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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별력 없는 면접 '요지경'…당락 뒤집혀도 근거는 깜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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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별력 없는 면접 '요지경'…당락 뒤집혀도 근거는 깜깜

입력
2014.10.1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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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일은?" "OO에서 왔다며" 인성·잠재력 등과 동떨어진 질문들

구체성 없고 자의적인 '제비뽑기' 학생부·내신도 무용지물 다반사

대학 입시 때 면접 점수가 반영되는 전형의 비중이 높아졌지만 객관적인 평가 기준이 없어 변별력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의 한 사립대가 1박 2일 일정으로 실시한 입학사정관 전형 면접에서 수험생들이 면접관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대학 입시 때 면접 점수가 반영되는 전형의 비중이 높아졌지만 객관적인 평가 기준이 없어 변별력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의 한 사립대가 1박 2일 일정으로 실시한 입학사정관 전형 면접에서 수험생들이 면접관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

교수: 우리대학에 지원하는 학생들은 지원자 모두가 학생같이 1등 하는 애들인데, 도대체 누굴 떨어뜨려야 하나?

학생: 저는 오래 전부터 이 분야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강한 학업에 대한 열의가 있습니다. (후략)

교수: 그래 그럼 존경하는 사람은 있나?

학생: 네 OOO회사 OOO부사장님입니다.

교수: 어 그래? 전화 해줘야겠구먼. 아는 사람인데. 그 사람 어떻게 알았지?

학생: OOO라는 책(이 학교 공대 발간)을 읽고 알게 됐습니다.

교수2: 읽은 책 중에 OOO도 있네? 얘(저자) 내 한참 후밴데, 재미있는 책인가?

학생: 제가 OO분야에 대해 모를 때 방향성과 틀을 제시해준 책입니다.

#2

교수: 저기 대기실에 있는 학생들보다 자네가 더 뛰어난 게 있다면?

학생: 제가 학교의 프로그램으로 유럽 탐방을 간 적이 있습니다. 유럽에서 한국을 알리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거기서 만난 이 대학 학생이 우리나라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며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는 모습을 봤습니다.

#3

교수: OOO교수(면접 보는 대학 교수)의 OOO책을 봤군요. 어떤 감명을 받았나?

(대답 생략)

교수: 자소서 보니까 OO캠프(이 대학 주최) 참가하면서 느낀 창조성에 대한 얘기가 있는데 어떤 면에서 그런지 구체적으로 얘기해보세요.

한국일보가 입수한 A교육청의 ‘2014학년도 대입 면접후기’ 100여건 가운데 한 대학의 면접 내용이다. A교육청은 면접을 마친 수험생들의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전하기 위해 면접후기를 자료집으로 만들었다. 당사자의 기억에 의존한 것이라 복기가 완벽하다고 할 순 없지만 면접 내용 대부분이 들어있다.

그런데 면접 내용만 봐선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학생들의 잠재력을 평가하겠다는 건지 분명하지 않다. 일부 학생은 유럽 탐방 경험, 대학 주최 캠프 참여를 언급했는데 이는 학생의 경제적 배경을 드러내는 대답이다. 때문에 면접은 학교생활기록부, 내신, 논술 등과 달리 구체성이 없고, 자의적이라는 점에서 변별력에 의문이 제기된다. 수험생 사이에서 면접전형이 ‘제비뽑기’라고 불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면접후기 자료집을 접한 B일반고 교사는 “이런 질문으로 어떻게 학생들의 인성과 적성, 수학능력, 잠재력을 평가할 수 있겠느냐”며 “합격, 불합격을 결정하는 면접인데 질문 수준이 이렇다면 학생들에게 어떻게 준비하라고 제시하지 못하겠다”고 혀를 내둘렀다. 100여건의 면접후기를 들여다 봐도 변별력을 갖췄다고 보기 힘든 질문들이 눈에 띈다. 예컨대 “자기 자신을 한 단어로 표현해보라”, “대학 합격하면 하고 싶은 일은?”, “OO에서 왔다며? 거기 어디가 좋은가?”등의 질문들이다.

