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여당으로 옮기고 나서 느낀 것은 크게 두 가지이다.공약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 아주 쉽다는 것, 그리고 당에 비판적인 이야기를 하면 야단만 맞는다는 것이다.
특히 중요사안은 당정간에 이미 결정돼 있기 마련이어서 분위기 파악 못한 내가 비판적인 이야기를 했다가 욕을 먹은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국민당 시절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대표적인 사례가 1995년 9월 국정감사였다. 14대 국회의 마지막 국감에서 나는 완전히 미운 오리새끼가 됐다.
당시 핫 이슈는 경부고속철도의 경주노선 건설과 이에 따른 문화재 훼손 문제였다. 정부는 예산절감을 위해 고속철도가 경주시를 관통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여당은 이를 묵인하는 형국이었다.
나는 문화체육부 국감에서 이를 물고 늘어졌다. 여당 의원 중에서는 유일하게 나만 우회통과를 주장한 것이다.
“예산을 줄이려고 문화재를 뚫는 게 말이 되느냐? 우회통과를 하면 예산이 더 든다는데 그래도 우회해야 되는 것 아닌가. 도대체 어느 것이 더 가치가 있는지 당신도 알지 않느냐?” 그 ‘당신’은 물론 주돈식(朱燉植) 문체부 장관이었다.
야당 의원 뺨치는 발언을 끝내자 여당 의원들은 “저 새끼 돌아버린 거 아냐?”라고 웅성거렸다. 인사조차 받지 않았다.
주 장관은 사석에서 “정 의원, 해도 너무 하는 것 아니오?”라고 말했다. 몇몇 의원들은 “내가 또 코미디를 한다”고도 했다.
도대체 내가 무슨 코미디를 했단 말인가. 원리원칙대로 말한 것뿐인데 누가 코미디를 한 것인지 지금도 모르겠다.
어쨌든 내 마음은 이미 정치판을 떠난 상태였다. 국감이 끝나고 얼마 안 돼 아내가 말했다.
“더 이상 정치하지 마세요. 고생하다 좀 살 만하니까 왜 정치판에 뛰어들어 이 고생을 하세요? 내 죽는 꼴 보고 싶지 않으면 정치를 두 번 다시 하지 마세요.”
딸들도 극구 반대했다.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이 너무 없고 사람들에게 시달리는 모습이 안쓰럽다는 것이었다. 지역구 관리하느라 엄청나게 술을 마신 것을 보고 한 말이었다.
96년 1월29일 나는 의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마침내 15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국회의원 선거일(4월11일)을 두 달여 앞둔 때였다.
“정치를 종합예술이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코미디에 불과하다. 4년간 코미디 공부 많이 하고 떠난다.” “적과 동지의 구분조차 모호한 정치판에 회의가 들었다. 연예인 후배들이 정치를 한다면 도시락 싸 들고 다니며 말리겠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내가 쏟아낸 말들이다.
내가 이렇게 말했는데도 후배 이덕화(李德華)가 15대 총선에 나선다고 했을 때 참 기가 막혔다.
92년 대선 때 김영삼(金泳三) 후보 캠프에서 뛰었던 이덕화가 광명 갑에 신한국당(95년 12월 민자당에서 개명) 후보로 출마한다는 것이었다.
내 험한 꼴 옆에서 다 지켜봐 놓고도 출마하는 것을 보면 역시 정치가 마약보다 더 중독성이 강한 모양이다.
불출마 선언을 놓고도 말이 많았다. 내가 공천과정에서 전용원(田瑢源) 전 의원에게 밀려 공천탈락이 임박해지자 시위용으로 기자회견을 열었다는 것이다. 이 말은 어불성설이다.
신한국당은 오히려 내게 구리 지역구 공천을 약속한 상태에서 내 확답만 기다리고 있었다. 더욱이 전 의원은 원외 위원장이었고 나는 현역 의원이었다.
사실이 이런데도 내가 하는 일은 무조건 곡해하려는 언론과 정치판이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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