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인위적 합병ㆍ분할 대신
조선 빅3 10조대 자구안 확정
“대우조선 부실은 정부가 키워
책임 있는 사람들이 대책 세우나”
“빅3 생존 회의적… 임시방편
정부 발상의 전환 전혀 못 해”
전문가들 비판 목소리 높아
해운 양대 선사 체제도 유지될 듯
정부가 8일 발표한 산업 구조조정 방안에 대해 전문가들은 조선ㆍ해운 업체들을 부실 상태에서 연명시키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조선ㆍ해운 업체들의 부실을 키운 책임을 따지지 않고 구조적인 원인 분석조차 없이 지원 규모만 늘리는 처방으론 위기를 타개하기 힘들 것이란 목소리도 높았다.
이날 나온 정부안은 위기에 직면한 조선ㆍ해운 업체를 합병하거나 분할하는 등의 ‘외과 수술’을 하는 대신 현 상태를 유지한 채 자금 지원과 고강도 긴축 등을 통해 경영 정상화를 꾀하도록 한다는 게 골자다. 조선업 구조조정은 공급 과잉 해소 차원에서 설비와 인력 등 생산 능력을 30% 가량 감축하는 게 핵심이다.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조선 ‘빅3’는 총 10조3,000억원 규모의 자구계획을 내 놨다. 정부는 또 유동성 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한진해운)하도록 하거나, 유상증자를 추진(삼성중공업)하도록 해 부실 책임론이 불거진 대주주를 압박했다.
“조선 수주 크게 줄 것” 10조원 자구안
조선 빅3의 자구계획은 향후 3년간 수주 물량이 과거의 50~85%에 불과할 것이라는 전망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가장 부실이 큰 대우조선의 자구안은 3조4,478억원 규모다. 자회사 14개를 모두 매각하고, 도크를 7개에서 5개로 줄이기로 했다. 또 방산 특수선 사업분문을 자회사로 분할하고, 지분 일부를 매각해 현금을 확보하기로 했다. 조선업계 최초로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는 등 임금 체계를 바꿔 인건비를 30% 이상 줄이기로 했다. 산업은행은 “신규 수주가 연초 계획의 50% 수준으로 급감하더라도 신규자금 미집행분 1조원을 지원하면 유동성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현대중공업은 하이투자증권 등 금융회사 3개, 현대자동차와 KCC 등 보유주식, 부동산, 현대아반시스 지분 등을 매각하고 인건비를 줄여 3조5,028억원을 마련하기로 했다.
삼성중공업은 유동성 확보를 위해 유상증자를 추진하기로 하고 이달부터 사전 작업에 착수할 계획이다. 아울러 거제 삼성호텔, 판교 연구개발센터, 산청연수원 등 비핵심자산과 잉여 설비를 매각하고, 인력을 감축해 1조4,551억원을 확보하기로 했다.
전문가들 “큰 그림 없는 임시방편 대책”
그러나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날 “대우조선의 부실은 정부가 키운 것인데 부실의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나서서 대책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옳지 않다”며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컨설팅사 대표는 “과연 조선 빅3가 모두 살아남을 수 있겠느냐”며 “오늘 대책은 기존 구조조정 방안에 지원을 늘리겠다는 개념인데, (인수합병 등) 발상의 전환을 전혀 못하는 것 같다”고 평가절하했다.
이제명 부산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는 “구조적인 원인을 분석한 뒤 정한 것인 지 의문”이라며 “부실 원인을 정밀하게 분석하지 않은 채 임시 방편으로 구조조정을 진행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인력 조정 등 손쉬운 카드만 앞세우는 방식은 지양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새로울 게 없는 해운 구조조정 방안
해운 구조조정도 이미 추진 중인 용선료 및 채무 재조정, 국제 해운동맹 가입의 3대 조건을 이행하고 자체적인 노력으로 경영을 정상화한다는 게 기본 틀이다. 중장기적으로 최고경영자(CEO)와 최고재무책임자(CFO)를 해운전문가로 교체한다는 내용 정도를 제외하면 새로울 게 없다. 3대 조건에 성공하면 신규 선박 건조 등을 지원하고, 실패하면 원칙에 따라 처리(법정관리)한다는 방침은 정부가 이미 수 차례 밝혔던 내용이다. 끊임없이 거론된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합병에 대해서도 이렇다 할 언급이 없다. 구조조정안만 놓고 보면 현재처럼 양대 선사 체제를 유지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물론 두 선사는 통합이 거론되지 않은 것에 일단 한숨을 돌리는 분위기다. 그러나 이러한 해법은 가장 큰 문제인 공급 과잉 해소와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동현 평택대 무역ㆍ물류학과 교수는 “정부가 아닌 채권단 주도의 구조조정을 계속하겠다는 계획”이라며 “산업 특성과 국가 경제 기여도 측면을 반영한 구조조정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준규 기자 manbok@hankookilbo.com 박민식 기자 bemyself@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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