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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태생적으로 보편성 지녀… 한국 독자들의 다양한 해석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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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태생적으로 보편성 지녀… 한국 독자들의 다양한 해석 기대"

입력
2012.12.17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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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망명 이후 문학세계"작가로서 변한것 없어 다행… 문학은 세계의 가치를 반영 항시적으로 안정적이어야"●새소설 '사고'는평범한 교통사고에 얽힌 남녀의 내밀한 관계 통해 유럽 정치와 사랑 그려

20세기 현대문학의 거장으로 불리며 매년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이스마일 카다레(76)를 최근작 (원제 L'Accidentㆍ문학동네 발행)의 국내 번역 출간에 맞춰 한국일보가 단독 인터뷰했다.

1963년 쓴 첫 장편 으로 주목 받은 카다레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비롯한 서구 고전을 밑천으로 발칸반도의 전제주의와 독재체제를 풍자해왔다. 엔베르 호자의 독재정권 아래 놓여 있던 조국 알바니아의 현실을 우화적으로 그린 등이 1990년대부터 번역 출간되며 국내에도 고정 팬을 갖고 있다.

는 평범해 보였던 교통사고의 이면에 놓인 유럽 각국의 정치현실과 '사랑'이라는 인간관계의 본질을 드러낸 작품이다. 인터뷰는 최미경 이화여대 동시통역대학원 교수의 도움을 받아 지난 10월 말 프랑스 파리의 카다레 자택에서 진행했다.

-으로 20대 시절부터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 작품을 쓴 계기는.

"당시 나는 아주 젊었고 모스크바에서 문학공부를 마치고 귀국한 직후였는데, 알바니아는 아주 야릇한 상태, 사회주의 블록을 떠나게 된 상태를 맞았다. 말하자면 알바니아가 변할 수 있는 희망을 갖게 된 셈이다. 그때부터 알바니아 사람들은 과감해졌고, 꿈을 갖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좀 서구적인 인물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키고 싶었다. 사회주의 문학에는 우습게도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주인공도 그 나머지 모든 것도 다 긍정적으로 그려야 한다는 규범이 있다. 나는 정반대로 썼다. 공산주의 독트린에서 강요하는 그런 문학적 규범을 따르지 않는 작품 생활을 하고 싶었다. 때문에 알바니아에서는 이 소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모순적이게도 이 소설은 나에게 많은 행운과 기회를 주었는데, 그때부터 나는 완전한 공산주의 세계, 아주 엄격한 스탈린 공산주의 체제 속에 살고 있으면서도 서구에서 각광받는 작가가 됐다. 폐쇄된 국가에 살고 있으면서도 자유로운 서방세계에서 알려진 작가가 됐다. 일종의 이중생활을 시작하게 된 셈인데, 이 경험은 이후의 내 삶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됐다."

-당신의 소설에는 알바니아의 역사와 구술문학 전통이 잘 녹아있다. 조국의 현실을 조국의 문학 전통으로 말하고 싶었나.

"알바니아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중간지대라서 문학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이런 알바니아의 구전문학은 당시 공산 독재정권의 독트린과 상반되는 것이었다. 때문에 작가가 소설에서 활용할 수 있는 좋은 소재라고 생각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지목되는 대다수 비서구 작가들의 경우 자신이 살아온 국가의 문학적 전통과 서구문학의 특징을 융합한 작품을 쓴다. 예컨대 살만 루슈디의 소설은 인도 구술문학과 영미문학의 중간지대 같다. 당신의 작품을 볼 때도 비슷한 생각이 든다. 하지만 짐작과 달리 당신은 1999년 이청준 선생과의 대담에서 "이야기의 보편성"을 강조한 바 있다. 요즘 한국의 작가들은 해외 한국 작품이 번역될 때 한국적 전통과 세계 문학의 구성을 어떻게 조화시킬지를 고민하고 있다.

"문학작품은 모든 세계인을 위해 태어난다. 나는 문학이란 것이, 태생적으로 보편적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한 작품이 그 나라의 독자에게 아름답게 느껴진다면, 그 작품은 전 세계 독자들에게 그렇게 느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일본식으로 연출한 것을 본 적 있다. 장군의 이야기로 말이다.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다. 제임스 조이스가 호메로스의 '율리시스'를 가져다 각색했던 것과 똑같은 시도라고 생각한다. 서로 다른 시대, 지역, 언어, 독자를 통과해서 문학은 이렇게 읽힐 수 있다. 그게 바로 보편성이다. 나는 알바니아의 조그마한 도시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내 책이 미국, 일본 독자들에게 똑같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1990년부터 프랑스로 망명해 살고 있다. 망명 이전과 이후 작품세계 변화가 있다면.

