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재벌 여론 악화 출석요구 폭주
상임위 한곳서만 기업인 150명 신청
與 "기업활동 위축" 무더기 소환 반대
野 "예외 있을 수 없다" 또 신경전
증인 명단서 빼주며 민원 구태도
출석 기준 구체화 등 제도 개선해야
19대 국회 마지막 국정감사를 앞두고 재벌 총수들에 대한 증인ㆍ참고인 신청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대한항공 ‘땅콩회항’ 사건과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 등 재벌 이슈가 끊이지 않았던 탓에 야당이 “총력을 다해 재벌 개혁 문제를 다루겠다”고 벼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당은 기업활동 위축을 우려해 무더기 소환에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전문가들도 “재벌 총수라 하더라도 국감 증인에서 예외가 될 순 없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무더기 증인 소환을 통한 ‘보여주기식 국감’의 구태가 반복돼선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신동빈ㆍ이재용ㆍ정용진 등 줄소환
여야가 1일까지 협의 중인 국감 증인 출석 대상 기업인은 재벌 총수 급만 줄잡아 10여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불투명한 소유구조 및 계열사간 순환출자 문제가 불거진 롯데그룹이 최우선 순위에 올라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국회 정무위원회와 기획재정위ㆍ산업통산자원위 등 상임위 3곳에서 증인 채택을 협의하고 있다. 땅콩회항 논란에 휩싸인 한진그룹은 조양호 회장(교육문화체육관광위)과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국토교통위) 부녀가 나란히 거론되고 있다.
환경노동위와 산자위 소속 야당 의원들은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을 대상에 올렸다.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와 산자위에서는 삼성(이재용) 현대차(정몽구) LG(구본무) 총수 모두를 논의 대상으로 올려놨다. 새누리당 한 관계자는 “국감에 증인으로 채택된 기업인이 한해 100여명 안팎인데 올해는 산업위 한 곳에서만 야당이 150명 가까이 기업인 증인을 신청할 정도로 폭주하고 있다”며 “롯데 사태로 재벌을 바라보는 일반 국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는 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무더기 출석 요구 둘러싼 여야 샅바싸움
재벌 총수의 출석을 요청하는 의원들은 기업을 실질적으로 좌우하는 오너의 책임 있는 답변을 들어야 한다는 논리지만 일각에서는 무분별한 출석 요청이 기업들의 경제활동을 위축시킬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실제 과거에도 기업인을 어렵사리 국감 장에 증인으로 출석시켜 놓고 제대로 된 질문조차 하지 않고 돌려보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지난해 국감에서는 정무위에서 11명의 기업인을 증인으로 출석시켰지만 증인 한 명당 답변시간은 평균 1분 안팎에 불과해 ‘보여주기식 국감’에 그쳤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때문에 해마다 재벌 총수들에 대한 출석 요청이 쇄도했고 소환된 총수들은 국감을 피하기 위해 국감을 앞두고 해외출장을 나가는 일이 연례행사처럼 되풀이 돼 왔다.
올해도 재벌 총수 출석을 둘러싼 여야의 샅바싸움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는 최근 "기업활동을 위축하거나 가뜩이나 비상경제 상황인데 호통국감, 망신주기 국감, 기업인 불러서 위축시키는 것은 자제하겠다"고 밝힌바 있다. 반면 새정치연합 이종걸 원내대표는 전날 CBS라디오에서 "재벌의 오너 중심의 경영체제가 오너 없이는 알 수가 없는 것들이 너무 많다"고 말해 재벌총수의 증인채택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다.
증인 신청 실명제ㆍ사유 구체화 등 제도 개선 요구
국감 증인 신청을 무기 삼아 지역구 민원을 해결하려는 구태도 여전하다는 게 정치권 안팎의 대체적인 평가다. 일단 증인으로 신청해 놓고, 증인 명단에서 이름을 빼 주면서 지역구 민원을 해결하는 방식이 많다고 한다. 한 재선 의원은 “증인 요구 명단에 이름을 올려 놓으면 해당 기업에서 어떤 식으로든 접촉을 해 오기 마련”이라며 “기업 입장에서는 국감 장에 불려나가 호통을 맞고 망신을 당하기보다 취업 민원을 비롯한 의원들의 지역구 고민거리를 들어 주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때문에 정치권 안팎에서는 국감 증인 출석의 기준을 보다 명확히 하는 등의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내실 있는 국감을 위해서는 적어도 ‘총수 망신주기식 호출’은 지양해야 한다는 반성이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는 “국감에는 기업인 외에도 다른 일반증인 기관증인 등 워낙 많은 사람을 부르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하다”며 “꼭 필요한 사람을 증인으로 부르면 모를까 무작정 많이 부르는 건 하등의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정치권 내에서도 국감 증인 채택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국감 증인 출석 요구시 사유를 구체화하고 이를 해당 상임위 의원들에게 공개하도록 하는 내용의 제도 개선안이 우선 거론되고 있다. 국감 증인으로 채택된 뒤 불출석하는 기업인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국회 한 관계자는 “증인 출석을 회피해도 기껏해야 벌금형으로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다”며 “실질적인 강제력을 띌 수 있도록 처벌 수위를 높이는 방안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동현기자 nani@hankookilbo.com
정승임기자 cho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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