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오 방북 전격 취소
北 비핵화 협상 다시 먹구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방북 계획을 전격 취소하면서 북미 비핵화 협상이 중대 기로에 서게 됐다. 미 조야는 물론 행정부 내에서도 팽배한 회의론에도 불구하고 북미 대화를 주도적으로 밀어붙였던 트럼프 대통령이 비핵화 협상이 지지부진한 사실을 공개 인정하고 브레이크를 건 것이어서 북미 대화의 추동력이 상당 부분 소실됐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2차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는 남겨둬 극적 반전될 여지는 남아 있지만, 북한의 전향적 태도 변화가 없으면 대화의 틀 자체가 흔들리면서 한반도 정세가 다시 요동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은 6ㆍ12 싱가포르 정상회담 직전의 회담 취소 과정과 유사하지만, 북한의 완강한 태도와 트럼프 대통령 본인의 좌절감이 짙게 반영돼 있다는 점에서 향후 북미관계에 드리우는 그늘은 훨씬 짙다. 1차 정상회담 때는 정상간 만남 자체에 의미를 두면서 양측이 조속히 대화 재개에 나섰지만 이번은 북한 비핵화란 핵심 사안을 두고 북미가 실질적인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한 상태에서 틀어진 것이어서 대화 복구가 만만찮은 과제다.
이번 결정은 무엇보다 폼페이오 장관이 네 번째 방북을 하더라도 또 다시 빈손 귀국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에서 비롯됐다는 게 대체적 분석이다. 미 정부 관계자들은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이 시기 상조라는 견해를 밝혀왔고 스티브 비건 신임 대북정책특별대표도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설득했을 수 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국무부가 앞서 폼페이오 장관이 방북시 김정은 북한 국무 위원장을 만날 계획이 없다고 밝힌 것도 북미간 조율이 순조롭지 않았음을 드러낸 대목이다. 그간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추진이 북미간 의견 접근의 신호로 해석되기도 했으나, 실제 물밑 협상에서 북한이 미국이 요구하는 핵 프로그램 신고 등에 대해 아무런 확답을 주지 않은 것이 확인된 것이다.
이 같은 북한의 태도에 트럼프 대통령의 인내심도 바닥으로 치달은 것으로 보인다. 그간 싱가포르 정상회담이 성공적이라고 홍보해왔던 트럼프 대통령이 자존심을 구기면서 입장을 바꾼 것은 그만큼 북한에 대한 불만이 한계 수위에 올랐다는 방증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대통령이 사적인 자리에선 측근들에게 북한에 대한 좌절감을 토로해왔다고 전했다. 애초 폼페이오 장관 방북을 제안한 것도 트럼프 대통령이었다. 이달 초 김 위원장으로부터 서신을 받은 사실을 공개하며 2차 정상회담에 대한 분위기를 띄우며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을 추진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완강한 태도에 스스로 카드를 접은 셈이다.
사실상 미국 내에서 북미 대화에 가장 적극적이던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제동을 걸고 나섬에 따라 미 행정부도 북한에 대한 고삐를 다시 조이며 강경 압박에 나설 공산이 커졌다. 미국은 북한이 추가 도발을 하지 않는 이상 새로운 유엔 제재를 추진하기 보다는 일단 기존 제재 누수를 막는 데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 등을 중심으로 북한과 거래하는 업체에 대한 제재 리스트를 확대하고 해상 밀무역에 대한 단속도 한층 강화하는 수순을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개성공단 내 남북연락사무소 개소에 대한 한미간 입장 차가 해소되지 못한 상태여서 남북 관계와 북미 관계의 엇박자로 인해 한미간 갈등이 불거질 소지도 없지 않다.
이처럼 북미 관계가 짙은 안개 속으로 들어서게 됐지만, 미 언론과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비핵화 조치가 진전되지 않는 현실을 인정했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오히려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기류가 강하다. 조셉 윤 전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NYT에 “오랫동안 우리가 알았던 것, 즉 비핵화 협상이 잘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을 뒤늦게 인정한 것이다”며 “워싱턴은 이제 대북 접근법을 근본적으로 재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도 트위터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의도에 대해 걱정하기 시작한 것 같다”며 “폼페이오 장관이 다시 빈손으로 돌아와야 했다면 이는 좋은 결정이다”고 말했다. 이 같은 긍정적 평가는 역으로 보면 미 조야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11월 중간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성과를 내기 위해 북한에 너무 많은 양보를 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일부 조치만 끌어내고 제재를 해제해 사실상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해왔다. 북한 역시도 이런 계산에서 대북 제재에 강경한 참모들을 비난하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은근한 기대감을 보여왔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방북 취소 결정을 통해 비핵화 성과가 없는 상태에선 정상회담에 목매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해 북한에 ‘헛된 기대’를 갖지 말라는 경고 메시지를 보낸 셈이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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