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일본 축구계는 J2 리그 2위로 1부 리그로 승격한 한 시민구단에 주목했다. 바로 인구 24만의 중소도시 마츠모토 시를 연고로 둔 마츠모토 야마가FC다. 이 팀은 불과 10년 전만 해도 나가노현의 그저 그런 사회인 축구팀이었다. 1965년 축구를 좋아하는 지역 사회인들이 모여 순수 아마추어 구단으로 시작한 야마가FC는 지난 2004년부터 J리그 입성을 목표로 뛰기 시작해 2010년 JFL(3부 리그 격) 진입, 2012년 J2 리그 진입에 이어 올해 감격의 J리그(1부 리그) 승격 확정의 꿈을 이뤘다. J리그 진입을 꿈꾸고 부단히 달린 지 약 10년 만에 일군 성과다.
국내 축구팬들에겐 이름조차 생소한 이 팀이 주목 받은 이유는 단순히 J2리그 2위로 승격을 확정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야마가 FC의 오오츠키 히로시 사장은 지난 1월 서울에서 개최된 ‘경향신문 초청 한일 축구산업 교류 포럼’에서 “몇 년 내에 J1에 가겠다는 목표보다 2주에 한 번 2만 명의 관중석을 꽉 채우는 게 궁극적인 목표”라며 팀의 철학을 밝혔다. 야마가 FC는 이 같은 구단 철학을 바탕으로 직장인 및 어린이 축구 클리닉 등 다양한 지역사회 공헌 활동을 벌였다. 또 후원 기업들을 찾아가 사인회를 펼치고 홈페이지 내에 ‘스폰서 뉴스’ 페이지를 만드는 등 마케팅에도 열정을 쏟았다. 그 결과 2014년 홈 경기 평균 관중은 1만 1,000명을 넘겼고, 현재까지 500개가 넘는 클럽 스폰서 구좌를 유치해 재정 자립도를 높였다. 기업의 지원 없이 명확한 목표 하에 분수에 맞는 구단 살림을 꾸려 점진해 온 결과물이었다.
● “여보, 우리 분수 좀 알고 삽시다”
하지만 K리그 시도민구단들이 살아온 방식은 이들과 크게 다르다. 아마추어클럽의 상향식 발전 형태가 아닌 정치인들의 치적을 위해 탄생한 사례가 많다. 이곳 저곳서 돈을 끌어다 기업 구단 창단하듯 뚝딱 만들다 보니 대부분이 사상누각이다. 그러면서도 성적은 기업 구단에 뒤지고 싶어하지 않으니 무리해 돈을 쏟아 부어 재정 악화를 초래한다.
돈 벌어다 주는 구단주가 아빠고 그걸 받아 살뜰하게 쓰는 단장이 엄마라면 둘 중 하나는 분수에 맞는 소비를 해야 집안이 굴러간다. 하지만 대부분의 K리그 시도민구단들의 ‘아빠’와 ‘엄마’들은 일단 남들에게 잘 보이는 데부터 신경 쓰고 있으니 가정 경제는 당연히 파탄으로 치닫는다.
경남 FC가 K리그 챌린지로 강등되자 “1년에 130억 원씩 벌어다 줬는데 결과가 강등”이라며 해체를 운운한 홍준표(60) 경남도지사도 ‘아빠의 자격’으로 보면 낙제점이다. 벌어 온 돈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 가계부 한 번 제대로 살펴보지 않다가 어느 날 갑자기 벌어다 준 돈 다 어쨌냐며 이혼 얘기를 꺼내는 꼴이다. 해체를 운운하기 전 먼저 꺼냈어야 하는 말은 “우리 분수 좀 알고 삽시다”였다. SBS 박문성 해설위원은 “K리그 시도민구단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구단주들이 구단을 자신의 소유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홍 지사가 구단을 소유물이 아닌 가족으로 생각했다면 나오기 힘든 말이었다.
