야 할 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질적 성숙이란 과제는 고스란히 역사의 숙제로 남아있다. 김형준 교수는 “민주화라는 정치의 패러다임을 주도한 두 거목의 서거를 계기로 현재의 대결적 민주주의를 합의의 민주주의로 한 단계 끌어 올려야 하는 숙명적 과제를 다시 생각해봐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장훈 중앙대 교수도 “양김 덕분에 민주주의로의 이행까지는 성공했지만 과연 민주주의가 우리 안에 공고화되고 고급화됐는지 되돌아봐야 한다”며 “두 정치인이 보인 용기와 비전은 아직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YS와 DJ가 남긴 계파정치와 지역정당의 폐단 또한 완전한 민주화를 위해 넘어야 할 산이다. ‘1인 보스정치’의 원조라 할 수 있는 두 거목은 여야를 막론하고 지금도 반복되고 있는 계파갈등의 뿌리로 거론되기도 한다.
물론 YS와 DJ의 계파정치를 두고 ‘불가피한 시대적 환경’ 때문이라는 이해도 없지 않다. 이정복 서울대 명예교수는 저서 ‘한국 정치의 이해’에서 “준카리스마적 지도자인 김대중·김영삼 총재의 존재로 당내 민주주의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단일지도자 중심의 지역정당이 가능했다”며 “국민에게는 양김씨가 독재적 압제로부터 우리들을 구원할 사명을 띤 비범한 지도자로 보였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김형준 교수는 “지역주의를 바꾸려 하기는커녕 기생하려 하는 게 지금 여야 정당들의 폐단”이라며 “양김시대를 넘어 가치 중심의 새로운 정당정치를 만드는 의무가 우리에게 남았다”고 과제를 제시했다.
김지은기자 lu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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