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식
주필

등록 : 2015.10.29 18:29
수정 : 2015.10.29 20:44

[황영식의 세상만사] ‘균형외교’의 지속가능성

등록 : 2015.10.29 18:29
수정 : 2015.10.29 20:44

‘중국경사론’ 좀처럼 끊이지 않아

남중국해 사태 균형점 재조정 요구

안보ㆍ가치와 경제 같이 재어서야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인 올해만큼 양국 전문가회의나 토론회가 자주 열린 적이 없다.

연초부터 잇따른 토론회에서 양국 학계ㆍ언론계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현재의 양국관계 냉각에 심각한 우려를 표하며 조속한 한일정상회담의 개최 필요성을 강조했다. 다행히 해가 가기 전인 11월2일 한일정상회담이 열릴 예정이니, 국교정상화 50주년의 의미가 완전히 흐려지지는 않게 됐다.

일본측 참석자 대부분이 이른바 ‘지한파(知韓派)’로 분류될 만해서, 오랫동안 양국의 핵심 쟁점이 돼 온 역사문제에서는 이렇다 할 논쟁이 빚어지지 않았다. 반면 중국을 바라보는 양국 참석자들의 시각 차이는 과거보다 더욱 커졌다. 21세기 들어 본격적으로 확산된 일본의 ‘중국 위협론’이 한결 단단해진 것은 물론이고 한국의 대중 자세를 두고 수시로 ‘중국 경사론(傾斜論)’을 제기했다. 과거에는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의 대중 경사를 자주 지적했던 것과 달리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의 대중 경사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런 문제제기에 대해 한국측 참석자들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취하고 있을 뿐 절대로 중국 쪽으로 기울어 있는 게 아니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은 낮다고 반박했다. 최대 교역국으로 떠오른 중국의 경제적 지위와 앞으로 통일과정에서 기대되는 중국의 역할 등을 들어 한국이 일본과는 다른 시각을 가질 수밖에 없지만, 한미동맹관계 등에 비추어 ‘중국 경사론’은 지나친 확대해석이라는 논지였다.

이런 논의 가운데 한국측 참석자들이 분명하게 대답하지 못한 게 몇 있었다.‘가치동맹’에 대한 의지, 그리고 남중국해 문제에 대한 입장이 대표적이다. 한미동맹에 대한 인식이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대처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유와 민주주의, 시장경제 등 공통가치를 지켜내겠다는 데까지 이르러 있는 것인지는 스스로도 아리송했다. 현재 난사군도(南沙群島ㆍ스프래틀리 제도) 융수자오(永暑礁ㆍ피어리크로스 암초)에서 이뤄지고 있는 중국의 인공섬 건설공사에 대한 침묵을 앞으로 분쟁이 미중 갈등으로 치달을 때도 그대로 지킬 것이냐는 물음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측 참석자들 나름대로 이런저런 설명을 했지만 질문과 제대로 맞물리지는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방미 중 기자회견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나란히 서서 찍은 사진이 미국민에 어떻게 비쳤을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동문서답하던 장면과도 겹쳤다.

그때만 해도 이리 빨리 그런 가상 질문이 현실이 될 줄은 몰랐다. 미국이 27일 이지스 구축함을 중국이 건설 중인 인공섬 12해리 안으로 들여보내며 남중국해의 긴장이 순식간에 고조됐다. 정부도 더 이상 침묵을 지킬 수 없었다. 청와대가 밝힌 “남중국해 문제는 국제적으로 확립된 규정에 따라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에는 고심의 흔적이 역력했다. ‘국제적으로 확립된 규정’은 중국의 인공섬 건설이 국제법(해양법조약) 위반이라는 에두른 지적, ‘평화적 해결’은 미국의 군사적 행동에 대한 간접적 비판으로 해석됐다. 정부로서는 이른바 ‘균형외교’의 틀은 유지한 셈이다.

실은 정부가 마냥 침묵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미국과 일본은 물론이고 국내에조차 ‘침묵’ 인상을 준 것은 한결같이 하나마나 한 소리였기 때문이다. 그런 원칙론의 반복이 ‘전략적 모호성’에 기댈 수밖에 없는 우리 처지에서 적극적으로 선택된 것이라는 옹호론도 무성하다.

이번 남중국해의 위기는 미중 양국이 대화 모드에 들어감으로써 일단 잦아들었지만, 중국의 확집(確執)과 미국의 ‘재균형’ 전략에 구체적 변화가 없는 한 언제든 구체적 위기로 떠오르게 마련이다. 그때 가서는 정부의 균형외교 기조도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어차피 지속가능성에 한계가 있다면 지금부터라도 다양한 균형점 이동을 검토해야 한다. 애초에 안보ㆍ가치와 경제적 이해를 같은 저울로 달아 균형점을 찾겠다는 발상이 무리였음을 깨닫는 데서부터 시작해 마땅하다.

황영식 논설실장 yshw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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