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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해’ 유병언의 사진은 어떻게 명작이 됐나

입력
2016.11.28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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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다” “평범 속의 비범” 등

수십억원 기부로 얻어낸 찬사들

‘예술 제도’가 만든 왜곡된 사례

한국 예술계서 터지는 성폭력 사건

가해자는 알량한 권력 쥔 남성들

권력 구조가 가져온 폐허 성찰하고

페미니즘과 소통으로 새 출발해야

아해 홈페이지에 게재된 작품 사진들.
아해 홈페이지에 게재된 작품 사진들.

최근 몇 달 동안 한국 예술계는 커다란 파열음을 내며 속살을 드러냈다. ‘문화예술인’을 자처하는 이들의 비리가 연이어 보도되었고, 성폭력과 블랙리스트 사건 등이 마구 뒤섞여 신문 사회면을 채웠다. 이것은 문화예술이 사회적인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우며, 또 그래야 한다는 기존의 믿음을 부인하는 듯하다.

사진계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몇 주 전 한 사진가의 홈페이지에 새로운 포트폴리오가 업데이트되었다. 그것을 본 이들은 마치 귀신을 본 것처럼 화들짝 놀랐다. 그는 매일 자신의 창문 너머로 보이는 자연의 풍경을 찍는 나이든 사진가였다. 한국인이었고, 성공한 사업가 출신이라고 했다. 그가 찍은 사진은 하루에 수천 장, 4년 동안 찍은 양은 무려 250만장에 달했다. 홈페이지에 따르면 그는 ‘매순간 변화하는 자연의 경이로움과 섬세함을 사람들이 느끼기를 바랐’고, 나아가 ‘지구온난화와 환경 파괴에 경각심을 가지기 원했’다.

아해 홈페이지에 게재된 작품 사진.
아해 홈페이지에 게재된 작품 사진.

늦은 나이에 데뷔한 그의 사진에 쏟아지는 찬사는 뜨거웠다. 2011년에서 2014년에 이르는 짧은 기간 동안 그는 미국과 유럽의 유명 갤러리와 국립미술관에서 전시를 했고, 한정판 도서를 주로 발간하는 프랑스의 출판사에서 몇 권의 사진집을 발간했다. 체코 국립미술관 관장인 밀란 크니작은 그의 작업이 “매우 단순하고, 아름다우며, 완벽하다”고 말했다. 루브르 박물관의 앙리 루아레트 관장은 그 사진들에 “평범함 속의 비범함”이 있다고 했으며, 파리 국립미술대학 사진과 큐레이터인 안느 마리 가르시아는 그의 가치를 에드워드 머이브리지나 귀스타브 르 그레와 같은 과거의 거장들과 견주기도 했다.

돈으로 사들인 사진 실력과 명성

그러나 2016년에 업데이트된 그의 홈페이지를 본 이들이 놀란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가 2년 전 죽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은 아해다. 그리고 다른 이름은 유병언이다. 횡령과 배임, 조세포탈 등 여러 혐의를 받은 그에게 걸린 현상금은 한국의 형사범 사상 최고 금액인 5억원이었다. 검경합동수사본부에 따르면 그는 자신의 사진과 책을 계열사에 비싼 값으로 강매했다.

2014년 세월호참사 당시 대대적 검거 작전의 대상이었던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해외에선 억만장자 사진작가로 유명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4년 세월호참사 당시 대대적 검거 작전의 대상이었던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해외에선 억만장자 사진작가로 유명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자신이 전시한 미술관들에 아해가 수십억 원의 기부를 했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났다. 베르사유궁의 카트린 페가르 관장은 오히려 자신들이 피해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아해의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인터뷰 동영상에서 지금도 우리는 열정적인 말투로 아해의 사진을 극찬하는 페가르 관장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웅장함’과 ‘우아함’ ‘겸손함’과 ‘소박함’ 심지어는 ‘영원’과 ‘시’ ‘철학’이라는 말까지 수식어로 동원하는 그의 말에는 사뭇 민망한 구석이 있었다.

아해가 조금 더 살았더라면 그는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었을까? 불과 몇 년 동안 그는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일반적인 신진 작가들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전시 실적을 쌓아올리던 중이었다. 최고의 전시 공간, 최고의 기획자, 최고의 연구자, 최고의 전시 디자이너, 최고의 프린트 마스터까지 모두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었다. 심지어 그가 구축한 시스템은 아해가 죽은 후에도 자동으로 움직이면서 홈페이지를 업데이트하고 사진과 책을 유통할 정도로 위력적이었던 듯하다. 향후 십여년 동안 매년 이렇게 돈을 쏟아부으며 ‘활동’한다면 아해는 정말 꽤 유명한 작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지금의 예술 제도가 작동하는 권력의 구조를 누설한다. 한 명의 비평가로서 나는 아해의 사진이 노쇠하고 탐욕스럽다고 생각한다. 자못 점잖게 자연을 관조하는 척하다가도, 포토제닉한 장면을 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 렌즈로 헉헉대고 쫓아가면서 마구 셔터를 누르는 타입이었다. 나이든 이들이 흔히 취미로 찍는 아마추어 사진과 달라지고 싶은 욕망만은 충분했으나, 딱히 미적 재능이나 예술적 지형 감각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는 승승장구했다.

