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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손기정 참나무’

입력
2014.10.27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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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더위 탓에 올 가을 단풍은 좀 늦게 시작됐지만 일교차가 커 어느 해보다 곱다. 야외로 안 나가고 도심서 단풍 즐기는 맛도 쏠쏠하다. 요즘 아파트 단지, 도심 소공원에 심는 조경수나 가로수 중 단풍이 아름다운 나무들이 많다. 조경수와 가로수로 인기가 높은 핀오크(Pin oak)는 붉은 색 단풍이 특히 아름답다. 동글동글한 도토리도 앙증맞고 예쁘다. 북미대륙 동부가 고향인 이 참나무는 1980년대 한 종묘사가 들여오면서 이름을 ‘대왕참나무’라고 붙였다고 한다.

▦ 30m까지 자라서 그렇게 붙였다고도 하고, 종묘회사 이름인 ‘대왕’을 따서 붙였다는 얘기도 있다. 깊게 갈라진 잎 모양이 임금‘왕(王)’자를 연상시켜서 그렇게 명명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참나무가 우리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훨씬 더 오래 전 일이다. 1936년 8월 독일 베를린 하계올림픽 마라톤 종목에서 손기정 선수가 금메달을 딴 뒤 부상으로 받은 게 바로 이 나무 묘목이다. 우리가 한동안 월계수로 잘못 알았던 이 묘목은 손 선수 모교인 서울 만리동 양정고 교정에 심어졌다.

▦ 양정고가 목동으로 옮겨 간 뒤 손기정 공원으로 조성된 자리에 아직도 우람한 수형을 이뤄 생명력을 뽐내고 있다. 이 나무가 녹나무과의 월계수가 아닌 참나무 일종으로 확인된 건 1982년 서울시 기념물로 제정되는 과정에서였다. 손 선수는 시상식에서 독일 총통 히틀러로부터 직접 이 묘목을 받았다. 히틀러는 월계수가 아닌 참나무 묘목, 그것도 북미 원산 핀오크 묘목을 부상으로 수여했을까. 고대 그리스에서 영웅이나 뛰어난 시인의 머리에 씌어주던 영예의 관을 월계관이라고 했는데, 근대올림픽이 시작된 이후에는 개최국 특산식물로 월계관을 만들어 수여했다. 1회 아테네 올림픽 때는 올리브 가지로 만들었다.

▦ 지금 손기정 기념관에 보관돼 있는 월계관을 자세히 살펴보니 핀오크 잎과 또 다르다. 모양상 독일의 국목(國木)인 로보어(Robur)참나무다. 개최국 독일이 자국산 참나무 잎으로 월계관을 만들고, 묘목은 모양이 비슷한 북미산 핀오크를 잘못 준 게 아닐까. 전문가들의 확인이 필요한 일인데 사실이라면 참 재미있는 얘기다. 이 참에 핀오크의 우리 이름을 종묘회사가 임의로 붙인 대왕참나무보다는 ‘손기정 참나무’나‘손(孫)참나무’혹은 ‘손갈나무’로 바꾸는 건 어떨까.

이계성 수석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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