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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영 기자

등록 : 2017.05.08 20:00
수정 : 2017.05.08 20:00

[36.5] 대선후보, 숨은 미덕 찾기

등록 : 2017.05.08 20:00
수정 : 2017.05.08 20:00

윗줄 왼쪽부터 문재인, 안철수, 심상정, 유승민, 홍준표 후보. 한국일보 자료사진

‘착즙미(搾汁美)’라는 신조어를 배웠다. 온라인 커뮤니티 근황에 정통한 후배가 눈을 빛내며 한 설명 덕이다.

“과즙미(果汁美)는 아시죠? 과일처럼 상큼하고 기분 좋은 매력이요. 반대로 애써 좋아하려고 착즙주스 만들 듯 쥐어짜낸 매력은 착즙미라 그래요.”

쥐어짜다니. 찾아 헤매야 할 만큼 매력이 없다는 냉정한 비판이되, 그 와중에 칭찬할 구석은 눈을 크게 뜨고 찾는다는 태도가 아리송하면서도 마음에 들었다. ‘자신에겐 추상같게, 남에겐 너그럽게’를 논하는 종교인 같기도 하고, 모든 이치의 부분적 합리성을 강조하는 철학자를 닮은 것도 같았다.

문득 대선 후보들의 미덕을 쥐어짜야겠다고 마음 먹은 건 주변의 간헐적인 기권 선언을 보면서다. 방황 끝에 결국 “도대체 왜 용지에 기권 칸은 없느냐”고 항변하는 이에게 도움이 되진 않을까.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탄탄하다. 지지층, 소속정당 규모가 그렇다. 국정운영 경험도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을 외치게 했던 그는 “참여정부 성과를 계승하고, 한계는 넘어서겠다”고 진중하게 다짐한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늘 민낯으로 예측 가능성이나마 선사한다. 노조, 언론, 성소수자 탄압 계획은 내키는 대로 공표하고, 돼지발정제 사건 전모는 손수 자서전에 써뒀다. ‘도로 친박당’ 특별지시도 한다. 앞으로 행보도 예상대로일 공산이 크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학습능력이 남다르다. 정계진출 4년 만에 3당체제를 만들고, 대선 레이스 중 목소리도 새로 익혔다. V3개발과 무료배포, 1,500억원 기부, 후보 양보 등 ’도전길’만 걸은 그는 ‘뚜벅이 유세’라는 새 실험에 나섰다.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는 소신의 아이콘이다. 대통령 작심비판 등으로 도드라졌던 그의 정치인생은 소속의원 집단탈당 사태로 응원의 대상이 됐다. 보수 정당이 합리와 지성 속에 재기한다면, 그건 “굳세어라 유승민” 덕분이 아닐까.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인간의 존엄 앞에 타협이 없다. 구로공단 노동자들과 함께한 순간부터, 노동운동, 국회진출 등의 과정에서 한결같은 사자후로 기득권에 맞섰다. 성소수자들을 위로하면서도, 대중적 공감대를 넓힌 그다.

곱씹을 비판이 수십 배는 될지 몰라도, 후보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역사에 기여한다. 순진하고 안일하게 들리겠지만, 대선 후 가장 격렬히 반목했던 문재인ㆍ안철수 후보가 한번쯤 서로의 미덕을 발굴해봤으면 좋겠다. “안 후보가 더 도왔더라면”, “고마움을 모르는 건 짐승만도 못한 것”이라며 등 돌린 감정의 골은 그리 만만한 게 아닐 것이다. 온갖 네거티브와 날 선 공방은 골을 더 깊게 팼다.

하지만 누가 집권하든 여소야대 국회와 대화하지 않곤 공약 이행은커녕, 국정운영조차 어려운 건 주지의 사실이다. 양측이 드림팀, 공동개혁정부를 내건 이유이기도 하다. 두 진영을 포함해 각 정당들이 공방할 문제나 피차 입장 차는 차가운 이성 속에 선명히 남기더라도, 뜨거운 혐오를 걷어낼 순 없을까.

국정혼란을 또 당해 내기에, 살 만한 세상은 너무 멀리 있다. ‘이게 국가냐’는 물음은 아직 미제인데, 강릉산불 재난문자는 또 먹통이었다. 청년은 희망을 잊었고, 중장년은 일자리를 뺏겼고, 노인들은 끼니조차 잃을 판이다. 꼬박꼬박 성실한 건 납세고지서뿐이다. 건전한 견제 속에 반칙, 특권, 게이트, 협잡, 인재(人災) 없는 사회를 향해 순항하는 새 정부와 국회를 보고 싶다. 대선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숨은 미덕 찾기가 두 사람 만의 몫은 아니다. 지지자들에겐 더 절실한 자세일지 모른다. 한 번도 지지하지 않았거나, 때론 격렬히 혐오했던 후보의 기여에 대해 한 번쯤은 곁눈질 했으면 한다. 혐오와 배척, 맹목적 사랑으로 견실한 정치발전을 방해하고서, 정치권에만 책임을 묻기에는 역시 갈 길이 멀다. 절제된 분노로 세계사에 유례없는 촛불혁명을 일군 시민들의 비판적 지지 위에서라야 불법, 반칙, 협잡이 판치는 사회의 종언도 가능하다.

김혜영 기획취재부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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