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이 내년 ‘가계부채 종합대책’ 시행을 앞두고 벌써부터 대출 줄이기에 나섰다. 지난 7월 발표된 대책은 국내 가계부채가 1,100조원을 돌파하면서 위험성이 높아진 만큼, 그 동안 부동산 경기를 위해 장려해온 것과 정반대로 가계대출을 억제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정책 반전의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은 유지하되, 이자만 내는 거치기간을 1년 이내로 줄이고 소득심사도 강화해 과다 대출을 제한키로 했다. 문제는 은행들이 이 같은 가계대출 증가 억제책을 핑계로 부당하게 대출금리를 올리고 있다는 점이다.
은행들이 이달 들어 적용하기 시작한 선제적 가계대출 관리대책은 대출한도 축소 및 대출금리 인상 등 두 가지다. LTVㆍDTI가 유지된 만큼 대출한도 축소는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일례로 2억원 짜리 아파트 담보대출의 경우, LTV 70%를 적용하면 1억4,000만원까지 대출이 가능했다. 그러나 요즘은 대출 가능액이 1억800만원 정도로 줄어들었다. 그 동안 은행들이 보증보험을 통해 대출 가능액에 넣었던 최우선변제금 3,200만원에 대해 보증 처리를 제외한 결과다. 일부 은행은 여기에 소득까지 심사해 대출한도를 더 줄이기도 한다.
대출한도 축소 자체를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대출 규제책을 한꺼번에 적용하는 것보다 단계적으로 적용하는 방식이 충격 완화에 유리하다. 더욱이 대출 규제책 시행을 앞두고 가계대출 수요가 몰리는 ‘막차 대출’ 현상이 빚어지는 상태에서 대책의 실효를 위해서도 선제적 시행은 필요하다. 하지만 이 틈을 타서 은행들이 대출금리까지 올리는 건 부당하다. 9월15일 현재 대출금리 기준인 시중의 코픽스(COFIX) 금리는 1.55%로 사상 최저치이고, 금융채 5년물 금리도 8월말 2%대에서 9월 들어 1%대로 낮아졌다. 그런데도 국민, 신한, 우리은행 등은 최근 주택담보대출 최저 변동금리를 8월 말보다 0.2% 포인트 내외 인상했다.
가계부채 위험은 이미 발등의 불이다. 미국 금리인상과 중국 경기둔화 등 ‘G2 악재’로 대출 가계의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고, 신흥국의 금융불안은 글로벌 위기 우려까지 낳는 상황이다. 따라서 LTVㆍDTI 축소 같은 더 과감한 대출 억제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은행이 가계대출 관리를 빙자해 대출금리를 임의로 올리는 걸 방치하다가는 향후 금리 상승기의 부작용은 더욱 커지게 마련이다.
금융당국은 규제완화 차원의 은행 금리 책정 불개입 방침을 고집하고 있다. 대출 축소에 따른 은행 수익 감소를 대출금리 인상으로 보전하려는 ‘꼼수’라는 비판이 헛소리가 아니다. 당국의 공정한 개입이 긴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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