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은 정부 주도 '투명 거래 시스템'
중고차 수출 시장 급성장 이끌어
한국은 가짜 매물 넘쳐 외면 받아
매매단지 소비자 중심 현대화 절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 “수법이 더 교활해졌다.”
자동차 업계에서 국내 중고차 시장과 판매 딜러들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소비자들이 중고차에 대해 잘 모르는 점을 악용해 바가지를 씌우는 풍토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 같은 중고차 시장의 병폐가 중고차 수출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는 점이다. 중고차 산업이 발달한 일본과 비교하면 우리의 수출 경쟁력 약화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일본은 투명한 중고차 시장을 발판으로 중고차 수출 규모를 매년 10% 이상씩 늘렸다. 그 바람에 일본의 중고차 수출규모는 2011년 85만여대에서 지난해 128만대를 넘어섰고, 올해 1월 2만2,000여대, 2월 9만6,000여대, 3월 11만5,000대 등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일본의 중고차 산업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정부 주도의 투명한 거래 시스템 덕분이다. 일본은 정부 주도로 엄격한 정기검사 시스템을 운용하고, 자동차 성능을 주기적으로 개선한다.
이를 기반으로 체계적 품질 평가와 소비자도 이해하기 쉬운 공지 시스템을 갖춘 경매장을 전국에 160여곳 운영한다. 해외 바이어들도 경매장 두세 곳만 방문하면 믿고 살 수 있는 중고차를 대량 구입할 수 있다.
반면 국내의 경우 중고차를 사가려는 바이어들이 허위ㆍ미끼 매물을 피하기 위해 직접 매매업체를 찾아가 일일이 눈으로 확인하고 흥정해야 한다. 심지어 수출 대상 중고차들은 등록이 말소돼 성능점검기록부 고지 의무조차 없다.
따라서 자동차업계에서는 이대로 방치하면 국내 중고차 산업이 무너질 수 밖에 없다고 경고한다. 이를 막으려면 중고차 시장의 패러다임을 판매자에서 소비자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 신현도 한국중앙중고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 정책위원장은 “중고차 시장을 이대로 방치하면 시장과 종사자 모두 망한다는 위기 의식을 갖고 정부와 업계가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매매 딜러 교육 시스템부터 갖춰야
전문가들이 가장 시급한 문제로 꼽는 것은 매매 딜러 관리다. 소비자와 최종 접점인 매매 딜러가 중고차 관련 문제들의 중심에 서 있다. 전국에 걸쳐 최대 10만명으로 추산되는 이들은 어디 고용된 것이 아니어서 신분이 불안정하고 세금 납부 의무가 없다. 그만큼 체계적 관리가 어렵다.
전문가들은 정부 책임 아래 매매 딜러 교육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국토교통부에서 교통안전공단 등 관련 전문가들을 모아 기본 소양, 중고자동차 발전방향, 고객 상담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정기 교육을 하고 매매사원증을 발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렇게 되면 중고차 전문 인력의 질을 높이고 종사자 규모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더불어 개인 사업자로 등록해 세금을 납부토록 하면 판매 딜러들도 국민건강보험과 연금 혜택을 받을 수 있어 지금보다 근무 환경이 나아진다. 건전한 거래 문화를 위반한 매매 딜러는 ‘3진 아웃제’로 퇴출하는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객관적인 가격산정 시스템 도입
현재 국내 거래되는 중고차는 가격 산정 방식이 객관적이지 않다. 매입 딜러가 해당 차종 시세에 주행거리, 연식, 사고 유무 등을 감안해 가격을 정한다. 중고차 시장이 없는 지역에 사는 주민들은 차를 몰고 서울과 수도권으로 와서 매매단지를 기웃거리다가 시간에 쫓겨 헐값에 차를 파는 일이 다반사다.
이에 전문가들은 엔진, 변속기, 서스펜션 등 성능 평가요소와 사고 및 외판 교체 유무, 도장 상태 등 외관 평가 요소 등을 기준으로 투명하고 객관적인 한국형 가격 산정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중고차 등록 시 취합한 가격 정보에 관련 업계 의견을 더해 ‘A차종 2011년식 상급 1,000만원, 중급 900만원, 하급 800만원’식의 3단계나 최상급, 최하급을 포함한 5단계로 분류해 교통안전공단 등 신뢰할 수 있는 사이트에 주기적으로 공지하자는 의견이다. 이렇게 되면 전문가들은 과도하게 낮은 가격으로 소비자를 유혹한 뒤 각종 수수료 명목으로 바가지를 씌우는 허위ㆍ미끼 매물도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본다.
중고차 매매단지 현대화
중고차 매매단지를 혐오시설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소음과 오염물질 배출은 없지만 매매 종사원의 호객 행위 등으로 이미지가 좋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지 시설도 소비자 중심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전문가들은 매매, 튜닝, 정비, 보험, 렌트, 재활용 등 다양한 사후관리까지 공유한 복합단지 형태가 바람직하다는 제언이다.
아울러 정부에서도 수출통관 절차를 간소화하고 매매 단지에 수출 상담을 지원하는 등 중고차 관련 매매를 원스톱 서비스로 진화시키면 산업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란 전망이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수년 전부터 중고차 관련 정책을 바꿔야 한다고 건의했지만 정부가 요지부동”이라며 “더 늦기 전에 정책 개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정헌기자 xscope@hankookilbo.com
김창훈기자 ch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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