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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포에트리 슬램에 대하여

입력
2014.09.2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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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인 코이잔(Shane Koyczan)이라는 시인이 있다. 그는 엄밀히 말해 ‘포에트리 슬램(poetry slam)’ 요원이다. 이 용어에 낯설어 할 사람들을 위해 조금 설명을 하자면 낭독용 시를 쓰고 그 시를 래핑(rapping)으로 대중에게 전달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일종의 입체 시 낭독 운동가인 셈이다. 나는 최근 코이잔의 시를 모은 랩북 형식의 책 지금까지도를 한 권 번역하고 있다. 나는 이 책을 대중에게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고민하다가 포에트리 슬램은 시를 텍스트로 전달하는데 그치지 않고 몸과 마음의 공명통을 흔드는 전달방식이라고 옮긴이의 말에 썼다. 오래 전부터 나는 포에트리 슬램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한국에도 이 같은 새로운 시 낭독운동의 영역을 만들고 우리 사회에도 라임으로 진실을 전할 수 있는 새로운 입체낭독의 형식을 알리고자 애써 왔다. 그의 활동은 나에게 고무적이었다.

내가 코이잔에 주목하고 매력적인 ‘랩북’이라고 불러도 좋고 ‘업 타운 시집(Up Town Poem)’이라고 불러도 좋은 이 작은 책을 소개하려는 이유는 무엇보다 그가 전달하려는 진실이 감동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도 필요한 누군가의 목소리 같아 보였다. 코이잔은 자신의 어린 시절 학원폭력으로부터 당했던 상처를 시를 쓰며 랩이라는 표현을 통해 극복해갔다. 일종의 성장통에 대한 성찰이며 한 인물의 극복기인 것이다.

코이잔의 ‘지금까지도’는 급속도로 커져가는 교내 집단 괴롭힘 반대 운동을 위한 슬로건이 되었다. 코이잔의 랩 공연시는 2009년 앨범 ‘입 닥쳐 그리고 뭐라고 말해봐’를 통해 세상에 나왔다. 얼마 후 캐나다 학생 두 명이 집단 괴롭힘에 대한 의식을 높이려고 처음 시작한 핑크 셔츠 데이를 기념하기 위해 유튜브에 코이잔이 시를 낭독하는 비디오를 올렸고, 이 영상은 무려 조회수 14억이라는 엄청난 수치를 기록하며 바이러스처럼 세계에 번졌다. 코이잔은 “이걸 필요로 하는 누군가의 어깨에 팔 하나를 올려놓는 것”이라고 말했다. 집단 괴롭힘에 대한 코이잔의 메시지는 인터넷을 통해 거의 모든 주요 웹사이트와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유되었고 심지어 텔레비전 뉴스 프로그램에서도 다뤄졌다. 그가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TED2013 컨퍼런스에서 공연한 영상은 아직까지도 엄청난 효과를 낳고 있다 TED(획기적인 연설가와 공연인들이 짧은 연설을 하는 TED 톡으로 알려져 있는 조직)에서 코이잔은 ‘지금까지도’를 어떻게 쓰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을 시작으로 시를 읊었다. 코이잔의 공연은 청중의 공감을 얻었고, 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렸다. 수많은 아이들, 학부모들, 선생님들은 코이잔의 시가 자신들의 왕따 경험을 정확히 집어낸 심오한 방식에 고무되었다. 괴롭힘 속에서 왕따를 당한 한 소년의 노래와 시가 세상을 바꾼 것이다. 세상은 코이잔에게 ‘지금까지도’의 영향력을 인정하며 집단 괴롭힘을 반대하는 메시지를 통해 그가 인권과 자유를 증진시키는 우수한 지도자임을 인정했다.

시는 내면을 달랬거나 달래고 있거나 달래고 있는 흔적이다. 또한 포에트리 슬램은 이제 세상을 흔든 목소리들로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블랙뮤직을 세상에 알리고 힙합평론을 하는 김봉현, 래퍼이자 프로듀서인 MC메타 등과 함께 나는 ‘시와 랩의 전격소통작전-(라임의 재구성)’이라는 프로젝트를 실행해 왔는데, 시와 힙합이 우리 사회에 심각한 편견과 오해로 가득 차 있다는 의견에 동감하고 사람들에게 시와 힙합의 교집합인 ‘라임’을 돌려주자는 운동을 해왔다. 그 동안 몇 번의 공연과 포럼, 세미나 등을 통해 이 이야기는 대중들에게 꾸준히 확산되었고 래퍼들과 나는 계속해서 대중으로부터 멀어진 라임을 거리로 갖고 나왔다. 코이잔의 시와 목소리는 그런 점에서 우리와 새로운 운동회를 같이 하는 멤버처럼 여겨졌다. 시와 랩은 한 자연에서 나온 다른 광물이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김경주 시인ㆍ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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