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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위 수백척 어시장...목포 파시를 기억하십니까

입력
2014.07.24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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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황금어장서 잡아 온 해산물, 상선과 해상서 만나 거래하던 장터

1970년대 공판장 생기기 전까지 전국서 가장 큰 규모로 이름 날려

내달 1~5일 목포항ㆍ삼학도 일대, 150척 배 연결시켜 파시 재현

바다 위에 형성됐던 거대한 어시장인 파시가 축제를 통해 재현된다. 지난해 목포해양문화축제 때 목포항에 마련된 해상파시 체험장을 관광객들이 둘러보고 있다. 목포시청 제공
바다 위에 형성됐던 거대한 어시장인 파시가 축제를 통해 재현된다. 지난해 목포해양문화축제 때 목포항에 마련된 해상파시 체험장을 관광객들이 둘러보고 있다. 목포시청 제공

사통팔달 길이 뚫리기 전, 해로는 육로보다 편한 길이었다. 특히 무거운 물산을 나르는데 바닷길은 유용했다.

바다는 길이었고, 또 시장이 되기도 했다. 민어, 조기, 삼치 등 제철의 어종들이 몰려드는 풍어기 때 바다에선 파도 위의 시장, 파시(波市)가 열렸다. 수십, 수백 척 만선의 배들을 한꺼번에 받아들이기엔 부두가 너무 작았기 때문이다. 또 그 물고기를 사서 싣고 떠날 상인들 또한 좁아터진 육로 보다 해로가 더 편했다. 잡은 물고기를 파는 배들과, 그 물고기를 사려고 몰려든 배들로 바다는 거대한 뗏목을 이룬다. 생선은 배에서 배로 옮겨졌고, 사람들은 맞닿은 배를 껑충껑충 뛰어 건너며 그 흥청거림을 즐겼다.

봄이 되면서 바다는 바빠진다. 서남해역의 수많은 섬들 사이로 흐르는 난류를 따라 북상하는 회유성 어류들이 많아 서해의 파시는 큰 규모의 거래량을 자랑했다. 또 큰돈이 거래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어부와 상인, 중개인은 물론 잡상인들이 몰려와 일대 성시를 이뤘다. 전국에서 상인이 모이니 해변가의 음식점은 물론 선술집이 즐비하게 들어서 불야성을 이뤘다. 배가 몰리면 돈이 몰리고, 그 돈을 따라 색싯집 여자들도 몰려들던, 풍요로 흥청대던 시절의 이야기다.

전남 목포는 사철 파시가 열렸던 곳이다. 신안 영암 해남 등 주변의 황금어장에서 잡아온 해산물들이 목포로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삼학도 앞으로 매일 수백 척의 어선이 모여들어 배 위에서 각자가 잡아 올린 생선을 거래했다.

생선 보관 이송을 위해 1929년 1월 목포제빙냉장주식회사가 창립한 후 당시 하루 15톤의 얼음을 생산했다고 한다. 전국에서 가장 컸다는 목포파시의 규모를 짐작케 한다.

파시가 사라진 건 넓고 빨라진 육로가 뚫리고, 냉장 기술의 발달 때문이다. 유통구조도 변했고, 싱싱한 상태로 대도시까지 생선을 나를 수 있게 됐다. 결국 1970년대 목포에 수산물공판장이 들어서면서 수산물의 거래는 해상이 아닌 육상으로 옮겨졌고, 파시는 소리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목포는 항구의 비린내와 복잡다단한 삶의 향기가 뒤엉킨 곳이다. 목포는 개항과 함께 만들어진 도시다.

그 이전 서남 해안의 중심은 영산강을 따라 깊숙이 들어간 나주 영산포였다. 유달산 자락에 작은 어촌만 있던 목포가 열린 건 근대의 이름으로 제국의 침탈이 가시화하던 19세기 후반이다. 일본이 목포를 거점도시로 키운 것은 영산포에 비해 큰 배를 접안할 수 있고, 앞바다의 수많은 섬들이 천연 방파제를 이뤄 최적의 항구를 조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목포는 1897년 개항을 했고 전남에서 최초로 근대문명의 세례를 받으며 성장했다. 호남 곡창의 쌀과 면화, 소금은 목포로 모였고, 거대한 화물선에 실려 일본으로 건너갔다.

