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 후 정부 직 수락 제한’
강제성 없는 조항이지만
역대 총장들 행보와 달라 논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2일 귀국으로 사실상 대선 레이스에 뛰어들었지만 후보 자격에 대한 논란도 그치지 않고 있다. 대표적인 게 반 전 총장이 대선에 출마한다면 유엔 협정에 위반되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는 주장이다. 실제 유엔 약정(Terms of appointment of the Secretary-General)에는 유엔 사무총장의 퇴임 이후 활동을 제한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그렇다면 반 전 총장의 대선 출마는 불가능한 것인가.
유엔이 1946년 창설 직후 1월 24일 1차 총회에서 채택한 약정에는 ‘유엔 사무총장은 많은 정부가 신뢰하는 사람(a confidant)이어서 어떠한 회원국도 그가 퇴임한 직후(immediately on retirement)에 그가 보유한 비밀정보가 다른 회원국이 불쾌하지 않도록 정부의 어떠한 직도 그에게 제안하지 않고, 그 자신도 그러한 직을 수락하지 않는 게(should refrain) 바람직하다(desirable)’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유엔 사무총장이 퇴임 후 유엔에서 습득한 정보를 활용할 수도 있는 특정 정부의 직책을 맞지 않는 것이 좋다는 취지다.
결론부터 말하면 유엔 약정은 강제성이 없는 규정이라 출마에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우리 외교부도 “관련 협정은 구속력을 갖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외교부 관계자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사항은 강제성과 구속력이 있지만 총회 약정은 권유 사항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심상민 국립외교원 교수도 “관련 협정은 이해관계가 충돌할 수 있는 공직 수행을 피해달라는 권고적 성격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12일 귀국한 반 전 총장도 인천국제공항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하며 “출마가 제한되지 않는다는 데 (다른) 해석의 여지가 없다”며 “유엔 당국이 관련 입장을 밝혀줄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다만 조동준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는 “역대 사무총장들이 대체로 규정을 준수해 왔기 때문에 반 전 총장으로선 어느 정도 비판을 각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임기 중 사망한 2대 다그 함마르셀드 전 총장을 뺀 전임 사무총장 6명은 이 규정을 준수했다. 반 전 총장 전임인 코피 아난 전 총장은 퇴임 직후 코피아난재단을 설립해 전세계에서 봉사 활동에 나서고 있다. 코피 아난 전 총장도 퇴임 당시엔 가나에서 유력한 대선 후보로 거론됐지만 출마하지 않았다. 초대 트뤼그베 리 전 총장은 1952년 퇴임 후 10여 년 뒤인 1963년 노르웨이의 상업장관을 맡았다. 4대 쿠르트 발트하임 전 총장의 경우 퇴임한 지 5년 뒤 오스트리아 대선에 도전해 당선됐다. 5대 하비에르 페레스 데 케야르 전 총장이 페루에서 총리를 역임한 것은 퇴임 9년 뒤였다. 4월 또는 5월 조기대선이 거론되는 가운데 반 전 총장이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 퇴임 직후 정부의 직 도전을 금지한 유엔 약정을 위반하는 첫 사례가 되는 셈이다.
서상현 기자 lss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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