객관성을 전혀 담보하지 못하는 면접이 학생 선발 과정에선 오히려 큰 비중을 차지한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면접은 내신과 수능성적으로 선발된 학생들을 대상으로 마지막에 치르는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했지만, 입학사정관 전형이 도입되면서 비중이 높아졌다. 실제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서강대, 한양대 등 주요 10개 대학이 2015학년도 입시에서 면접을 비중 있게 반영해 선발하는 인원은 7,600여명에 이른다. 이들 대학의 전체 수시모집 인원의 44.6%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숫자다. 특히 대부분의 대학들이 면접 비중을 30% 안팎으로 정하면서 면접 점수가 높은 경우 학생부의 내신 등급 점수 차를 쉽게 뒤집을 수 있다.

물론 전형마다 방법이 달라 구술면접, 수학문제 설명 등 구체적인 내용을 묻는 면접도 있지만, 일반 인성면접이 대부분이다. 결국 객관성이 부족하고 불확실성이 높아 사전에 준비하기도 어려운 면접 방식이 학생의 당락을 좌우하고 있는 것이다. 한 입시업체 관계자는 “각 대학별 지원자의 학력 수준이 비슷하다는 점에서 면접점수는 학생부와 내신을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렇다 보니 면접이 포함된 전형은 대학들이 특목고ㆍ자사고 등 특정 고교 출신 우수 학생을 선점하는 방편으로 사용되고 있다. 서울대의 2014학년도 수시모집 선발 결과에 따르면 ▦자사고 19.0% ▦외고 13.3% ▦과학고 12.7% ▦영재고 12.4% ▦예ㆍ체고 8.9% 등으로 자사고ㆍ특목고 출신 합격생 비율이 59.5%에 달했다. 자사고ㆍ특목고의 합격생 비율은 전년 대비 10.7%포인트나 올랐다. 반면 일반고 출신은 수시 합격자 중 28.3%에 불과했고, 전년과 비교해도 9.2%포인트나 낮아졌다. 또 다른 입시 관계자는 “대학입장에서는 면접을 통해 내신의 변별력을 떨어뜨려 특목고나 자사고 출신들을 뽑는 수단을 갖게 되는 것”이라며 “대학들이 고교등급제를 사실상 적용하면서 고교 입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면접의 불투명성, 불확실성은 입시비리 발생 가능성을 높인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학생부, 논술, 내신 등과 같이 점수를 산정할 구체적인 근거가 없는데다, 녹취 등에 대한 규정도 없어 공정성을 확보할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서류로 내용을 남기지 않기 때문에 사후 감사도 불가능하다. 외부경시대회 수상실적은 자기소개서, 추천서 등엔 기재할 수 없지만 면접에서는 이를 언급하더라도 적발해 낼 수 없다.

경기의 C고 교사는 “면접후기를 보면 교수 실명이 언급되고, 교수가 쓴 책 제목, 대학이 운영하는 캠프 참가 여부, 부모의 직업 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며 “엄격한 기준이 없는 상황에선 위험천만한 일”이라고 우려했다. 면접관들과 어떤 식으로든 관계가 형성될 경우 면접 내용의 일부가 일종의 ‘사전 신호’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어떤 교수가 기업의 사외이사로 활동하고 있는 상황에서 해당 기업 고위 관계자의 자녀가 입시를 치른다면 사전에 미리 언질을 주고, 면접 때 이를 언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수험생 자녀를 둔 보통 사람들에게는 상상하기조차 싫은 내용이지만 실제 입시현장을 보면 허점이 많다”며 “부모가 영향력을 행사해 자녀를 취직까지 시키는 현실에서 이런 허점들은 기여입학보다 더 손쉽게 활용될 수도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최근 돈으로 스펙을 조작한 부정입학 사례가 적발된 것처럼 입시비리는 틈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비집고 들어온다”며 “문제가 발생한 뒤 고치는 것은 소용없고, 미리 방지해야 공정한 입시에 대한 신뢰가 쌓인다”고 말했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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