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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부귀다사 빈천과우’

입력
2016.10.23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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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6개월. 결코 짧지 않은 기간. 경제사범이 되어 징역형을 마치고 나온 P는 이를 악물었다. P가 여러 개 기업을 운영하고 있을 때 주위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 들었다. 어떻게든 P의 눈에 들려고 굽신거리기까지 했다. P는 그들에게 분에 넘치는 호의를 베풀었다. 그 덕을 본 사람만도 수십명.

하지만 P의 사업이 예상대로 진행되지 않고 급기야 투자자들로부터 사기 및 횡령죄로 고소되어 P가 구속되자 회사는 풍비박산 났고 주위에 있던 모든 이들이 P를 떠났다. 형을 선고받은 2년 6개월. P는 감방 안에서 이를 갈았다. ‘내가 나가면 반드시 재기하리라. 재기해서 내 곁을 떠난 모든 이들에게 복수하리라. 특히 내가 도움을 줬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한 번도 찾아오지 않은 사람들에겐 무릎 꿇고 사과하도록 만들어 주리라.’ 그 복수의 힘이 P를 버티게 했는지도 모른다.

‘富貴多士 貧賤寡友’(부귀다사 빈천과우) ‘부귀할 때는 선비가 많고 빈천할 때는 친구가 적다.’

춘추시대 제나라 재상 맹상군이 군주의 신임을 받고 부귀가 극성했을 때는 휘하에 식객이 수천 명 있었으나, 군주의 신임을 잃어버린 이후에는 그 많던 식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것을 경험했다. 맹상군은 식객 풍환의 덕에 다시 복직을 하게 되는데(관련 고사성어가 유명한 ‘교토삼굴’), 맹상군이 이렇게 복직을 하자 예전의 식객들이 다시 맹상군에게 몰려들었다. 그렇게 다시 복직될 줄 알았다면서 칭송을 다시 늘어놓았다.

이를 본 맹상군은 화가 났다. 이미 그들에게 환멸을 느낀 바 있다. 그는 몽둥이를 들고 나가 그들을 내쫓으려 했다. “내가 하루아침에 쫓겨나는 것을 식객들이 보고는 모두 나에게 등을 돌리고 떠났소. 이제 풍환 선생 덕분에 복직하였는데 예전의 식객들이 도대체 무슨 면목으로 나를 다시 본단 말이오. 만약 나를 다시 보려 하면 반드시 그 얼굴에 침을 뱉고 크게 욕을 보일 것이오.”

그러자 곁에 있던 풍환이 이를 말리며 이렇게 말한다. “사물에는 반드시 이르는 것이 있고, 일에는 진실로 그렇게 되는 도리가 있는데 군께서는 이를 알고 계십니까?” 맹상군은 화가 난 목소리로 “나는 어리석어 선생이 말하는 바를 모르겠소.”라고 퉁명스레 답한다. 그러자 풍환은 말을 이었다.

“살아 있는 자가 반드시 죽는 것은 사물이 반드시 이르는 바요, 부귀할 때 선비가 많고 빈천할 때 친구가 적은 것은 일이 진실로 그렇게 되는 바인 것입니다(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 군이 직위를 잃고 빈객이 모두 떠나간 것을 두고 그들을 원망하는 것은 적절치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원망한다면 이는 선비들이 다시 공에게 돌아오는 길을 끊어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바라건대 군께서는 옛날처럼 객을 대우하여 주십시오.”

맹상군은 그 말을 듣고는 크게 깨달은 바 있었다. 그는 풍환에게 두 번 절하며 말했다. “삼가 그 명에 따르겠소. 선생의 말씀을 듣고 어찌 감히 가르침을 받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는 환히 웃는 낯으로 예전의 식객들을 다시 맞아들였다. - 사기, 맹상군열전 중에서 -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부정하고 싶지만 부정할 수 없는 인간의 이기심과 나약함에서 비롯되는 행태들. 산전수전 다 겪은 노정객(老政客)은 분노와 복수심에 불탄 주군에게 이렇게 조언 한다. ‘화를 내지 마십시오.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이치, 인간사의 모습입니다.’

사마천은 이 사례를 통해 이익에 띠라 움직이는 것이 팍팍한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네 인간들의 솔직한 모습이라는 점을, 그래서 인정하기 힘들더라고 이를 직면하고 인정하라는 것을 준엄하게 가르쳐 주고 있다. 어설픈 조언을 하려다 나는 맹상군과 풍환의 이야기를 의뢰인에게 들려주었다. 다행히도 의뢰인의 격한 마음이 조금씩 잦아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힘들지만 지혜로운 이는 받아들여야 할 때 받아들이는 법이다.

조우성 변호사ㆍ기업분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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