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한국 특사단의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회동 결과를 두고 일제히 긍정 평가했다. 미국이 북한과 대화를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도 주문했다. 대북 특사단 파견으로 북한과의 대화에 나서는 등 발빠른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만 북한의 요구 조건이 불명확한 만큼 대화 과정에서 북한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는 한편 대북 압박의 경계를 늦추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외교적 돌파구” “훌륭한 소식” 일제히 긍정 평가
북한이 김정은 정권 집권 이후 처음으로 비핵화 의사를 드러내는 등 이번 합의 결과에 대해선 ‘외교적 돌파구’라는 데 이견이 없었다. 앤드류 여 카톨릭대 교수는 “문재인 정부에겐 큰 승리(big win)”라며 “한국이 북미간 대화 시작의 문을 열었다”고 평했다. 윌리엄 브라운 조지타운대 교수도 “훌륭한 소식”이라며 환영했다.
“이제 북한을 테스트할 시기다”(로버트 매닝 애틀랜틱카운슬 선임연구원)라는 평가처럼 미국이 북한과의 대화에 나설 조건은 충분하다는 진단이다. 데이비드 맥스웰 조지타운대 안보연구센터 부소장은 이번 발표가 청와대를 거쳐서 나온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북한 의도에 대한 의구심을 드러내면서도 “청와대 발표가 맞는다면 지금 대화에 나서지 않을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미국이 적극적인 대화 절차에 착수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매닝 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대북 특별대사를 조속히 임명해야 한다고 주문했고, 여 교수도 본격적 협상을 논의하기 위해 평양에 미국의 고위급 대표단을 파견할 것을 권했다.
북한의 진정성 경계, “갈길 아직 멀어”
북한과의 대화 시작에 대해 이견은 없으나,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에 대해선 시각이 엇갈렸다. 북한이 비핵화 조건으로 제시한 체제 안전 보장과 관련해 주한미군 철수 등의 요구가 포함될 수 있다는 경계심에서다. 비핵화 협상이 이제 첫 발을 떼었을 뿐 갈 길이 아직 멀었다는 뜻이다. 패트릭 매커천 우드로윌슨센터 연구원은 “한국 발표 이후에도 북한 매체들은 비핵화를 얘기하고 있지 않다”며 “군사적 위협 제거에 대한 북한의 요구가 모호한데, 이는 한미 군사훈련 조정에서부터 주한미군 철수까지 모두 포함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의견 차이를 좁히는 것은 길고 험난한 길이 될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오랜 과제를 평화적으로 풀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일 것”이라고 말했다.
“제재 결과로 북한 진정성 보여”
북한의 대화 의지를 높게 평가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브라운 교수는 남북 정상회담 장소를 판문점 남측 지역인 평화의 집으로 정한 것에 주목했다. 북한이 정상회담을 체제 선전용으로 활용할 우려를 지웠다는 점에서 진정성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 “북한이 한미간 틈새를 벌이기 위해 4월 예정된 한미 군사훈련 중단을 쉽게 요구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며 “이 역시 진정성의 신호”라고 말했다. 매닝 연구원도 “지난 몇 개월간 보여준 김정은의 행동은 매우 이례적이다”며 “우리는 미지의 영역에 들어와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이처럼 진지하게 대화에 나선 것은 제재 압박의 결과라는 진단이다. 브라운 교수는 “김정은이 최근 중국의 강한 제재로 엄청난 경제적 압박 아래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며 “국내적 불안정과 국제사회의 행동에 대한 두려움이 작동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매닝 연구원도 “제재가 효과를 보이며 북한 경제를 흔들기 시작하면서 김정은을 매우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며 김정은의 유화적 행보를 제재 때문으로 평가했다.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에 대해선 시각이 엇갈리긴 하지만 협상의 구체적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제재 압박을 늦춰서는 안 된다는 데도 의견이 모아졌다. 여 교수는 “북한이 비핵화에 얼마나 진지한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며 “미국은 비핵화에 대해 굳건한 결의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고, 매닝 연구원은 “비핵화 시에는 모든 것이 가능하지만, 비핵화가 아니라면 어떤 것도 없다는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브라운 교수도 “대화가 실패할 경우에 대비한 조치를 주머니에 넣고 있어야 한다”며 “그래야 김정은도 진지하게 협상에 응할 것이다”고 말했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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