"전혀 없다. 나는 이미 그 질문을 내 자신에게 한 적 있다. 공간이 바뀌면 정말 내 글이 달라질 것인가. 작가로서 변할 것인가. 그러나 내 문학은 변하지 않았다. 아주 다행스러운 일이다. 만약 출판 연도를 확인하지 않는다면 특정 작품이 언제 쓰였는지 구별하기 어려울 것이다. 문학은 세계의 중요한 가치를 대변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항시적으로 안정적이어야 한다."

-한국전쟁 때 한국이란 나라를 처음 알았고 프랑스어판 '김일성 전기'를 읽었다고 들었다. 당신에게 한국이란 나라는 어떤 이미지였나. 2000년 서울국제문학포럼 참석차 한국을 찾은 이후 인상에 변화가 있었나.

"북한은 알바니아인들에게 최후의 위로 같은 것이었다. 나는 알바니아 체제가 끔찍했기 때문에 알바니야말로 최악의 나라라고 생각했다. 가장 살기 힘든 나라라고. 그러다가 누군가 우리보다 더 심한 나라가 있다고, 그게 바로 북한이라고 했다. 나에게 나름 위안이 되었다. 그리고 한국전쟁이 발발한 이후에 하나의 국가가 두 개로 분단된 상태라는 것, 한쪽은 지옥과 같고, 한쪽은 자유세계에 속해서 일반적인 생활이 가능한 그런 국가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한은 내 눈에 일본과 상당히 유사해 보인다. 아시아 국가이면서 서구적인 삶을 영유하는 나라 같다."

-에서는 어떤 내용을 담고 싶었나.

"이 소설은 우선 개인들 간의 아주 내밀한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하지만 사실 개인은 세계와 떨어져 존재할 수 없다. 개인과 세계란 완전히 분리될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이 작품은 세계적으로 인식되는 불안 요소들이 이런 내밀한 관계에 들어와 혼합되는 형태를 띠고 있다. 세계의 불안과 개인의 내면적 불안이 혼합되어 있는 상태, 그것이 이 소설의 근간이다."

-소설은 교통사고로 죽는 남녀의 관계를 파헤치는 이야기다. 복잡다단한 사람들의 진술과 증거가 나오면서 미궁으로 끝난다. 두 연인을 죽음으로 이끈 것은 무엇인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작가인 나 자신도 규정하기가 힘들고, 오히려 수수께끼로 남아 있기를 원한다. 소설을 읽어보면 독자들도 내 뜻을 이해할 거다. 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독서가 가능한 작품이다. 독자에 따라서 다양한 해석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인터뷰 전문은 한국일보 인터넷 홈페이지(www.hankooi.com)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알바니아 신화·전설 모티프 전제주의와 독재체제를 풍자

■ 이스마일 카다레의 작품

이윤주기자

외세의 침략에 시달린 발칸반도 소국 알바니아의 굴곡진 역사, 기독교와 이슬람문화가 혼재된 문화적 특수성은 이스마엘 카다레의 문학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

카다레 소설은 신화와 전설, 구전민담 등이 작품의 주요 모티프로 작용한다. 피의 복수를 정당화하는 관습법 '카눈'을 소재로 알바니아 세계를 그린 , 인간의 꿈마저 통제하는 전제주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우화풍 소설 ,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연구하러 알바니아를 찾은 두 외국인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비극 , 독재 권력에 의한 여인의 희생을 그리스 신화와 오버랩시킨 등이 대표적이다.

1990년 프랑스로 망명한 작가는 최근 알바니아와 프랑스를 오가며 작품활동을 펼치고 있다. 2005년 제1회 맨부커 국제상 수상, 2009년 스페인의 아투리아스 왕자상 등을 수상했다.

는 공항으로 향하던 택시가 도로 아래로 추락하는 사고로 시작한다. 뒷좌석에 탔던 남녀 승객은 즉사하고 운전기사는 혼수상태에 빠졌다 의식을 되찾는다. 운전사는 남녀 승객이 "힘겹게 키스를 하려했다"는 진술을 되풀이한다. 죽은 남녀는 모두 알바니아인으로 남자는 유럽회의에서 서부 발칸반도 문제를 담당하는 분석가, 여자는 오스트리아 빈 고고학연구소 연수생이다. 두 사람은 어떤 관계일까. 이들이 '힘겹게 키스를 하려'한 것은 교통사고를 일으킬 만큼 충격적인 장면이었을까.

소설은 40주 동안의 두 사람의 관계를 추적하며 발칸반도를 둘러싼 복잡다단한 현대사를 재구성한다. 유럽 각지의 호텔 숙박 기록, 사진 속 여자의 행복한 얼굴, 두 사람의 편지 등은 그들이 연인이었음을 확증하지만, 남자의 메모에 적힌 '콜걸'이란 단어, 여자의 일기 속 '죽음 이후의 만남'같은 표현 등 여러 증거와 주변인들의 증언이 더해질수록 그들의 관계는 점점 모호해진다. 전작에서 수많은 고전과 신화를 차용해 작품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던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두 사람의 10여년에 걸친 사랑을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그리스신화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이야기를 인용하며 그려 낸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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