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 입학 특혜를 비롯해 각종 비리에 관련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정유라 씨가 독일 현지에서 동물학대 혐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언론보도에 따르면 정씨가 기르던 개와 고양이 20여마리 동물들은 매우 마르고 겁에 질려 있었던 상태였다고 한다. 동물 중 몇 마리는 압수돼 독일에서 다른 사람에게 입양되었거나 입양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씨의 동물들은 대부분 한국에서부터 기르다가 데리고 출국했다고 한다. 굳이 먼 유럽까지 동물들을 데려가 학대하다가 압수당하다니. 역시 이번에도 부끄러움은 국민의 몫이다.
독일은 유럽에서도 동물복지의식이 높은 나라 중 하나다. 독일 기본법은 ‘국가는 미래세대를 위하여 자연적인 삶의 기초와 동물들을 헌법에 부합되는 질서의 범위 안에서 입법과 법률 및 법에 따른 집행력과 판결을 통해 보호할 책임을 진다’고 명시해 동물보호를 국가의 목적규정으로 인정하고 있다.
1972년 제정된 독일의 연방동물보호법(Bundestierschutzgesetz)은 제1조부터 ‘그 누구도 합리적 이유 없이 동물에게 고통, 괴로움 또는 손해를 입혀서는 안 된다’고 못박는다. 동물사육에 대한 일반적인 규정을 담은 제2조에서는 동물을 기르는 사람은 동물의 종에 맞게 먹이, 돌봄, 안식처를 제공해야 하며, 종 특성에 따른 움직임의 자유를 제한해 동물에게 고통을 주는 행위를 금지한다고 되어있다. 반려동물을 묶어두거나, 장시간 빈 집이나 방에 혼자 가두어 두는 행위도 금지된다. 실제로 독일로 이주한 미국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반려견을 일정시간 동안 격리된 공간에 두어 안정감을 갖도록 훈련하는 ‘크레이트 훈련’이 독일에서는 동물학대로 처벌받을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는 글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제3조에서는 동물사육자의 금지행위를 규정하고 있는데, 이 중에는 신체적 능력을 감소시키는 수술 행위, 동물에게 고통을 주면서 영화, 전시, 광고 등에 이용하는 행위와 함께 ‘보호자의 책임을 기피하기 위해 동물을 유기하거나 집에 방치하는 행위’도 포함되어 있다. 척추동물에게 장시간 지속적으로 혹은 반복적으로 극심한 고통 또는 괴로움을 가한 사람은 최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만5,000유로(약 3,137만원)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동물학대뿐 아니라 관리 부실로 과태료 처벌을 받은 사람이라도 부가형으로 동물을 몰수당하는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즉, 동물을 의도적으로 때리고 괴롭히지 않았더라도 정씨처럼 20마리 이상의 동물을 기르면서 집에 방치하거나 제대로 운동을 시키지 않는다면 동물에게 고통을 주고 있는 것으로 보고 정부당국이 벌금이나 과태료를 부과하고 소유권을 박탈해 동물을 다른 가정으로 입양 보낼 수 있는 것이다.
한 사람이 상식적으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동물들을 수집품처럼 모아놓고 기르면서, 제대로 관리조차 하지 않은 정씨에게서 동물들을 압수한 독일정부의 조치가 과하다거나 부당하다고는 아무도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정씨가 우리나라에서 같은 방법으로 반려동물을 길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나라 현행 동물보호법은 동물을 소유한 사람은 동물에게 적합한 사료와 물을 공급하고, 운동·휴식 및 수면이 보장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노력하지 않은 데 대한 처벌 규정은 없다. 다만 ‘고의로 사료 또는 물을 주지 아니하는 행위로 인하여 동물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는데, 반대로 생각하면 먹이를 주지 않아 아사 직전이더라도 숨이 붙어있으면 처벌할 수 없다는 얘기다. 또한 ‘도구·약물을 사용하여 상해를 입히는 행위’를 동물학대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주인에게 반복적으로 얻어맞으면서도 몸에 상처를 입지 않은 동물, 영하 10도의 날씨에도 꽁꽁 얼은 땅바닥 위에 묶여 눈비를 피할 수도 없는 동물, 평생을 짧은 줄에 묶여 살거나 좁은 곳에 갇혀 살면서 정신적인 질병을 앓고 있는 동물은 우리나라에서는 ‘학대당하는 동물’ 축에 끼지 못한다.
따라서 만약 정씨가 한국에서 도피 생활을 하면서 동물까지 챙길 여력이 없어 먹이도 주지 않고 이곳 저곳에 방치했다고 하더라도 동물들이 숨이 붙어있는 상황이라면 처벌은커녕 동물을 긴급히 구조할 방도조차 없는 것이다. 심지어 안타깝게 여긴 시민이나 동물보호단체가 동물을 구조하려고 했다가는 자칫 절도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설사 정씨가 동물보호혐의로 기소됐다고 하더라도 얼마 되지 않는 벌금과 동물에 대한 치료, 보호비용을 지불하면 동물을 되돌려 받을 수 있다.
지난 해 8월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이 대표 발의한 동물보호법 개정안은 이러한 불합리성을 바로잡기 위한 내용을 담고 있다. 사료·물을 주지 않거나 혹한·혹서에 방치하는 행위를 동물학대죄로 규정했다. 또한 동물학대로 처벌을 받은 사람의 동물은 국가가 몰수하고, 벌금형을 받았을 경우에는 3년, 징역형을 받았을 경우에는 5년간 다른 동물을 기를 수 없도록 제한했다. 그러나 이 개정안을 포함해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14건의 동물보호법 개정안은 소관 상임위원회에 상정조차 되지 못하고 국회에 주저앉아 먼지만 쌓여가고 있다.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동물복지의식수준이 높은 독일의 동물보호법이 우리나라보다 강한 것은 당연하게 느껴질 지도 모른다. 그러나 동물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독일에서 태어난 개든,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개든 살기 위해 필요로 하는 것은 다르지 않다.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용어가 많이 쓰이는데, 올해에는 동물보호법이 최소한 세계적 기준에 단 한 걸음이라도 다가가길 기대한다. 그리고 한 가지 덧붙이자면, 정씨의 덴마크 은신처에서 발견된 강아지 세 마리, 고양이 아홉 마리에 대해 우리나라 정부는 적어도 덴마크 당국에 의해 보호조치 되었는지 확인이라도 해주기를 바란다.
이형주 동물보호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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