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기고] 어선들 쫓아내고 관광미항 만든다는 마산 해수청

입력
2017.03.02 15:01
0 0

어항이 어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관광객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가. 마산지방 해양수산청이 관광 미항을 만든다는 명분으로 어항에서 어민들을 쫓아내려 하고 있다. 마산 해수청이 414억 원의 혈세를 들여 추진 중인 ‘통영 강구안 친수시설 조성 사업’이 그것이다. 어항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본말이 전도된 사업이다. ‘강구안’은 어항인 동시에 이순신 장군에 의해 창설된 삼도수군통제영의 심장이었다. 오는 4월부터 공사를 강행할 예정이라니 어항의 정체성과 강구안의 역사성 파괴가 명확해 보여 크게 우려된다.

통영시에 따르면 마산 해수청이 사업을 추진하는 목적은 "강구안에는 500여 척 어선이 무질서하게 정박해 관광미항 이미지를 훼손하고 있는데” 그런 "강구안을 시민들의 휴식공간을 겸한 친수관광 미항으로 기능을 전환해 지역민은 물론 통영을 찾는 관광객에게 새로운 문화·휴식공간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어째서 강구안 어항으로 500여척의 어선들이 드나드는 모습이 관광미항 이미지를 훼손하는 것인가. 수백 척의 어선이 수시로 오가는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감동적 관광미항의 풍경이다. 마산 해수청이 수천억원을 투자한다고 해도 다시 만들기 어려운 최고의 관광상품인 것이다.

항구의 풍경을 완성하는 것은 입출항하는 역동적 어선들이다. 어선 없는 바다와 수변 공원에 인파만 북적이는 게 관광미항의 참모습일 수 있을까. 인천의 소래 포구는 도심 한복판으로 어선들이 드나든다는 사실만으로 주말이면 수만 명의 관광객이 몰려든다. 또 최근 서울의 뚝섬에 있는 뚝도시장에서는 백령도, 연평도 등 섬에서 어선들이 자연산 활어를 싣고 한강을 거슬러 올라와 즉석 파시를 열고 있다. 파시 날이면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관광 상품으로 인기가 높다. 그런데 강구안 개발 사업은 오히려 자발적으로 몰려든 어선들을 쫓아낸 뒤 어항을 관광미항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그 동안 강구안 어선들은 바다에서 막 잡아온 수산물을 바로 앞의 중앙시장 상인들에게 공급해 왔다. 선상에서 수산물을 거래하는 파시의 풍경 또한 다시 보기 어려운 관광거리였다. 하지만 공사가 시작되면 어선들은 대체 어항으로 이동해야 한다. 부잔교를 설치해 일부 기능을 남긴다 해도 상인과 어민이 무시로 연출했던 선상 파시의 풍경은 사라지게 된다. 어선과 파시가 사라진 텅 빈 강구안 바다가 과연 관광미항이 될 수 있을까. 다른 지역에서는 관광상품을 만들고자 어선들을 끌어오기 위해 애쓰는데 마산지방 해수청은 수백억 원을 들여 스스로 찾아드는 어선을 쫓아버리겠다니,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게다가 바닷가에 인접한 통영은 이미 그 자체로 ‘친수관광 미항’으로 이름 높다. 물가에 있는 도시에 더 무슨 친수가 필요하단 말인가.

그뿐인가. 세병관을 제외하고는 통영의 삼도수군통제영시대 건물들은 일제에 의해 모두 파괴돼 버렸다. 하지만 강구안 어항은 통제영시대부터 살아있는 최고의 역사문화유산이다. 조선시대에 강구안은 거북선 한 척과 판옥선 등 통제영 8전선을 비롯한 전함들의 정박지였고 3만 명이나 되는 정예 수군의 훈련장이었다. 지금도 복원된 거북선과 판옥선이 떠 있고 500여척의 어선들이 무시로 드나드는 생활의 무대요, 통영 역사의 상징이다. 그런데 이 유서 깊은 강구안에서 어선은 물론 거북선과 판옥선까지 몰아내고 수변 공원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도대체 마산 해수청은 역사 문화 의식이 있는 기관인지가 의심스럽다.

강구안은 이미 충분히 친수적이고 문화마당이란 훌륭한 수변 무대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어선들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수변데크길이나 수변무대, 분수대 따위를 다시 만들겠다는 것은 그저 혈세를 낭비하고, 역사문화를 말살하는 토목사업이자 전시행정일 뿐이다. 강구안 친수 사업은 즉각 중단해 마땅하다.

강제윤 시인ㆍ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