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너무 편하다. 이 좋은 것을 놔두고 미친 짓을 한 것 같다. 집 사람이 다시 정치하면 죽겠다고 하더라.”내가 다시 방송에 복귀하면서 녹화장에서 한 말이다. 4년 여 동안의 외도를 마친 후 다시 돌아온 방송. 그렇게 마음이 기쁘고 편안할 수가 없었다.
1996년 1월29일 내가 15대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다음날 방송3사가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떤 프로그램이라도 좋으니 출연만 해달라”는 요청이 밀려왔다. 특히 SBS가 적극적이었다
. 예전부터 친하게 지내온 배철호(裵哲浩ㆍ현 SBS제작위원) 부장이 전화를 걸어 “신설프로그램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일단 생각해보겠다”고 말했다. 나로서는 급할 게 없었다.
그 다음날 분당 집으로 SBS 사람들 20여 명이 몰려왔다. 윤세영(尹世榮) 회장과 배철호 부장을 비롯해 예능국장과 부장급 PD들이었다.
윤 회장은 나와 동향인 강원도 출신으로 당시 재경강원도민회장을 맡고 있었다. 고향을 들먹이는데다 프로그램 성격, 출연료까지 마음에 들어 결국 그 자리에서 1년 계약을 맺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프로그램이 SBS ‘이주일의 투나잇 쇼’였다.
첫 녹화는 4월21일 하얏트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있었다. SBS는 광고주 50여 명을 포함해 방청객을 1,000여 명이나 불렀다.
이순재(李順載) 강부자(姜富子) 의원도 게스트로 참석했다. 물론 담당 PD는 배철호 부장이었다.
카메라 불이 들어오고 큐 사인이 떨어지고 조용해진 녹화장.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내 몸이 그대로 굳어버린 것이다.
4년 만에 선 무대는 장난이 아니었다. 데뷔 때처럼 앞이 보이질 않았다. 겨우 분위기에 익숙해지는가 싶어 웃긴 말을 하려고 해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아직 국회의원 임기가 남아있던 때라 이상한 자기검열이 나를 괴롭혔다. 무슨 말을 하려고 해도 ‘내가 그래도 아직은 국회의원인데’라는 식의 자기검열에 빠지고 말았다.
2시간 동안 계속된 녹화는 완전히 엉망이었다.
방청객이 웃은 것은 딱 한 번이었다. “예전에는 동료의원 신분으로 김덕룡(金德龍) 의원의 지구당 개편대회에 참석했지만 이제는 연예인이니 돈 안 주면 한 발짝도 안 움직인다.”
이 대목에서만 박장대소가 터졌을 뿐 전체 녹화장 분위기는 내가 봐도 썰렁하기만 했다.
방청객 얼굴에서는 실망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들은 4년 만에 돌아온 코미디언 이주일의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배 부장도 무척 화를 냈다.
그는 녹화 후 가진 제작회의에서 “프로그램을 내보내지 말자”고까지 했다. 낮에 녹화해 그날 밤 방송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시청자의 폭 넓은 이해’를 바라고 방송을 강행했다.
결과는 시청률 1위였다. 38.1%로 KBS 2TV ‘목욕탕집 남자들’(37.9%)을 밀어내고 1위를 차지했다. 제작진도 나도 믿을 수 없었다.
배 부장은 내게 달려와 “이제 용기를 갖자”고 말했다. “다음 주부터 몸만 좀 풀리시면 시청률이 배 이상 나올 것”이라고도 했다.
이후 이 프로그램은 계속해서 시청률 1위를 달렸다. 그러나 내가 완전히 방송무대에 적응하기까지에는 근 한 달이 걸렸다.
화려한 넥타이를 맸다가도 ‘이거 너무 튀는 것 아냐?’라는 생각 때문에 그냥 풀어버리고, 멋진 콤비 양복을 입었다가도 “야하다”는 아내의 말에 점잖은 감색 양복으로 바꿔 입고….
4년 동안 몸에 밴 국회의원 때를 벗는 게 그렇게 힘든 줄은 정말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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