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출범하면 조직부터 손봐
지식경제ㆍ미래창조과학 등
부처 명칭에 정권 가치 주입
기능상 조정도 매번 반복
“차기 정부도 개편 불가피
‘정권 코드’ 아닌 보편성 갖춰야”
“또 짐을 싸는 건 아니겠죠?”
해양수산부의 한 직원은 14일 정부 조직 개편 이야기가 나온다는 말에 한숨부터 쉬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해수부는 1996년 해운항만청과 수산청을 합쳐 창설된 뒤 지난 20년간 청사를 5번(역삼동→충정로→계동→과천→세종)이나 옮겨 다녔다. 부처가 합쳐지고 쪼개지는 사이 농림부 수산청으로 공직에 입문한 한 직원의 소속도 해수부→농식품부→해수부로 계속 바뀌었다.
온 나라가 조기대선 체제로 들어가면서 또 다시 정부조직 개편설이 나오고 있다. 백가쟁명식의 시나리오들이 난무하며 해수부가 겪어 온 비애가 다시 되풀이될 가능성이 커졌다. 그러나 이제는 정권마다 반복돼온 조직개편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권마다 반복된 정부조직 개편
사실 그 동안 정권이 바뀐 뒤 새 대통령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바로 정부조직을 개편하는 일이었다. 각 부처 이름에 정권의 가치를 주입하려 한 것이다. 이명박 정권은 산업정책과 에너지정책을 총괄하던 산업자원부의 명칭을 지식경제부로 바꿨다. 지식경제부 영어 표기로 쓰였던 ‘knowledge economy’는 정체불명의 외국어란 비판을 받았다. 박근혜 정부는 ‘안전’을 강조하겠다며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개칭했지만 세월호 참사는 안전 대책의 총체적 난맥상을 드러냈다. 과학기술 부처(미래창조과학부)가 ‘창조’라는 이름을 포함하는 모순도 드러냈다.
기능상 조정도 매번 벌어졌다. 나라 곳간을 담당하는 예산 기능은 경제기획원→재정경제원→예산청→기획예산처→기획재정부를 오갔다. 수출이 나라의 살 길이라 강조하면서도 정작 통상 기능은 외교(외교통상부)에 붙였다 산업정책(산업통상자원부)에 붙였다 하는 일이 반복됐다. 개편 결과가 좋았던 것도 아니다. 김영삼 정권에서는 예산ㆍ세제ㆍ금융 모두 재경원이 담당하는 구조였는데, 금융감독 기능이 성장 중심 정책에 휘둘리다 결국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까지 받았다. 김대중 정권도 금융감독 기능을 분리하고 재경부ㆍ금융감독위원회ㆍ통합감독기구의 권력 분할을 추구했지만 카드사태를 피하진 못했다.
성과가 없는데도 대통령은 왜 정부조직부터 손보려 하는 것일까? 오철호 숭실대 행정학과 교수는 “가장 짧은 시간에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개혁을 한 것처럼 홍보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오 교수는 “조직 개편은 인사나 예산과 직결돼 있어 임기 초반 관료 사회를 장악할 수 있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고 풀이했다.
미국의 우직함을 배우자
중앙정부 부처 수명이 5년도 안 되는 이런 현상은 200년 이상 우직하게 부처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는 미국과 대조된다. 달러를 주무르며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미 연방정부 부처의 이름은 출범 당시인 1789년부터 지금까지 ‘재무부’다. 재무부와 함께 창설된 국무부도 국제 외교 질서를 주도하고 있지만 한 번도 이름이 바뀐 적이 없다. 다른 부처 역시 내무 법무 농무 상무 등 고전적 명칭을 고수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부처명에 ‘미래’나 ‘창조’ 같은 추상적 단어와 정권의 주관을 워낙 많이 반영한 터라 차기 정부 출범 후 정부조직 개편이 불가피하다는 데에는 상당수 전문가가 공감한다. 그러나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부처 이름을 바꾸고 떼었다 붙였다 하는 소동은 이번이 마지막이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정권의 특수 가치를 정부 조직에 무리하게 투영하려 해선 안 된다는 주문이다.
정부조직은 나라의 일인데, 이를 정권 조직인 청와대나 선거캠프가 자의적으로 결정하는 것에도 비판이 쏟아진다. 사회 각 계층과 정파를 아우르는 논의를 거쳐야 정권의 손바뀜에도 살아남는 보편성을 갖출 수 있다. 오 교수는 “이번에는 정부, 전문가 집단, 각 정당 등이 모두 참여하는 공개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이대혁 기자 selecte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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