유병언 전 회장이 프랑스 파리에 두었던 '아해 프레스 프랑스'(Ahae Press France) 사무실이 있던 건물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유병언 전 회장이 프랑스 파리에 두었던 '아해 프레스 프랑스'(Ahae Press France) 사무실이 있던 건물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권력은 예술도 만들어낸다

그의 사진은 어떻게 예술이 되었는가? 아서 단토나 조지 디키와 같은 미학자들은 어떤 대상에 예술의 지위를 부여하는 것은 특정한 사회 제도가 내리는 결정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주장을 ‘예술 제도론’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말하는 ‘제도’는 작가와 큐레이터, 비평가, 딜러, 컬렉터 등으로 이루어진 ‘예술계’다. 세계 예술계는 아해의 돈 앞에서 한없이 다정하고 친절했고, 그의 사진을 다투어 상찬했다. 아마 젊고 힘없는 작가들에게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예술 제도론은 여러 결점에도 불구하고 예술계 내부에서 작동하는 권력을 선명하게 그려낸다는 장점이 있다.

아해가 한국의 사진계나 예술계를 점령하려 했다면, 이곳은 견뎌낼 수 있었을까? 한 용감한 성폭력 피해자에 의해 유명 큐레이터의 성폭력 사건이 터져 나온 것을 계기로, 우리가 알던 한국의 ‘예술계’는 그 민낯을 드러냈다. 동일한 가해자에 의한 유사 피해 사례를 조사한 최초 피해 고발자의 설문에는 150건 이상의 제보가 접수되었고, 다시 수십 명의 새로운 가해자가 드러났다. 신생 사진 잡지인 ‘VOSTOK’의 사진계 성폭력 피해 사례 조사에는 단 하루 만에 300여 건 이상의 사례가 도착했다.

그 내용은 더욱 참혹했다. 외딴 곳의 작업실이나 스튜디오로 끌려온 피해자들은 대부분 학생이나 젊은 여성 작가들이었고, 가해자들은 알량한 권력을 쥔 남성들이었다. 그들 중 상당수는 평소 정치적으로 올바른 가치를 내세우거나, 심지어 여성주의를 옹호하며 자신의 도덕적인 권위를 획득하던 이들이었다. 전형적인 권력형 성폭력이었다. 작가들이 작업을 지속해 나가려면 전시에 참여하거나 기금을 수혜할 필요가 절실하다. 그러므로 전시에 영향력을 미치거나 기금을 심사할 수 있는 권력이 있는 이들에 작가들은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대규모의 성폭력 사태는 어떤 특정한 개인이 정체를 숨긴 성범죄자였다는 식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성폭력은 구조와 위계의 문제이므로, 지금의 상황은 세련되고 말끔해 보이던 한국의 미술계와 사진계가 사실은 어떤 버추얼 리얼리티 글래스 안의 세계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드러냈다. 고립된 피해자들에게 이곳은 약육강식의 정글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일은 ‘어떤 권력의 구조에서 이러한 대규모 성폭력이 가능했는가’를 성찰하는 일이다.

페미니즘, 예술의 새 출발 선언

몰랐다, 속았다, 내 마음도 아프다는 남성들의 장탄식이 줄을 이었다. 하지만 어떤 이가 가해자와 함께 작동하는 권력 구조의 일부로 보일 때, 피해자가 어떻게 그에게 자신의 고통을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몰랐다는 말은 알리바이가 아니라 증거다. 수많은 여성들이 알고 있었던 것을 자신만 몰랐다면, 남성들은 자신이 놓인 위치를 다시 한 번 들여다볼 필요가 있는 듯하다. 물론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예외가 아니다. 지금은 버추얼 리얼리티 글래스를 벗고 한국 예술계에 실재하는 폐허와 정글을 직시할 때다.

물론 이것은 퇴보가 아니다. 희망이다. 화려하고 평온한 한국 예술계나 사진계 같은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권력의 구조를 직시하기 어렵게 하는, 남성들의 눈에만 보이던 허상의 세계가 무너졌을 뿐이다. 여성들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온라인과 SNS는 분노로 가득하고, 페미니즘 이론과 비평이 상호 논쟁을 통해 학습된다. 페미니즘 비평은 예술을 구성하는 전통적인 개념과 범주까지 공격함으로써 그것이 어떤 사회적, 경제적 구조에 놓여 있는지를 드러낸다. 따라서 이러한 일군의 비평이 더 왕성해질수록 우리는 예술과 예술계를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

첫눈이 내리던 지난 주말, 광화문에 있는 일민미술관에서 ‘언리미티드 에디션8-서울국제아트북페어’가 열렸다. 행사장에서는 새롭게 조직된 여성 디자이너 정책 연구 모임이 성명을 발표했고, 여성 그래픽 디자이너를 다루는 책의 출간 기념 토론회가 마련되었다. 여성 전시기획자와 사진계 인사들도 연대를 통해 크고 작은 세력을 조직해서 활동에 나설 예정이라고 한다. 아마 한국의 예술계는 예전의 모습 그대로 매끈매끈하게 봉합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런 울퉁불퉁한 움직임들이야말로, 세상이 더 나은 곳으로 변하는 전형적인 방식일 것이다.

김현호 사진비평가ㆍVOSTOK 매거진 편집동인

공동기획: 한국일보ㆍ인문학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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