● “2부 리그 강등 된다고 죽는 거 아냐”
가족이라 생각하고 품는다면 ‘못난 자식’도 스스로 변한다. 올해 강등 한 시즌 만에 승격한 대전의 사례를 보면 그렇다. 대전의 2부 리그 강등이 점쳐졌던 지난해 10월 당시 구단주였던 염홍철(70) 전 대전광역시장은 기자간담회를 자처해 이렇게 말했다.
“집에서 아이가 공부를 못한다고 해서 내 자식이 아닌 것은 아니지 않나. 부모의 역할은 아이가 공부를 잘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강등을 피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지만, 설령 강등된다고 해도 시와 시민의 지원은 줄어들 지 않을 것이다”
대전의 강등이 확정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염 전 시장은 변함 없는 지원을 약속했고, 이에 화답하듯 대전은 강등 1년 만에 승격을 확정했다. 강등을 계기로 올해 47명이던 선수단 규모를 33명까지 줄여 재정건전성을 키웠고, 자체적으로 선수 선발 위원회를 꾸려 선수 선발 과정의 투명성까지 갖췄다.
수도권의 한 구단 관계자는 “큰 무대가 좋은 건 누구나 마찬가지지만, 강등이 곧 죽음이라는 인식은 버려야 한다. 대전처럼 구조적 문제를 짚어보고 내실을 다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며 강등에 대한 인식 전환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대전과 함께 올해 승격을 확정한 광주 FC 관계자 역시 “K리그보다 미디어의 주목도나 환경이 열악한 건 분명하지만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 홈 팬들에게 또 다른 만족을 주는 것도 2부 리그에서 누릴 수 있는 장점”이라고 말했다.
●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시민 속으로’
올해 일본 J리그에서 3관왕을 기록한 감바 오사카는 2012년 강등이 확정돼 지난 한 해를 J2리그에서 뛰었다. 하지만 강등 후유증은 없었다. 지난해 최저 2,500엔(약 2만3,000 원)에서 최고 15,000엔 (약 14만 원)에 팔린 홈 경기 티켓은 대부분 매진됐다. 그럼에도 구단 측은 약 5,000석의 좌석을 연고지역 내 유소년 축구 클럽에 배정하는 등 당장의 이익보다 구단의 미래 고객들을 위해 투자했고, 이 같은 투자는 J2 리그에서의 흥행 성공과 J리그 우승의 원동력이 됐다.
K리그 관계자들도 이처럼 시도민구단들의 지향점이 성적이 아닌 팬과 시민이 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시도민구단은 큰 규모의 마케팅보다 시민들의 삶에 파고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 강원 임은주(48) 사장은 “선수들이 조기축구회에 나가 지역 축구인들과 유대 관계를 맺고 함께 뛴 선수들을 팬으로 만들어야 한다”며 “그렇게 형성된 팬들 앞에서 이겨주는 게 최고의 마케팅”이라고 말했다.
대전 김세환(38) 사장 역시 “시도민구단 선수단과 직원들에게 지급되는 급여의 가치는 기업구단과 다르다”며 “서민들이 떡볶이 팔고 꽃 팔아 낸 세금으로 주는 수당이다. 그에 걸맞은 공헌을 하는 게 시민구단의 책임이다”라고 강조했다.
K리그에서도 작지만 의미 있는 노력들이 진행되고 있다. 올해 K리그 챌린지 ‘팬 프랜들리 클럽상’을 수상한 FC 안양은 창단 후 생활체육 저변 확대를 위해 직장인 축구 클럽을 대상으로 ‘원 포인트 레슨’을 진행해 호응을 얻었다. 한 축구관계자는 “당장의 성적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지역민들에게 1등 팀으로 인정받는 것이 우선”이라며 “구단주들은 눈앞의 효과보다 멀리 바라보고 갈 수 있도록 지켜봐 주는 인내심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형준기자 mediabo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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