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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상은 경제 발전 영웅” vs “선조 짐짝으로 넘긴 자들” 베냉의 두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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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상은 경제 발전 영웅” vs “선조 짐짝으로 넘긴 자들” 베냉의 두 목소리

입력
2018.01.30 17:35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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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서아프리카 노예 무역 거점

노예 박물관 건립 싸고 논쟁 가열

서아프리카의 작은 나라 베냉에선 노예제를 둘러싼 역사 갈등이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서아프리카의 작은 나라 베냉에선 노예제를 둘러싼 역사 갈등이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게티이미지뱅크

“베냉의 국민들은 두 그룹으로 나뉜다. 노예 아니면 이들을 팔아 넘긴 노예 무역상이다.”

우리에게는 낯설고 생소한 서아프리카의 작은 나라 베냉에서 최근 노예 박물관 건립을 둘러싸고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노예제는 이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동족 수천만 명을 팔아 넘겼던 이른바 노예 사냥꾼들의 과거사는 여전히 청산되지 못한 탓이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는 29일(현지시간) 베냉 정부가 미국 스미스소니언 협회와 함께 노예 무역 관련 박물관을 건설하려는 계획이 베냉 국민들의 내부 분열을 키우고 있다고 보도했다.

베냉 정부는 과거 ‘노예 항구’로 악명이 높았던 남부의 항만도시 우이다 지역 등에 박물관 2곳을 건립할 계획이다. 그러나 베냉의 역사 학자들은 박물관이 단순히 외국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수단이 아니라 노예 무역에 일조했던 공모 세력에 대한 진상 규명까지 포함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베냉은 기니만과 맞닿아 있어 18, 19세기 유럽과 미국에 서아프리카 지역 노예들을 ‘반출’시킨 대서양 노예무역 기지였다. 베냉 공화국의 전신인 다호메이 왕조는 적대 부족의 성인과 아이를 가리지 않고 잡히는 대로 팔아 넘기며 막대한 부를 축적하며 권력을 유지했다.

다호메이 왕조가 무너지고 프랑스 식민통치가 끝난 1960년대 이후 베냉은 아프리카 민주주의의 모델 국가가 됐지만, 노예제를 둘러싼 내부 갈등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노예 무역에 가담했던 공모자들이 여전히 지배층을 형성하고 있어 과거사 진상 규명 작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예 무역상으로 이름을 날렸던 프란시스코 펠릭스 드 수자 가문이 대표적이다. 이 가문의 후손들은 자신의 선조들이야말로 베냉의 경제를 발전시키고 현대화에 일조한 영웅이라며 과거사를 미화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새롭게 건설되는 박물관에 노예 무역의 가해자로 언급되는 점과 관련해서도 “가문의 명예가 걸린 일”며 노골적으로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반발도 거세다. 수만 명이 노예로 팔려 갔던 지역 케토우의 사업가 플라시드 오구태드는 “선조들을 짐짝처럼 넘긴 그들에 대한 분노는 세상이 끝날 때까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예 사냥이 횡행했던 지역에서는 어린 아이들에게 노예무역상들의 후손들과는 결혼하지 말라고 단속할 정도다.

노예 무역상의 후손들이 목청을 높이는 까닭은 다호메이 왕조 잔존 세력들이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1월 중순마다 수자 가문과 다호메이 가문 후손들은 다호메이 왕족의 수도를 순례하는 행사를 열며 결속을 다진다. 1999년에 마티외 케레쿠 대통령이 미국의 볼티모어 교회를 찾아 노예 출신 흑인들에게 무릎 꿇고 사죄하며 국제적으로 노예 무역 행위에 반성하는 듯한 행보를 보였지만 이는 타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대외용’에 불과했다.

베닝의 노예제를 연구해온 역사가들은 “베닝 정부가 새로 짓는 박물관의 전시물에서 이들이 노예 판매상이었다고 표현할지 여부가 균형잡힌 역사 해석의 단초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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