항을 중심으로 발전하면서 목포는 1930년대에 전국 6대 도시 안에 들었고, 4대 항구로 자리를 잡았다. 이렇게 커진 목포항의 또 다른 주인공들이 파시로 몰려드는 어선들이었던 것. 파시는 이렇게 오랫동안 목포의 번영에 일조를 했다.

삼학도가 몇 해에 걸친 연륙공사와 간척공사로 육지가 될 즈음 목포파시는 사라졌고, 파시의 흥청거림을 나누었던 유달산 입구 오거리의 예술인촌과 막걸리집들도 하나 둘씩 자취를 감췄다.

목포는 근대의 시작과 함께 개항장으로 성장했다. 목포시청 제공
목포는 근대의 시작과 함께 개항장으로 성장했다. 목포시청 제공
1926년 목포항의 한산한 전경과 1932년 목포항에 정박한 범선의 풍경. 목포시청 제공
1926년 목포항의 한산한 전경과 1932년 목포항에 정박한 범선의 풍경. 목포시청 제공
1990년대 목포항의 모습을 통해 목포의 변천을 확인할 수 있다. 목포시청 제공
1990년대 목포항의 모습을 통해 목포의 변천을 확인할 수 있다. 목포시청 제공
파시로 바다를 메웠던 1960년대 흑산도 예리항 풍경. 목포시청 제공
파시로 바다를 메웠던 1960년대 흑산도 예리항 풍경. 목포시청 제공

목포 시민들은 여전히 파시를 기억하고 그 비릿한 날내음의 흥청거림을 아쉬워하고 있다. 그 파시에 대한 향수를 달랠 수 있는 장이 곧 펼쳐질 예정이다. 8월 1~5일 목포항과 삼학도 일원에서 열리는 ‘2014 목포해양문화축제’에서다. 목포시는 축제 기간 목포항에 파시를 재현할 예정이다. 동명동 종합수산시장 앞에서 삼학도 물양장까지 190m거리가 되는 해상에 150여 척의 배들과 푼툰(부잔교) 등을 연결시켜 바다 위 거대한 시장을 조성, 과거 파시의 왁자지껄하고 생동감 넘치는 분위기를 연출할 계획이다.

파시에서는 제철 생선 및 수산물 경매, 홍어 및 민어 해체쇼, 나이롱 극장 등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 선창 파시의 첫번째 부선에 마련된 선술집 ‘추억의 동천주막’에선 홍탁삼합, 세발낙지, 꽃게무침, 갈치조림, 민어회 등 목포의 오미(五味)를 맛볼 수 있다고 한다. 육상시장인 ‘추억의 선창거리’에서는 다방, 삼학분교, 교복사, 미장원, 점방, 만화방 등 1960∼80년대 선창이 재현된다. 삼학분교에서는 축제 참가자들이 동창회 모임을 열 수 있고, 미장원에서는 500원에 앞머리를 다듬을 수 있다. 축제장을 수놓을 ‘삼학도 소원 물고기등 터널’도 볼거리다.

목포해양문화축제와 비슷한 기간에 목포 전역에선 다양한 축제가 함께 시작한다. 아시아 최초 해양을 주제로 한 영화제인 목포해양영화제(31일~8월 3일)를 비롯 목포세계마당페스티벌, 서남권 청소년 페스티벌, 목포전국사진촬영대회, 해변마라톤대회 등이 열린다.

목포=박경우기자 gwpark@hk.co.kr

또 다른 파시들

바다 위에서 성어기에 각처에서 모여드는 어민들로 형성되는 계절적인 어시장인 파시는 예전엔 파시평(波市坪)이라고도 불렸다.

인천 옹진군 연평도·전북 부안군 위도·흑산도의 조기 파시와 전남 여수시 거문도·완도군 청산도의 고등어 파시, 제주 추자도의 멸치파시, 경북 울릉도의 오징어 파시, 신안 비금도 깡다리 파시, 신안 임자도 민어 파시 등이 성행했다. 민어 파시의 경우 일제 때 임자도 대광해수욕장 앞에 있는 타리도에서 열렸다고 한다. 해방 이후 민어 파시는 인근의 재원도로 옮겨가 1980년대까지 큰 성황을 이뤘다. 섬과 섬 사이를 배를 밟으며 건너갈 수 있을 정도로 어선이 많았다고 한다.

전남 영광의 칠산바다, 충남 보령 녹도, 전북 군산의 고군산제도, 황해 용호도 등 파시에서 유래돼 유명해진 곳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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