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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기업인이 공직자로 성공하기 힘든 이유

입력
2014.11.25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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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면 인사혁신처장이 25일 국회에서 열린 안전행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근면 인사혁신처장이 25일 국회에서 열린 안전행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삼성의 인사전문가가 정부 인사혁신처장에 임명된 이후 주변 반응을 보면 우려보다 기대가 더 큰 것 같다. 복잡한 규정을 내세워 안 되는 이유만 찾으려는 공무원과, 매장을 찾거나 고장 난 가전제품을 고칠 때 만나는 상냥하고 적극적인 삼성맨의 이미지가 너무 대비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삼성 인사통이 공무원 인사를 지휘한다면 관공서에 바람직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은 이근면 인사혁신처장을 청와대로 불러 독대하면서 힘을 실어주기까지 했다.

이 처장도 이런 기대를 잘 알고 있는 듯 하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국민의 바람은 효율적인 정부, 경쟁력 있는 공무원이 아니겠냐”며 “이런 점에서 기업과 공직 인사제도 간에 접점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업과 공무원조직은 추구하는 효율과 경쟁력이 전혀 다르다. 이런 점에서 이 처장이 펼칠 인사 실험을 지켜보기가 조마조마하다. 근본적으로 기업은 열린 시스템 속에서 작동하는 반면 국가는 닫힌 시스템에 가깝다. 예를 들어 기업은 생산과정에서 나온 폐기물을 관리업체에 맡기면 처리가 된다. 하지만 국가는 국민들이 배출한 쓰레기를 깔끔하게 사라지게 할 수 없다. 대기오염을 각오한 소각이나 해외 반출이라는 비도덕적 선택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또 정부는 기업 경영자처럼 분야별 생산을 조절하기 힘들다. A, B 두 종류의 상품을 생산하는 기업의 경우 어느 순간 A 제품이 더 잘 팔린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이 기업의 경영자는 A제품을 팔아 남은 이익금을 이용해 B 제품 가격을 인하하거나, 품질을 높이는 연구개발비를 더 들여 B제품도 잘 팔리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정부는 그런 선택을 하기 힘들고, 효과를 거두기도 어렵다.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할 때마다 정부는 피해를 보게 될 농업분야에 대한 지원을 약속했지만, 이 후 그 효과를 체감하는 농부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다. 정부가 유망산업을 선정해 지원을 집중하면 결국 다른 산업이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조직의 성격도 근본적으로 다르다. 기업은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조직과 지원조직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그래서 업황이 어려워지면 지원조직을 줄이고 핵심조직에 집중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위기를 탈출할 수 있다. 하지만 정부는 국민과 각 부처를 핵심조직과 지원조직으로 구분할 수 없다.

미국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기업과 국가 시스템의 이런 근본적 차이점 때문에 성공한 기업인이 성공한 공직자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기업가는 적절한 투자시점을 선택하고 신속하게 자원을 투입하는 등의 전략적 사고가 중요하다. 반면 공직자는 국가가 운영되는 원리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국가가 제 궤도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조정하는 이론적 사고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사업이나 투자의 성공은 주변 상황 등 일회적이고 우연적 요소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 하지만 행정은 그런 요소들을 최소화하고 지속 가능하게 시스템을 운영해야 성공할 수 있다. 때문에 사업에서의 성공에 고무된 기업가가 자기 방식대로 정부를 지휘한다면 비극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자칭 ‘컴퓨터 달린 불도저’라며 온 국민을 현대 직원처럼 잘살게 만들어줄 것이란 자신감이 넘쳤던 이명박 전 대통령을 보면 쉽게 이해 될 것이다. 그는 임기 내내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며 불도저 같이 이런 저런 일을 벌였는데 그 후유증이 엄청나다. 그나마 사업가적 자질을 발휘할 수 있는 해외 자원투자마저 대부분 천문학적 손실로 결말 나, 가뜩이나 어려운 나라살림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그 상처가 아물지도 않은 상황에서 다시 기업인에게 정부 인사를 맡기기로 결정하고 그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이 호의적인 것을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성공한 기업인에 대해 얼마나 큰 선망과 신뢰를 보내고 있는지 새삼 느끼게 된다. 다행히 이 처장은 “삼성의 인사문화를 공직에 그대로 심을 생각은 없다”고 밝혔다. 성공한 기업인으로서의 자부심과 단기간 내 성과를 내겠다는 조급함을 내려 놓고, 정부조직과 기업조직의 근본적 차이점부터 천착한다면 이 처장은 공직자로서도 성공하는 기업인이 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정영오 산업부장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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