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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과잉노동-과소복지’의 야누스를 넘어서

입력
2017.02.14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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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후반 역동적 성장의 반세기를 보내면서 한국인들의 의식세계 속에 깊게 자리한 두 가지 관념이 있다. 하나는 ‘과잉(개인)노동 예찬론’이고, 다른 하나는 ‘과소(사회)복지 예찬론’이다. 개인의 노동력 투입은 길고 많을수록 좋고, 국가와 사회가 개인에게 제공하는 복지는 적을수록 좋다는 생각이다. 그러한 생각에 기반해서 우리사회는 ‘놀고 먹는 자’, ‘국가에 손 벌리는 자’에 대해 혐오의 시선을 노골적으로 던져 왔다.

자연스럽게 노동자들 안에게는 늘 ‘“빡세게” 일하는 게 정상’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았다. 길고 많이 노동하게 만드는 구조적 강제와 그것을 문화적으로 수용해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일 벌레로 살아가기를 결정한 개인의 태도가 서로 맞물린 것이다.

지금도 일자리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너도나도 “언제 잘릴지 모르는” 상태 속에서, “닥치고 노동!”의 관행에 몰입하고 있다. 더 늙기 전에 한 푼이라도 더 벌어서 어서 집장만하고 자녀들 학자금 마련하고, 국가가 책임져 주지 않는 나의 노후도 대비하자는 마음가짐을 키운다. 심지어 노조원이 되는 것도, 어떤 새로운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에 있다기보다, 이러한 지향을 더 잘 거두는 수단으로 삼은 면이 없지 않다.

개인의 이러한 노력과 무관하게, 아니 일자리를 갖고 있는 이들이 아등바등 더욱 더 그렇게 살아갈수록 전체 사회의 모습은 안타깝게도 “청년고용 빙하기”, “헬조선”, “노인빈곤재난국” 등으로 묘사되는 암울한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바깥이 얼어 붙고 춥다 보니 개인들은 온기가 있는 내부노동시장의 질서 안으로 어떻게든 들어가 그 안에서 무엇이든 받아들이려는 의지를 더 불태우고, 이는 과거의 노동관행의 온존을 재생산한다. 그 결과 한편에서는 일자리라고 하는 공간을 매일의 노동으로 터질 듯 꽉 채워가는 모습과, 다른 한편에서는 그 공간 향유의 기회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다수가 문밖에 줄을 서서 떨고 있는 균형이 파괴된 모습이 서로 대조를 이루며 우리 안에 공존하고 있다. 알다시피 후자는 주로 청년들이고 그 수는 점점 늘고 있다.

자의든 타의든 야근을 일삼고 장시간 노동을 당연시하는 문화의 만연은 일자리 창출이든 일자리 기회의 고른 향유든 지금 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문제해결과 가치창출에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거기에 더해서 노동을 통해 의식주는 물론이고 그 이상의 많은 것들을 과도하게 해결해야 하는 사회시스템도 문제다. 복지빈국의 국민들은 주택과 자녀교육 그리고 노후자금까지 거의 전적으로 개인이 현재의 노동을 통해 획득한 자기자본과 그것의 축적을 통해 해결해 가야 한다. 그 결과 소득기회가 불안정하고 자산축적의 수준이 낮은 젊은 층들에게 이 사회는 거대한 사구가 눈 앞에 버티고 있는 숨막히는 사막처럼 되어 버렸다.

과잉개인노동과 과소사회복지는 동전의 양면이요, 한 몸통 두 얼굴을 한 야누스와 같다. 그것은 과거를 꾸려 온 이데올로기가 현실의 요구와 어긋나 온존해 있는 상태라 할 수 있다. 반세기를 지탱해 온 한국식 일 벌레 예찬론은 이제 그 기능성을 의심해야 한다. 미래의 일자리 정책은 비단 일자리의 산술적 증대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야누스적 노동세계 질서 전체를 큰 틀에서 재구성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개인에게는 노동시간을 줄여 숨을 트게 하고, 공공사회서비스를 위주로 한 질 좋은 사회복지 시스템의 구비를 통해 노동소득의 공백지대를 메우도록 하면 어떨까? 노동시간의 단축이 생산력 증대로 이어지게 되면 비즈니스도 더 잘 되어 새로운 고용창출의 기회도 커지지 않을까? 줄어든 근로시간만큼 여가, 레저, 여행과 관련한 새로운 산업 기회가 생길 것이고 거기에 또 다른 고용창출이 이루어질 것이고, 질 좋은 공공서비스 확대도 공공부문에 양질의 일자리가 늘게 하는 부대효과를 낳지 않을까?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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